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밸런스 게임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옆에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대답해보십시오. “여러분은 감정적인 사람이 좋습니까? 이성적인 사람이 좋습니까?”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좋다.“고 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반대로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 좋다.”고 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의 경우 스스로 생각하시길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오른쪽 눈을 깜빡거려보세요. 반대로 “나는 이성적인사람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왼쪽 눈을 깜빡거려보세요. (깜빡이 잘 작동됩니까?)
보통 우리가 “저 사람 감정적이다.”라고 말하면 뭔가 좀 다혈질적이고, 그로 인해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행동이 충동적인 사람이라고 안 좋게 평가합니다. 반면 “저 사람은 이성적이다.”라고 하면 생각이 깊고, 사리판단을 정확히 하고, 행동이 바른 사람이라고 좋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안 그렇습니다. 이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단어도 ‘감정’이라고 안하고, 대신 ‘감성’ 혹은 ‘감수성‘이라고 좋은 단어를 쓰며,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로 좋게 평가합니다. 감정지수인 EQ(Emotional Quotient)가 높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성적인 사람을 도리어 차갑고 냉정한 사람으로 안 좋게 평가합니다. 지능지수인 IQ(Intelligence Quotient)은 높지만 감정지수인 EQ는 낮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여성은 감정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이것도 한번 물어봅시다. “대체적으로 볼 때 여성은 감정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아- 물론 개인에 따라 감정적인 남성도 있을 수 있고, 이성적인 여성도 많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의 현대 의학이나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은 감정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라고 일편적으로 말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이며, 편향된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리어 현대 의학과 현대 과학은 감정과 이성을 통합적인 관점으로 봅니다. 즉 감정과 이성이 따로 분리되어 작용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성경도 같은 맥락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감정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한 이성도 중요하게 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경은 타락한 인간의 감정과 타락한 인간의 이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변화되고 통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좋은 믿음의 소유자이고, 그래야 좋은 인격자이고, 그래야 좋은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감정이냐? 이성이냐? 말씀이냐?” 이에 대해 본문의 예를 들어봅시다. 베드로가 그의 동업자들과 함께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 억세게 재수 없는 날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의 배를 좀 빌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배에 앉아서 해변에 있는 군중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으라.” 이때 베드로의 감정이 속에서 말합니다. “아- 피곤해 죽겠어요. 이제 너무 지쳤단 말이에요.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어요.”
그리고 베드로의 이성도 속으로 말합니다. “아- 지금 이 시간에는 물고기가 안 잡히는 시간이에요. 더구나 지금처럼 환한 시간대는 깊은 데에서 물고기가 안 잡히는 시간이라고요. 제가 이래봬도 직업이 갈릴리 바다의 어부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시잖아요. 그러니 물고기 잡는 것은 제가 예수님보다 한참 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군중들에게 말씀을 전하실 때 베드로도 옆에서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다 보니 용기가 나고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합니다.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어도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
즉 감정과 이성은 모두 안 된다고 했고, 못한다고 했지만 말씀을 따라 실천하니 결국 희한하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어부가 된 이래로 가장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두 배에 가득 채울 정도로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즉 내 감정보다, 내 이성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축복이 다가옵니다.
또 다른 예화입니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그 사람이 자꾸 나를 괴롭힙니다. 못살게 굽니다. 이때 감정이 속에서 말합니다. “아이-짜증나! 화딱지 나! 도대체 저 사람 왜 나한테 자꾸 그러는 거야? 나도 똑 같이 되갚아 줄까?” 그리고 이때 나의 이성도 내게 말합니다. “아- 재가 너를 만만히 보는 모양이다. 앞으로 저 녀석은 상대하지 마라. 인사도 하지 마라.”
