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한국을 가리켜 ‘동방의 밝은 별‘이라고 했던 인도의 시인 ‘타고르’란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감사의 분량은 곧 행복의 분량이다.” 즉 사람은 감사한 만큼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불평한 만큼 불행해진다는 뜻입니다. 즉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감사가 필수라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감사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믿음의 응답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이렇습니다. “불평은 내가 마귀의 자녀가 되었다는 표시이다.” 즉 감사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이요, 불평은 마귀의 자녀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오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한번 체크해보십시오.
지금 내가 감사를 많이 하고 있으면 신앙상태가 매우 좋은 것입니다. 반면 불평을 많이 하고 있다면 신앙상태가 매우 좋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돈키호테’의 작가인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범하는 가장 큰 죄는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다. 지옥은 배은망덕한 무리들로 가득 차있다.”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이날만큼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하지요. 지금 내 형편은 최악입니다. 도저히 감사가 입에서 안 나온다고요. 그리고 추수한 것을 감사하라고 하는데 나는 추수는커녕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거의 다 잃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를 합니까?”
아- 그렇군요.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 그런 분이 있다면 현재의 힘든 형편이 더 나아지기를 기원합니다. 속히 고통의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기를 기원합니다. 잃었던 것이 다시 찾아지고, 더 좋은 것으로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나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그 와중에도 같이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감사의 육하원칙’
1. 언제 감사합니까?
이에 대해 성경은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 NIV,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 공동번역,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 현대인의 성경)"(살전5:18) 그렇습니다. 감사는 시도 때도 없이 해야 합니다. 아침에도 감사, 점심에도 감사, 저녁에도 감사, 밤중에도 감사, 무시로 감사해야 합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감사하고, 길을 가다가도 손을 들며 감사하고, 차를 타고 가다가도 감사하고, 밥을 먹기 전에 감사하고, 먹고 난 후에도 감사하고, 화장실에서도 주여- 감사하고, 오늘도 감사하고, 내일도 감사하고, 모래도 감사하고, 할 말 없으면 감사하고, 감사를 입에 달고 다녀야 합니다.
특히 기분이 안 좋을 때, 고난이 다가왔을 때,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어떻게 하지요? 아-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교회 좀 다니면 이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아시잖아요. 그렇습니다. 이때에도 감사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결국 나를 더욱 좋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뭔가 부족할 때는 어떡하지요? 이때에도 감사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아주 유명한 고백을 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제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이 성경 구절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무 것도 없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뭐가 감사야?” 그리고 목사님이 오늘 같은 추수감사절에 이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감사하라고 하면 속에서 반감이 생겼습니다. “아니, 뭔가 주면서 감사를 하라고 해야지, 아무 것도 안 주고, 있는 것까지 다 뺏어가고 난 후에 감사를 하라면 어떡합니까? 그거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 하박국 선지자를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아- 이 사람 아주 쫄딱 망하다 보니까 드디어 정신이 이상해졌구나. 이거 완전 광신자구나.” 그런데 제가 성령을 받고, 은혜를 체험하게 되니까 이 고백이 100%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현재의 고난, 지금의 궁핍한 것도 초월합니다.
그래서 깨닫습니다. “아하- 그래서 성경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구나. 이제 이 말이 이해가 된다. 끄덕끄덕!” 그러고 보니 성경에 큰 고난 중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분이 또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 실라가 낮선 도시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심히 두드려 맞고 캄캄한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제 절망입니다. 당연히 신세 한탄을 해야 합니다. 불평을 하고 원망이 나와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그만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웬걸 바울과 실라가 그 와중에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지하 감옥을 지키는 간수와 모든 죄수들이 듣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들, 너무 맞아서 드디어 정신이 이상해진 모양이다. 안 됐다. 쯧쯧쯧...”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납니다. 땅이 흔들립니다. 그 지진으로 인해 지하 감옥이 무너지면 너도 나도 꼼짝없이 다 죽고 맙니다. 그래서 지하 감옥의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향해 반감을 갖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 저 재수 없는 미친 녀석들이 이 지하 감옥까지 와서 노래하니까 지진이 나네. 이제 다 죽게 생겼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지진으로 말미암아 죄수들의 수갑이 풀어지고, 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제 감옥을 탈출할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죄수들이 모두 도망간 줄 알고 자결을 하고 죽으려고 합니다. 이때 짜잔- 바울이 말합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보십시오. 어려울 때에 불평하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면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감사가 있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2. 어디서 감사합니까?
