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현장을 보면서

날짜: 
2004/02/16
설교: 

제 목 ; 기적의 현장을 보면서
본 문 ; 요 6:5-13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수많은 기적의 사건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습니다. 즉 기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고 기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 기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까 ? 아니면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까 ?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 기적의 창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남이 만들어놓은 기적을 구경만 하는 사람입니까 ?
여러분, 남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구경만 하지말고 나도 예수님과 더불어 이 외국 땅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즉 기적은 2000년 전 예수님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기적을 만들어 내고, 누가 기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지 오늘 본문의 기적의 사건을 통하여 같이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기적을 만들어 내고 그 기적을 누리시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아가서 이러한 기적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모범된 자리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기적의 현장을 살펴보십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따라다녔던 사람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다름 아닌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도 좋지만 당장 배가 고프니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을 들을 힘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좇아 다닐 기력이 떨어졌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말합니다. "에이, 예수님 따라 다녀봤자 소용없어 ! 배만 쫄쫄이 굶었네 !"

여러분, 예수님을 믿다가 혹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양식이 떨어지거나 돈이 떨어지지는 않았습니까 ? 혹은 병이 들거나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습니까 ? 여러분은 이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에이, 예수 믿어봤자 별수 없어 ! 공연히 예수 믿는다고 시간 낭비하고 몸만 피곤해 졌네 !" 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까 ?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러한 원망 불평하는 태도로는 기적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성경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적들은 원망 불평을 통하여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안된다. 못한다. 가망 없다. 끝장이다."라고 말하는 부정적인 사람들을 통하여도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빌립이라는 제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빌립아,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 그러자 빌립은 인간적인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 금방 암산을 하고 예수님께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설령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곳은 빈들이지 않습니까 ? 이곳에는 이 많은 수천명의 사람들을 모두 먹일 수 있는 식당도 빵집도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있다할지라도 해가 저물어 가니 빵집도 식당도 이미 문을 닫았지 안았겠습니까 ? "
즉 예수님은 기적을 베풀고 싶은데 빌립이라는 제자의 대답은 현실적으로 안된다, 가망 없다, 못한다는 부정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빌립이라는 제자는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며, 바른 분석력을 갖추고, 상당히 똑똑한 엘리트일지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느 정도 남을 앞서갈 수 있고, 세상에서도 어느 정도 출세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기적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 배고픔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뭔가 역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여러분, 우리가 빌립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러한 태도로는 여전히 배가 고프고,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를 믿어도 별 볼일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고로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다가 낙심하여 믿음을 포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남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즉 상황을 더욱 나쁘게 몰아갈 소지가 있습니다.
물론 현실을 무시하고, 현실을 왜곡하고, 현실을 도피하는 것보다 빌립과 같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고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현실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 "이곳은 빈들이요, 날도 이미 저물었고, 돈도 부족합니다." 하는 현실을 파악하는 것만 가지고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곳 외국 땅에 이민 오는 많은 사람들이 한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현실의 상황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혹은 각종 방법을 통하여 현실의 상황만 바라보고, 보다 좋은 현실을 찾아 그 좋은 현실에 자신을 맞추기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외국의 현실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 않습니다. 현실만 바라보는 태도로는 낙심하기 쉽고 원망 불평하기 쉽습니다. 즉 현실만 바라보는 인생은 현실이 좋을 때만 행복을 느끼고, 현실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스스로 불행의 묘지로 들어가고 맙니다.
이민생활이 힘이 드는 것도 현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요, 많은 사람들이 현실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이곳의 현실이 나쁘다고 또다시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

예수님도 빌립이 이렇게 현실만 바라보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부 빌립과 같았다면 그러한 제자들을 데리고 하늘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예수님도 참으로 힘이 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기적을 만들어내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 바로 안드레라고 하는 제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안드레라는 제자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
본문에 보면 예수님과 같이 모인 사람들이 자그마치 남자만 5000명입니다. 즉 부녀자들까지 합하면 만 명이 훨씬 넘는 인원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지 않겠습니까 ?
도대체 안드레라는 제자는 어느 초등학교를 다녔는지, 산수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 우리가 짐작이 가지 않겠습니까 ? 참으로 답답한 일이요, 한심한 제자이지 않겠습니까 ?
이때 여러분이 예수님 같으면 어쩌시겠습니까 ? "어이구, 이 미련둥이야 ! 내가 너 같은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았으니 내 모양도 처량하다 ! 우리 같이 사역할 수가 없겠구나!" 하고 그 제자를 나무라고 그 제자와 같이 탄식만 하겠습니까 ? 아니면 "야, 너는 어찌 빌립보다도 못하니 ? 빌립에게 가서 산수 과외 좀 받아라." 하고 말하겠습니까 ?

여러분, 현실만 바라보고 안된다 못한다고 하는 빌립의 말도 문제가 있지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예수님께 달랑 가지고 온 안드레는 더 심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아마 이러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제자들도 안드레를 향해 눈을 흘기며 "야, 이 바보 같은 녀석 !" 하고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렇게 어려운 현실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어보는 그 질문이나, 또 그 질문에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제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끔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어리석다고, 미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단지 현실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그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 어려운 문제와 상황 속에서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기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용기있게 예수님께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드레를 더 이상 미련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너 어느 초등학교 나왔니 ?" 하는 그런 무식한 질문도 하지 마십시오. 안드레를 향해 눈을 흘기거나 안드레를 왕따를 만들지도 마십시오.
오히려 안드레처럼 어떠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예수님이 같이 계시므로 오늘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성경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기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설령 오늘 본문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그래서 모두가 배가 고파할지라도, 안드레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이 가질 바른 마음의 자세이지 않겠습니까 ?

여러분, 구약 성경 다니엘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큰 우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모든 사람들을 절하게 하는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므로 우상에 절대로 절하지 않는다." 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그만 불구덩이에 산채로 던져지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뭐라고 말을 했습니까 ?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 아옵소서."(단3:17-18)
즉 신앙을 지키다가 설령 기적이 안 일어나고 죽을지라도 신앙의 바른 태도를 가지고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신앙의 바른 태도를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아가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하나님은 극렬히 타는 풀무 불 속에서 건져내지 않으셨습니까 ?

여러분, 보통의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원망 불평을 하고, 상황이 조금 나아지거나 기적이 일어날 것 같으면 그때서야 "주여, 믿습니다." 하고 마치 자신이 기적의 주인공처럼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적은 온전한 믿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인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이 일으킨 기적을 자기가 이루었다고 그 기적을 도적질을 하는 자요, 기적이 일어날 때 자기의 공로를 안 알아주면 크게 시험이 들어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부터 기적을 일으키는 바른 믿음을 가지십시오. 설령 기적이 안 일어나더라도 기적을 일으키는 바른 마음, 예수님이 주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아 가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남이 일으킨 기적만 바라보고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구나 남이 일으킨 기적을 질투하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도 여러분도 예수님과 함께 하기에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기적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냈던 성경의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고로 우리도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 외국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더욱 힘있게 가꿀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요, 우리와 함께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이 벳세다 빈들에서뿐만 아니라 이 캘거리 땅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 모두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십시다. 우리 자녀들을 기적의 주인공들로 만드십시다. 그리고 그 기적이 일어날 때 우리 모두 그러한 기적을 베푸신 주님을 더욱 힘있게 찬양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