그러나 이때 예수님은 내게 말씀합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마5:44)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18:22) 즉 나의 나쁜 감정과 나의 나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아멘이지요?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말씀대로 살자.“ ”말씀에 순종하자.“
이번엔 요셉의 경우를 봅시다. 17살의 나이에 배다른 형들로부터 인신매매를 당하여 애급의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인권을 유린당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살이도 3년이나 했습니다. 인생 참 더럽게 꼬였습니다. 더 이상 살 마음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가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형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감정이 솟구칩니다. 옛날의 그때를 생각하면 화가 많이 납니다. 분노가 솟아납니다. 이때 그의 감정이 말합니다. “그래, 네가 지금 화가 많이 나는 것이 당연하고, 그 화를 복수로 푸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니 너도 이제 형들에게 복수를 해라.”
한편 그의 이성도 말합니다. “법대로 해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라는 법이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도 그 법을 적용하여 똑같이 되갚아줘라. 더구나 너는 지금 강대국 애급의 국무총리로서 재판관의 권세가 있지 않느냐?”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요셉을 무서워하는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도리어 껴안아줬습니다.
이를 어린이 버전으로도 해봅시다. 어린이 여러분-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데 그만 어저께 친구랑 크게 싸웠어요. 이로 인해 기분이 많이 상했어요. 이때 내 기분은 속에서 나에게 말해요. “아- 앞으로 다시는 재랑 놀지 말아야지.“ 그리고 내 생각도 속에서 말해요. “먼저 사과하면 지는 거다. 그러니 미안하다고 절대 말하지 말자.”
그런데 이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지요? “서로 용서하라. 사랑하라.” 하셨어요. 어린이 여러분, 이때는 어느 것을 따라가야 할까요? 내 기분을 따라 갈까요? 내 생각을 따라 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까요?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착한 어린이가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어른 버전으로 돌아가서 다니엘을 봅시다. 메대왕 다리오가 온 나라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왕 외에 다른 어느 신에게 기도하면 그를 사자 굴속에 집어넣는다.” 당시 국무총리인 다니엘도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왕의 명령은 자기를 죽이려고 정적들이 함정을 파놓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이때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그의 감정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무서워라. 굶주린 사자 굴속에 들어가면 온몸이 찢겨지고 굉장히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을 텐데... 앞으로 당분간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자.” 한편 다니엘의 이성도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기도할 때에 창문을 모두 닫고, 다른 사람이 보지 않도록 마음속으로만 기도하자. 이제 하나님을 믿어도 좀 눈치 것 적당히 믿자.”
그러나 다니엘은 무서움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따르지 않고, 또한 순간의 위험을 모면하려고 하는 약삭빠른 자신의 이성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평상시와 같이 하루 세 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결국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 굴속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 다니엘은 허무하게 사자들에게 찢겨 죽을 운명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이 다니엘을 해치지 못하도록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에 우리들을 보호해주신다는 겁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싹-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자기의 옳지 못한 감정과 이성을 좇아 고집스럽게 계속 나아가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입니다. 하루는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줍니다.
“왕이여,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고생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나도 괴롭힌 아말렉을 언젠가 손을 본다고 하셨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왕은 아멜렉을 쳐서 그들을 진멸하십시오. 그들의 우양과 동물들도 남김없이 제거하십시오.”
그러나 이때 사울 왕의 감정과 이성이 말합니다. “아- 짐승까지 굳이 죽일 필요가 있겠는가? 살찌고 좋은 짐승은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고, 또 나와 군사들을 위해 전리품으로 취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감정과 생각을 따르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비극의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사무엘 선지자가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면 하나님도 그를 저버린다는 겁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라가면 하나님도 그를 보호해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아주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신명기 28장의 말씀입니다. 한번 보실까요? (띠워주세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결론입니다. “주의 말씀은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고 했습니다. 크리스천의 기준은 나의 감정도 아니고, 나의 이성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로 감정에만 휘둘리면 안 됩니다. 이성에만 갇혀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믿음의 소유자요, 좋은 인격자요, 바른 크리스천이 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중에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모든 범사에 복을 받고, 많은 사람, 많은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우리들의 감정이 흔들리고, 생각이 복잡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감정과 생각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따르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