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국어 실력은?

날짜: 
2024/06/01
말씀: 
마5:29-30
말씀구절: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설교: 

어느 아내가 집안일을 혼자 하기에 너무나 많고 힘이 벅차서 소파에 누워서 TV만 보고 있는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그렇게 TV만 보지 말고, 와서 설거지도 좀 도와줘.” 그러자 남편이 마지못해 일어나 대충 5분 만에 설거지를 하고 나서, 다시 소파에 누워 TV를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한숨을 푹- 쉽니다. 왜요? 아- 저 바보 같은 남편 녀석이 설거지란 말에 포함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설거지도 좀 도와줘.”라는 말에서 ‘설거지’란 꼭 설거지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쓰레기 버리는 것, 베큐엄(vacuum)하는 것, 화장실 변기 청소하는 것, 애들하고 놀아주는 것, 빨래하는 것 등 이런저런 잡다한 집안일이 다 포함된 단어입니다.

일종의 ‘제유법‘입니다. 제유법이란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나타내거나, 반대로 전체를 가지고 일부를 나타내는 수사학적 언어 표현법입니다. 그러니까 제유법을 아는 남편은 설거지 하고 나서, 쓰레기도 버리고, 바닥 청소도 하고, “뭐 또 도와줄 것 없어?” 하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좀 더 스마트한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주면서 “아이고, 우리 와이프 되게 애쓰네.” 하고 마사지까지 해줍니다. 즉 좋은 남편이 되느냐 나쁜 남편이 되느냐는 아내의 말뜻을 잘 알아차리느냐 못 알아차리느냐 하는 국어실력에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국어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즉 말과 언어를 이해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입니까?

성경의 말씀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성경에서 사용되는 수사학적 언어 표현법을 바르게 파악하고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즉 국어실력이 좋아야 합니다. 가끔 성경을 오해하고 잘못 해석하시는 분들 중에 보면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실력이 모자라서 엉뚱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 문장이나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이 되었고, 어떤 표현법을 썼는지 알아야 합니다. 앞서 말한 ‘설거지’는 제유법입니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예를 성경에서 들어봅시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한 ‘떡’은 꼭 떡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빵도 되고, 밥도 되고, 라면도 되고, 과일, 고기를 비롯해 모든 식료품이 다 포함된 말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들의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까지 다 포함이 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사역의 특징에 대해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더라.”(막4:33-34)

즉 예수님은 무식한 사람들도 알아듣기 쉽게 비유법을 많이 사용하면서 교훈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비유법에는 직유법, 은유법, 제유법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비유법으로 말씀하신 것은 비유법으로 풀어야 하고, 비유가 아니고 사실적으로 이야기하신 것은 사실로 해석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도 자주 과장법을 사용하면서 말씀하셨는데 그걸 진짜로 해석하면 큰일 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여기 있는 분들 모두가 한쪽 눈이 없는 애꾸눈이 되거나, 한쪽 팔이 없는 돌아온 외팔이가 될 겁니다. 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마19:12)

이 말씀에 입각하여 중세의 수도원 수도사들 중에 자기의 거시기를 싹둑- 잘라버리고 고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아- 이거... 예수님의 과장법을 몰라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중학교 국어 실력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옛날에 갑돌 씨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갑순 씨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한번 띠어보실래요.)

“사랑하는 갑순 씨에게, 당신을 보지 못하는 이 마음, 심장을 도려내는 듯합니다. 이렇게 당신을 보지 못하고 지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을 보지 못하니 밥도 물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숨도 쉴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보고 싶습니다. 김갑돌 올림.”

혹시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 중에 옛날에 이런 비슷한 연애편지를 쓰거나 받아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연애편지를 쓰는 분이 거의 없겠지요? 이 편지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갑순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갑돌이의 건강 상태는 어떨까?

첫째,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심장을 도려내는 듯하다고 하니까, 분명 심장에 큰 문제가 있을 것이다.

둘째, 죽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하니까 심리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겠다. 이 사람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거나 아니면 염세주의자로서 곧 죽을 방법을 찾아서 무언가 극단적인 일을 저지를 것 같다.

셋째, 위장에도 역시 문제가 있겠다. 밥도 물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니까. 이거 심각한 위장장애일 수 있겠다.

넷째, 기관지와 폐에도 문제가 있겠다. 숨을 쉴 수 없다고 했으니까. 아- 도대체 갑돌씨는 연애를 어떻게 하기에 이런 큰 병에 걸렸을까? 참으로 안됐다.

여러분, 이런 연애편지를 읽고 나서, “연애는 만병의 근원이다, 따라서 연애는 절대 하지 말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이게 바른 결론일까요? 그렇게 해석하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지능 발달이 덜된 사람이든지 뭔가 이상한 사람일겁니다. 그런데 갑돌이의 연애편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단지 사건사고만을 취재하는 신문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기사를 쓸까요?

아마 이렇게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고를 당해서 중상을 입은 환자 김갑돌 씨의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람은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습니다. 밥도 물도 넘길 수 없습니다. 심장에 도려내는 듯한 심한 통증이 있으며,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김갑돌 씨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매우 암담한 상황입니다. 이상 현장에서 또라이 기자가 전한 소식입니다.”

