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 나라면

날짜: 
2025/02/01
말씀: 
요13:12-15
말씀구절: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설교: 

인도의 성자라고 하는 간디에게 한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간디가 잠시 생각을 한 후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대답의 뜻이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좋은데, 그리스도인은 별로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아하- 간디가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모범적이고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나 같은 그리스도인을 만났다면 간디가 이렇게는 말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어때요? 여러분, 나와 제법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그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야- 너를 보니까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 너를 보니까 너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 것 같다.”라고 말을 합니까? 아니면 “야- 너가 교회의 집사라면서? 집사가 어찌 그 모양이냐?”라고 안 좋게 보는 낌새가 있지는 않습니까?

올해 2025년 우리 교회의 합심 기도제목입니다. 1. 예수님을 닮게 하소서. 2. 예수님처럼 생각하게 하소서. 3. 예수님처럼 말하게 하소서. 4. 예수님처럼 행동하게 하소서. 오늘은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 나라면”입니다.

같이 한번 따라서 해봅시다. “내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 나라면” 여러분, 이 말을 매순간마다 계속해서 해보십시오. 하루에 10번20번이고 계속 해보십시오. 정말로 효과가 좋습니다. 저도 새해 1월 1일이 되어 뭔가 하나님께 보다 좋은 모습으로 서야 되겠다고 다짐을 해보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될지 잘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 바로 이 말을 해보는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 나라면 무엇을 하실까? 어떻게 하실까?“ 이 질문을 하면서 생각나는 답을 스스로 찾아보십시오. ”그래, 예수님이 지금 나라면, 예수님은 지금 나처럼 이렇게 빈둥빈둥 세월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야. 예수님이 나라면 지금 나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는 않을 거야? 예수님이 나라면 지금 무엇을 하실까? 그래, 예수님은 새벽이나 밤이나 특히 혼자 계실 때에 열심히 기도하셨지. 주님, 이 시간 같이 기도하십시다.”

자-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결국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인생의 시간이 보다 아름답게 꾸려질 겁니다. 같이 한번 따라 해봅시다. “예수님이 나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실까? 예수님이 나라면 지금 이런 안 좋은 생각을 하실까?”

여러분, 이 질문을 수시로 어느 때든지, 어느 장소에서든지 해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십시오. 돈을 쓸 데도 한번 질문을 해보세요. “내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 나라면, 지금 이 돈을 이렇게 쓰는 것이 과연 맞는가? 예수님, 당신이 저라면 이 돈을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주님, 예수님이 저라면 이 사람을 만나겠습니까? 주님이 저라면 이 사람을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고,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하루 스케줄을 짜면서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주님이 저라면 오늘 무엇을 하시겠어요? 원 투 쓰리... 주님이 저라면 오늘 어디 어디를 가시겠어요? 원 투 쓰리...”

좀 더 세밀하게 주님과 하나 되며 보다 가깝게 동행하기를 원하시면 이렇게 질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주님, 오늘 무엇을 먹을까요? 주님이 저라면 오늘 무엇을 드시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보다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드십시오.” 뭐- 예수님을 믿어도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늘 대화를 하시며 사시는 분들은 이런 질문도 종종 하게 됩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주님, 이 음식 맛이 어때요? 괜찮아요? 조금 싱겁지 않으세요?” 아- 뭐 먹는 것 가지고 이렇게 일일이 주님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한편으로는 너무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그럴 수 있습니다. 특히 귀신 들린 사람 중에 이런 현상이 종종 나타납니다. “야- 이것은 먹어라. 이것은 먹지마라.” 그리고 이렇게 귀신의 말을 한참 듣다보면 나중에 삐쩍 말라서 영양결핍이 되어서 죽기도 하고, 때로는 살이 무지하게 쪄서 호흡하기도 힘들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즉 주님이 내 안에서 나와 같이 음식을 드시면서 먹는 즐거움을 같이 나누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즉 먹을 때에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하셨으니, 무엇이 주님께 영광이 되는지 먹을 때에 주님께 물어보는 것이 마땅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에 입각하여 식사 전에 미리 스케줄을 짜고 기도를 하는 겁니다.

저희 집에 8년 전에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이 강아지가 사람처럼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멍멍멍- 낑낑낑- 깽깽깽- 거리며 개소리를 내면서 자기 의사 표현을 합니다. 이렇게 강아지하고 오래 지내다 보니까 슬슬 대화가 통하고 감정이 통합니다. 먹을 것을 주면 강아지가 감정 표현을 합니다.

