주님, 저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날짜: 
2025/01/04
말씀: 
요15:13-15
말씀구절: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설교: 

제가 여기 캐나다 캘거리에 온 지 이제 27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한국에 장기간 체류할 장소도 마땅치 않고, 특별히 한국에 가야할 이유도 별로 없다보니 한국에 안 간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캐나다 캘거리에 살면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 선교국 산하의 북미총회나 또 그 산하의 서북부 지방회 모임도 이런저런 이유로 안 가고 못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캘거리에서 여러 한인 교회들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서로 연합이 잘되고, 목사님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다 보니 딱히 한국에 가지 않아도, 또 순복음 교단의 모임에 가지 않아도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목사님들 중에 운동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여름엔 야외 테니스장에서 해가 져서 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테니스도 치고, 겨울엔 저희 교회 체육관에서 땀이 나도록 배드민턴도 치고, 족구도 하고, 라디움(Radium) 온천에 수련회도 같이 가서 즐거운 시간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캘거리 교역자 협의회가 지난 12월 정기총회 때에 정식으로 자진해체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목사님들이 아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매달 정기적으로 모여서 같이 밥도 먹고, 즐겁게 이야기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협의회가 해체가 되니까 그게 매우 아쉬운 겁니다.

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캘거리 교역자 협의회에서 제가 가장 오래된 멤버입니다. 제가 이 협의회의 산증인입니다. 그 날 그렇게 교역자 협의회 해체를 결정하고 난 후 집에 와서 보니 몸이 안 좋습니다. 으스스 춥습니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좁은 공간에서 많은 분들이 회의를 하다 보니 서로 감기가 걸린 것 같습니다. 결국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빼면서 혼자 조용히 울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며 하나님께 이런 하소연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캘거리에 있으면서 어디 가지도 않고, 나름대로 여기서 재미있게 지냈던 것은 그래도 캘거리 교역자 협의회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 공식적으로 협의회가 해체가 되었네요. 이제 저는 누구랑 놀지요?“

물론 여기 캘거리는 겨울이 춥기 때문에 동계 스포츠인 컨츄리 스키에 재미를 들이거나, 캐나다 국기인 아이스하키 관람에 재미를 들이면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스키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이스하키 관람도 취미가 없습니다. 번면 저의 경우는 강아지가 있어서 날씨가 좀 추워도 강아지를 위해 산책을 하거나, 혹은 집안에서 고구마나 감자를 쪄먹든지 하면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친구 목사님들 간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끊어진다고 생각하니 많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주님께 기도한 것이 이것입니다. “주님, 이제 공식적으로 여기 캘거리 친구 목사님들의 정기모임이 없어졌습니다. 앞으로 나는 누구랑 놀지요? 주님, 앞으로 주님이 저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여러분, 사람은 혼자 독처하며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누군가와 같이 살아야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되는 존재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혹은 어디론지 혼자 멀리 떠나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 살다 보면 결국 또 다시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옛날에 코미디언으로 크게 명성을 날렸던 주병진 씨가 TV에 나와서 결혼을 하려고 여러 번 맞선을 보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의 나이가 저와 동갑입니다. 59년생 만 65세입니다. 그는 사업에도 성공하여 크고 호화로운 집에서 여러 강아지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가 살고 있는 화려한 집을 보고 너무나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런 좋은 것도 같이 누릴 수 있는 가족이 없으니, 차라리 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나도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면 좋겠습니다.” 즉 그는 매일 한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고 지낼, 평생의 친구인 아내와 가족을 얻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새롭게 친구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굳어진 자신만의 생활패턴도 있고, 사람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그렇게 좋아했고 믿었던 사람들도 나중에 알고 보니 다 속물근성이 있고, 불완전한 모습이 드러나서 차츰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인생의 허무함이 밀려오면서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아- 이 세상에는 내 마음에 드는 그런 진실한 친구가 많지 않구나.” 그러나 성경에 보면 대표적인 우정의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과 요나단’입니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가수 중에 1981년에 만들어진 한국의 최장수 듀오의 이름도 ‘다윗과 요나단’입니다. 이 두 분의 이름은 황국명 목사님과 전태식 목사님입니다. 전태식 목사님은 순복음 교회 목사님이더라고요.이들의 노래 중에 잘 알려진 것 중에 ‘주만 바라볼찌라.’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삼상18:1)