어디서든지, everywhere 감사해야 합니다. 집에서도 감사하고, 일터에서도 감사하고, 학교에서도 감사하고, 식당에서도 감사하고, 한국에서도 감사하고, 여기 캐나다에서도 감사하고, 바로 그 자리가 감사해야할 장소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교회까지 와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구나 추수감사주일에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무리를 지어서 단체로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이거 웬 미친 짓입니까? 누가 그렇습니까?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큰 권능으로 애급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들은 크고 놀라운 기적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가 생기면 또 다시 원망불평을 했습니다. 물론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지금 황량한 광야에 있습니다. 집도 없고, 물도 없고, 다양한 음식도 없고, 오락도 없고, 스마트 폰도 없고, 와아파이도 잡히지 않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때는 불평할 때입니까? 아니요. 없으면 달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왜 기도는 안하고 불평을 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 캐나다에 보내신 이유는 감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지, 우리의 불평 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땅에서, 여기 캐나다 땅에서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더구나 교회에서 감사를 많이 해야 하고, 내가 사는 곳이 비록 광야 같을지라도 그곳에서, 그 자리에서 감사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3. 누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은혜를 받는 자가 은혜를 베푸는 분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서 늘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스승님도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으로 나와 너를 바르게 잡아주었습니다. 아- 그것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이 세상에는 원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에게 크고 작은 은혜를 베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 그것도 참 감사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각종 필요한 것들을 주었습니다. 날마다 햇빛도 주시고, 공기도 주시고, 마침내 독생자까지도 주었습니다. 모두 주었습니다. 다 주었습니다.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었습니다. 그래서 너와 내가 살았습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토록 행복해졌습니다.
고로 너와 나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온 가족이 감사합니다.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감사합니다. 애들도 어른도 다 함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날이요, 가장 영광스런 날입니다. 그 감사의 대열에 한 사람도 낙오되지 말고 끝까지 감사의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4. 어떻게 감사합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입술의 찬양으로 즐겁게 힘껏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10을 주었는데 100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100을 주었는데 10밖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1000을 주었고, 10000을 주었는데도 여전히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10을 주면 100을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100을 줘도 10밖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혹 감사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나에게 얼마나 귀한 은혜를 주셨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많은 감사를 드려서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 무엇을 감사합니까?
일단 생각나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가까이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큰일에도 감사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십시오. 육체를 돌봐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생활을 돌봐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내 영혼을 천국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주신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우리 가족을 택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캐나다 땅에서도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신 것에 감사하십시오. 더욱이 나 같은 죄인을 불러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에 기뻐하며 감사하십시오.
심지어 나를 괴롭히는 원수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때로는 그 원수로 말미암아 내가 겸손해지고 좋은 인격자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고난으로 인하여 내가 다듬어지고 아름답게 연단이 됩니다. 고로 그 고난도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순간이 오면 크게 감사하십시오. 드디어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그 분을 만나러 천국에 가는 영광스런 날입니다.
6. 왜 감사합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시고, 특히 자기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생각한 목적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 물건은 실패작입니다. 사단은 인간에게 죄의 바이러스를 주입시켜 제대로 작동을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될 사람이 도리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성공작이 가장 큰 실패작으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인류가 하나님께 향한 감사를 잃어버리자 에덴동산도 잃고, 건강도 잃고, 생명도 잃고, 모든 것을 다 잃고,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무엇보다 하나님께 향한 감사가 회복이 됩니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살다 보면 어느덧 잃었던 것을 다시 회복합니다. 평안도 기쁨도 회복합니다. 천국도 영생도 회복합니다. 감사를 통해서 너와 내가 행복해집니다. 고로 많이 행복해지고 싶거든 많이 감사하십시오. 성경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고 권면합니다. 감사에 인색하지 말고, 감사에 쩨쩨하지 말고, 감사에 풍성하라는 겁니다. 같이 따라 해봅시다. “나는 크게 감사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교회사에 보면 순교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손양원 목사님이 있습니다. 공산당에 의해 순교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여순 반란 사건 때 두 아들을 먼저 잃었습니다. 두 아들이 학교에서 전도했다고 좌익 공산당에게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눈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두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려고 했는데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감사합니다.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그 동안 감사에 부족했던 나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감사가 회복되기 원합니다. 이제는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겠다고 굳게 다짐합니다. 죽는 순간에도 감사하며 죽겠다고 결단합니다. 아무쪼록 이런 감사의 마음과 감사의 고백이 하나님을 크게 영화롭게 하고, 그 감사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곳 캐나다 땅에서도 확실히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