“아- 이거 맛있다. 조금만 더 줘라. 낑낑낑-” “에이, 뭐 이런 맛없는 것을 주고 그래. 너나 먹어라. 멍멍멍-” 강아지 하고도 이렇게 감정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는데 하물며 인격으로 내 안에 오신 예수님 하고 같이 살면서 왜 이런 의사표현과 감정 표현을 잘 나누지 못할까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영, 예수님의 마음이 없어서 예수님의 감정과 예수님의 생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애인하고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 식당에 같이 갔습니다. 이때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묻지 않습니까? “자기야, 뭐 좋아해? 뭐 먹고 싶어?” 근데 이때 남자가 여자에게 묻지도 않고 “아저씨, 여기 매운 짬뽕 두 개 하고요, 군만두 하나 주세요.”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시킨다면 여자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런 사람과 데이트를 계속 하고 싶겠습니까?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같이 살고 싶겠습니까? 즉 서로 좋은 감정,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예수님께 먼저 물어보세요. “주님, 주님이 저라면 이 돈 어디다 쓰고 싶으세요? 주님이 저라면 지금 뭐하고 싶으세요?”

저의 경우는 목사님이다 보니 이에 대한 대답을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목사인 저에게 이것을 하라고 이미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6:4에 베드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그러니까 이 말씀대로 목사인 저는 “주님, 주님이 저라면 지금 뭐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서 “아- 그래, 나는 목사님이니까 설교 준비하고 기도하면 된다.”라고 즉각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주님, 주님이 저라면 뭐하고 싶으세요? 제가 주님이라면 지금 뭐를 할까요?” 자- 이에 대한 대답을 각자 해보십시오. 이 질문에 당장 생각이 안 나시는 분들은 혹시 지금 만나고 대하는 사람들 중에 신경이 쓰이는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람하고 같이 지내면서 혹시 사이가 안 좋아지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 질문해보세요. “주님, 그 사람과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지요? 주님이 저라면, 제가 주님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하- 주님은 그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주시겠구나. 그래,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셨지. 나도 그러면 되겠네. 그래, 나도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보자. 노력해보자. 파이팅!”

우리 교회에 연세가 드신 노처녀 노총각 분들이 제법 많은데 배우자감을 고를 때에도 주님께 질문을 해보십시오. “주님이 저라면 배우자감으로 누구를 고르시겠어요? 자- 이 질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이라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애야, 지금 너가 찬밥 더운 밥 가릴 때냐? 웬만하면 그냥 결혼해라.”라고 하십니까? 아니면 “애야, 나처럼 그냥 독신으로 속 편하게 살아라.” 일까요?

아니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애야,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된다.” “남자는 무엇보다 키가 크고 핸섬해야 된다.” 입니까? 아니겠지요? 그럼 뭡니까? 아- 성경에 나오잖아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이에 대해 혹 어떤 처녀, 어떤 총각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목사님, 결혼하면 그 사람 내가 데리고 살 텐데, 굳이 예수님에게 물어볼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예수님이 데리고 사실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책임지실 거 아니잖아요.” 어때요? 여러분, 이미 결혼 하신 분들은 이렇게 말하시는 철없는 미혼자 분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지 않습니까?

혹시 이 말 아닙니까? “니가 아직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는구나!”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사람 때문에 속 썩이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더구나 한 평생 같은 지붕 밑에서 살아야 할 배우자가 끼치는 영향력은 너무나도 대단합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의 속을 어떻게 다 압니까? 그리고 그 사람의 장래의 모습을 어떻게 다 압니까?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결국 좋은 배우자요, 좋은 사람입니다. 아멘이지요? 아- 여기서는 아멘을 잘 하지만 왜 나가서는 자꾸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고릅니까? 이거요. 못 말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자기 팔자라고 하며, 혹은 운명이라고 하며, 기독교적인 관점으로는 예정이라고도 합니다.

암튼 처녀 총각 여러분들이여, 결혼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저라면 누구와 결혼하시겠습니까? 이 대답에 가장 좋은 것은 주님이 내 안에 항상 임재 하셔서 주님이 즉각 말씀하시고, 주님이 직접 고르시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예수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감동이 늘 와야 하고, 예수님의 인도가 늘 있어야 합니다. 아- 이것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이정도 하고 본문으로 들어갑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2-15)

즉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너희도 우리들도 그대로 하라는 겁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길가에서도 다투었습니다. 쯧쯧쯧- 이거 참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 그들이라면 그렇게 높아지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결론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오시면 굳이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낮은 자리에서 그들의 발을 씻겨주며, 그들을 서빙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그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내가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이 나라면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이전에 내 멋대로, 내 맘대로, 내가 결정하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인생이 좀 험악해지고, 허무함은 더하고, 고생은 더 심해지고, 세월이 많이 낭비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과 같이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본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