그러나 다윗과 요나단은 외견상 서로 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왕의 아들로 왕위 계승 서열 1위였고,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장차 왕이 될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나라에 왕이 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권력의 속성으로 생각하면 이들은 서로 대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 부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단순히 성격이 맞아서라거나, 혹은 서로에게 뭔가 얻을 것이 있어서 친구가 된 그런 이해관계의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들을 바라보며 서로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즉 그들의 우정은 하나님 안에서 형성된 진실한 우정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3-15)

우리는 보통 예수님을 부를 때 ‘주여-’ 혹은 ‘주님-’ 이라고 부릅니다. 즉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이고 노예라는 겁니다. 주인과 종은 신분 차이가 너무도 큽니다. 당시 종의 위치는 주인의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주인은 자기 종을 사거나 팔거나 할 수 있습니다. 종은 주인과 서로 인격을 나누고 대화를 나눌 사이가 결코 아닙니다. 그 둘의 사이는 명령과 복종의 주종관계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들의 관계도 주종관계입니다. 예수님이 명령하면 우리는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들을 가리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라고 부르겠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친구인 너희에게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여러 가지를 알게 해주었고, 앞으로도 여러 가지 비밀들을 알려주신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친구 되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시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친구가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정도면 이보다 큰 사랑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릴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의심의 여지없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믿을 수 있는 친구입니다. Best friends 중의 베스트 프렌드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외국의 어느 한 출판사에서 ‘친구’라는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을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생각을 적어서 보냈습니다. “밤이 깊을 때 전화하고 싶은 사람, 나의 아픔을 진지하게 들어 주는 사람,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 그 중에 1등을 한 것은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나를 등지고 떠날 때에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사람”

탈무드에 나오는 세 친구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성격이 매우 난폭한 왕이 어떤 사람에게 신하를 보내어 지금 당장 왕궁으로 들어오라는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세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친구와는 아주 친했고, 두 번째 친구와는 조금 친했으며, 세 번째 친구는 그럭저럭 친한 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왕이 자기를 왜 부를까 하고 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는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왕궁으로 가서 자기를 변호케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왕궁에 들어가는데 같이 동행해 줄 것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친구는 무턱대고 그 일은 못하겠다고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갔더니 궁전 앞까지는 따라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야지! 자네는 그 동안 아무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니 염려할 것이 없네. 내가 자네와 함께 가서 왕에게 변호해주겠네.” 그는 그제야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친구란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서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친구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바로 이런 친구가 있습니다. 믿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떠나도, 끝까지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분, 그 분이 바로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예수님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었을 때,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이 된 건물을 헐게 되었습니다. 지붕을 벗기던 인부들은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인부들을 불러 그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인부들은 한결같이 집을 짓던 3년 전에 박은 못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도마뱀이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힌 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모두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사람들은 이 신기한 사실의 전말을 알아보기 위하여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도마뱀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나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마뱀은 3년이란 긴 세월 동안 못에 박힌 친구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먹이를 가져다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나에게도 바로 이렇게 곤경에 처한 나를 살리기 위해 날마다 음식을 날라다주는 친구 되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알게 모르게 나를 살리기 위해 각종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을 이제까지 날라다주었습니다. 3년이 아닌 평생 날라다 주었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계속 양식을 날라다 주실 분입니다. 행여나 내가 아플까봐 힘들까봐 죽을까봐, 내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를 눈동자처럼 살피시고 있는 분이십니다.

내가 보기에도 내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 감히 예수님과 친구가 되기에 부끄러운 존재인데, 예수님은 그런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나를 친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은 나를 자신의 친구가 된 것에 사람들에게 크게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 되는 저와 여러분들로 인해 날마다 순간마다 기분이 매우 좋으시고 행복해하시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을 때, 믿었던 친구들도 다 내 곁을 떠날 때, 이 외국 땅에서 너무나도 슬프고 고독해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통곡하며 울고 싶을 때, 나와 같이 슬퍼하며 울어주시는 분이 내 곁에 있습니다.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친구가 바로 내 옆에 있습니다.

바로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예수님입니다. 아무쪼록 나의 친구 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 내 친구로부터 용기를 얻으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친구 되신 예수님과 어깨동무하며 천국 문에까지 무사히 잘 도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주님, 어찌 그리 좋은 친구지, 이런 진실하신 친구를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계속 저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시옵소서. 저희들도 친구 되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