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날짜: 
2003/03/25
설교: 

제 목 ;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본 문 ; 골 4:2

아무리 자녀가 훌륭하고 효자라고 하더라도 부모님의 사랑과 자식에 대한 생각에는 만 분의 일도 미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자녀는 부모님의 은혜를 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 속에 살면서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들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늘 깨어 기도해야 하듯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늘 깨어있어 해야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깨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감사하게 만드시고, 마귀는 시험하지 못하고 물러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3장 15절에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하려면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는 그 속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참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령이 병들고 믿음이 병들게 되면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 5장 20절에 사도 바울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하지 않는 것은 과연 어떤 행위입니까 ? 그리고 감사하지 않을 때에 어떠한 결과가 다가옵니까 ?
오늘 이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감사치 않는 것은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1절에서 여러 가지 죄의 명목을 들어 나가다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즉 자녀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효도하지 못하면 불효인 것처럼 하나님께 향하여 감사치 않는 것은 분명히 죄인 것입니다.

2. 감사치 않는 것은 약탈행위와 같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하지 않으므로 인해 상대방의 가슴에서 기쁨과 행복을 약탈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 명의 문둥이가 다같이 고침을 받았으나 아홉 명은 감사치 않게 될 때에 예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고 그 마음 속에 기쁨을 약탈해 가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감사치 않는 것은 남의 마음에서 기쁨과 행복을 약탈해 가며 그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3. 감사치 않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여러분, 감사치 않는 행위는 인색함에 기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으면 결국 스스로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맙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하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오래 영위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스스로 고립의 깊은 웅덩이에 빠져서 자신의 영혼을 시들게 하고 맙니다.

4. 감사치 않는 생활은 은혜와 축복을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로 오는 이민자들이나 유학생들을 도와주다 보면 조그만 도움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도와줘도 그 도움을 당연히 생각하거나 오히려 그 도움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은 잘났기 때문에 혹은 가졌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도움을 받는 것이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뭔가 부족하고 못났기 때문에 자기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아마 다시는 도와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조그만 일에도 늘 감사하는 사람을 계속 축복하는 것이지 아무리 도와주고 보살펴주어도 감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축복을 부어주기 싫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시간 감사할 제목을 찾아보고, 감사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계속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소원해야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른 어떠한 것은 만족하게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깊이 믿고 생각한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향해 제일 큰 은혜를 주신 것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제일 큰 선물이므로 이 사실에 대해서 무엇보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즉 모든 크리스천들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함을 받아 심판에 이르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특권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가장 큰 감사의 제목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2. 보편적인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생명이 호흡을 할 수 있는 공기나 태양, 비, 이슬 등을 항상 내려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살아 움직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할 때 감사치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저와 여러분들은 이렇게 물과 공기가 좋은 캐나다하고도 캘거리에 왔으니 더욱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달 동안 아주 특이한 실험을 하였답니다. 그 실험이란 어떤 마을의 일정한 구역에 있는 모든 집의 현관에 아무런 조건 없이 매일 100달러씩 놓고 나서 그 결과를 관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날 그 사람은 집집마다 들러서 현관에 100달러를 놓았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멈칫멈칫하다가 나중에는 그 돈을 집어 갔습니다.
둘째 날, 셋째 날에도 거의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그 동네는 날마다 100달러씩 선물로 주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온통 떠들썩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에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현관 입구에까지 직접 나와 돈을 나눠주는 사람이 언제쯤 올까 생각하고 평소에 그가 오던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주쯤 되자 이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와서 돈을 주는 것을 그렇게 신기하게 생각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넷째 주가 되자 그 마을 사람들은 매일 100달러씩 돈을 받는 것이 마치 세끼 밥 먹는 것 같은 일상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드디어 실험 기한이 끝나는 한 달의 맨 마지막 날에 그 실험을 계획했던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그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냥 그 골목을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가득한 소리, 거칠고 성난 목소리로 그 사람을 향해 말을 합니다. "이봐, 오늘은 왜 돈을 안주는 거야 ? 빨리 우리 돈 100불 내놔 ?"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베풀어주시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은혜를 깨닫고 늘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굉장히 흐뭇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3. 역경 중에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얼마 전 한국 대구에서는 지하철 참사로 많은 생명이 무고히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 불붙은 전동차 속에 갇혀 죽어 가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아주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여 늘 불평을 늘어놓고 사는 사람들, 예를 들면 큰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그 지하철 참사의 장면들을 TV로 바라보면서 오히려 자신의 처지는 너무도 좋다고 많은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즉 물질이 없어도 건강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감사해야 되고, 건강이 없어도 물질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감사해야지, 자신이 없는 것만 바라보고 불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태도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비록 물질도 없고 건강도 잃었다할지라도 천국을 얻었음을 인하여 감사를 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 다른 기적을 베풀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붙들려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면서 손발에 쇠고랑을 차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복음을 전했는데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왜 이렇게 죽도록 때리는 거예요 ? 그리고 왜 이렇게 캄캄한 옥에 가두는 거예요 ?" 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캄캄한 감옥 속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전에는 주님의 교회를 그렇게 심하게 파괴하고 성도들을 그렇게 심하게 핍박했던 저를 이렇게 복음 전파자로 세워주시고 주님을 위해 옥에 갇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자 그들을 묶었던 쇠고랑이 끊어지고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어려운 역경 중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진짜 감사할 수 있는 사건들을 일으키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주석가요 설교가인 매튜 헨리라는 사람이 하루는 늘 다니던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가족들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자기 서재에 들어가서 상처도 치료할 생각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지나간 12년 동안 이곳을 지나 다녔지만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서 무사했음을 감사할 줄 몰랐던 것을 회개합니다. 또 오늘 이러한 상황을 만났지만 감사한 것은 내가 강도를 만났기에 다행이지 내가 만약 강도가 되었더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 주님, 내가 예수 믿고 강도가 되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또 매는 좀 맞았고 상처는 입었어도 생명만은 살았으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좋은 날씨에 햇빛만 보고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궂은 날씨에 비 오는 것을 보고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질병 가운데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장사가 잘되고 수입이 좋을 때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가 안 돼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내려고 하고, 성공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중에도, 역경 중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성경은 말세에는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어려운 시기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가 감사로 깨어 있을 수만 있다면 행복은 결코 저 산 너머에 있는 무지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행복이요, 너와 나의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함으로 깨어 있는 행복감은 하나님께도 큰 영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