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힘의 능력으로

날짜: 
2016/10/23
말씀: 
눅24:49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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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에게는 거의 무한한 잠재 능력이 있습니다. 인류가 타락하기 전과 홍수 심판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900살 이상을 살았으니 육체적인 건강의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즉각 즉각 그들의 특성에 맞는 이름을 붙여 줄 정도이니 지적인 능력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정도이니 영적인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타락 이후, 그리고 노아 홍수 이후의 환경의 변화와 함께 인간의 능력도 많이 감퇴되어 수명도 현저히 줄어들게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100세를 넘기지 못하고 육체가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능력도 줄어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는커녕 하나님의 존재까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더구나 말세지말이 되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사단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이때 우리들에게는 이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암을 비롯해 각종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능력, 음란을 비롯한 각종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 저주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각종 가시와 엉겅퀴를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귀신과 사단을 이기고 사망도 이기어 마침내 부활과 천국에 이르는 능력, 그리고 이 외국 땅에서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케 되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능력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죄를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이 외국 땅에서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케 되는 능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는 것입니까? 혹 어떤 분은 그러한 능력이 인간의 지식이나 의학과 과학의 발전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혹은 자신의 경험이나 의지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를 원하는 사람을 의지가 약한 사람이나 현실 도피주의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을 이기기 위해서 너무도 절실하게 매달리는 중에 나의 능력의 한계를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무능함을 통감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당시 유명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로마 시민권자였으며, 당시 국제어인 헬라어도 능통하였고, 스스로 율법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들을 심히 핍박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트리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죄와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이 심히 큰 줄 알고 그 이름을 사울(큰 자)이라고 했지만, 진리를 알고 나니 자신의 능력이 한없이 미약한 것을 깨닫고 그 이름을 바울(작은 자)이라고 고쳤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능력이 큰 자’라고 불러주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오히려 ‘능력이 작은 자’라고 불러주기를 더 원했습니다. 물론 그는 다른 사도들보다 가장 능력이 많은 사도였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도 더 많이 고쳤고, 교회를 세우기도 더 많이 세웠고, 성경을 기록하는 것은 신약 성경의 거의 절반을 기록했고, 신비한 능력을 받아도 더 많이 받은 사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스로 ‘나는 능력이 적다.’고 깨달은 것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온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고린도 후서 4:7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즉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야 죄와 세상을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외국 땅에 이민 와서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능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혹 어떤 사람은 1년이 걸리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3년, 5년, 혹은 10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비로소 자신의 능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와 겸손히 그 분의 도움을 구하며 사는 진정한 크리스천의 길을 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민 생활의 어려움 중에서 가장 큰 유익은 그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그 분 앞에 더욱 겸손해지고, 그 분의 도움과 그 분의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 바른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외국 땅에서는 그 동안 한국에서 쌓았던 내 경험, 내 지식, 내 경력, 내 능력이 잘 안 통합니다.
한국에서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며, 가정도 잘 꾸며나가고, 이런 저런 일들도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외국 땅에 오면 누구나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한 초라함이 생겨 쉽게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때 다행히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을 빨리 찾게 되면 그것은 너무나 큰 유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와 절실히 기도하게 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귀중한 보배를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그리고 그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은 말로만 우리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요(살전1:5), 우리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롬1:16) 그리고 이 복음의 능력은 믿는 자들 가운데 역사합니다. 예수님이 이 외국 땅에서도 치료와 건강을 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이 이 외국 땅에서도 축복과 행복을 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이 나의 삶 속에서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주실 것을 믿을 때 그 분의 능력은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오므로 예수님과 이리저리 부딪혔습니다. 그 중에 12년 동안을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내가 이 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다.’ 믿고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치료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밀 지경인데 손을 댄 자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갔느니라.”(눅8:46)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께 손을 댔지만 오직 믿음을 가지고 손을 댄 자에게만 예수님의 능력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자신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자신을 간절히 찾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그 분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예수님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장차 우리는 그 분의 능력 없이는 이 외국 땅에서 숨쉬기조차 힘들어 질 것입니다.
더욱이 그 분의 능력이 없이 죄와 세상을 이기고, 축복과 행복을 얻고, 귀중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이전에는 여자의 무기는 눈물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여자의 눈물이 안 통하는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말세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시대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성의 차가운 이성도 안 통합니다. 말세의 시대는 막가파 시대가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시대는 오직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능력이 없으면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마귀한테 빼앗기고 맙니다. 더구나 이 외국 땅에서 눈물과 탄식으로만 가지고는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세상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능력을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에도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9)고 하셨고, “오직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두루 다시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행10:38) 사도 바울도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의 성도들은 기도해야 되는 것, 사랑해야 되는 것,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 성결해야 되는 것, 기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되는 것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어 실천을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더욱 간절히 예수님께 매어 달려 그 분의 능력을 힘입어 이 외국 땅에서도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