여러분, 연애편지는 어디까지나 연애편지로 읽어야 합니다. 연애편지에서 과학을 찾으면 안 됩니다. 연애편지를 마치 교통사고를 취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이 연애편지에서 갑돌 씨가 쓴 내용은 과장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반면 신문 기사에 난 기사는 과장법을 사용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즉 글은 상황에 맞게 이해해야 하고, 상황에 맞게 해석해야 합니다. 이 연애편지를 받은 갑순 씨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갑돌 씨의 건강상태를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염려를 하는 대신에 “아- 갑돌 씨가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과장법입니다.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23:24) 여러분들 중에 아무리 빅 마우스라고 해도 낙타를 삼킬 만큼 입이 크지 않습니다. 즉 과장법입니다. 또 다른 과장법 구절입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 여러분,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어떻게 들어갑니까? 이것 역시과장법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과장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사실을 전달하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혹은 보다 유머스럽게 느낌과 정서까지도 전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앞서 연인 관계에 있는 갑돌이와 갑순이의 경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때 정확한 과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상대방을 향한 자기의 마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과장법으로 표현할 겁니다.

우리 주위에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표현법 하나를 소개드리겠습니다. 혼기가 찬 딸을 두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자기 딸이 결혼을 하겠다고 한 남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버지가 그 남자의 이것저것을 살펴보니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부모의 입장으로 볼 때, 딸이 그 남자와 결혼하면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줍니다. “이러저러 하고 여차여차해서 그 남자는 결혼상대로 좋지 않은 것 같다. 부모의 입장에서 나는 이 결혼 절대 반대한다.” 그러나 딸이 뭐에 씌었는지 그 남자와 자꾸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단단히 콩깍지가 끼인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내키지 않더라도 결국 결혼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딸의 아버지는 뭔가 의심쩍어 그 남자에 대해 사람을 시켜서 뒷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그 남자에게 아주 치명적인 전과 기록이 있었습니다. 딸이 그 사람과 결혼하면 절대 안 됩니다. 당장 지옥이 펼쳐질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에게 그 남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주면서 이 결혼 절대 반대한다고 한 시간 이상 설명을 해주고 또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딸의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 남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저히 할 수 없어 아버지가 긴 한숨을 쉬며 딸에게 최후로 이렇게 말합니다. “정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 해. 그렇지만 나는 이 결혼에 1도 너를 도와줄 수 없어.” 그런데 딸이 알았다고 하면서 나중에 보니 이런 소문이 가족들과 친척들과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립니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들의 결혼을 허락하셨어요.” “어- 아닌데. 그 정 반대인데...” 그래서 그 아버지가 딸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서 물었습니다. “애- 너 도대체 지금 돌고 있는 이 소문이 뭐냐? 너 왜 내가 니들 결혼 허락했다고 반대로 말하고 다니니?” 그러자 딸이 대답합니다. “아- 아버지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정하라고 하셨잖아요? 그거 우리 결혼을 허락한 것 아닌가요?”

아- 이 딸은 아버지가 한 시간 이상 이야기하면서 그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한 것은 쏙- 빼고, 아버지가 최후로 딸에게 말한 이 한 마디를 마치 아버지의 약점을 잡은 것 마냥 끄집어내서 아버지가 자기들의 결혼을 이미 허락하셨다고 떠들고 다닌 겁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이 말이 결혼을 허락한 말입니까? 아니면 제발 결혼하지 말라고 반어법으로 말한 겁니까?

아버지의 이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보시고 여러분의 국어 실력도 체크해보십시오. “정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 해. 그렇지만 나는 이 결혼에 1도 너를 도와줄 수 없어.” 물론 이 말에 앞서 아버지가 딸에게 한 시간 이상 이 결혼을 절대 반대하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이 문장 하나만 따로 떼어서 들으면 “아- 이 아버지가 마음은 심히 안 좋아도 결혼을 허락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는 모양이다“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딸은 평상시 이 결혼에 대한 아버지의 100% 분명한 반대가 있다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딸의 마음 한편에도 자기가 그런 소문을 내고 다녔지만 그건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을 자기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것이고, 그로 인해 아버지와 관계가 단절이 될 것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안 사실이지만 딸과 그 남자가 연합해서 아버지 몰래 아버지의 소중한 재산을 이미 하나 둘 빼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나중에 안 사실은 이미 아버지가 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 즉 “정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 해. 그렇지만 나는 이 결혼에 1도 너를 도와줄 수 없어.”라는 말이 일어나기 몇 주 전부터 이미 아버지가 자신들의 결혼을 허락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딸과 그 남자가 연합해서 아버지가 딸을 불러다가 최후로 말한 그 한 시간 이상의 대화를 다 몰래 녹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말한 그 한마디만 따로 편집하고 떼어서 아버지 옆에서 그 결혼을 같이 반대한 어머니에게 카톡으로 보내면서 “보세요. 아버지가 이렇게 자신들의 결혼을 허락했지 않았느냐?”고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게 배후에서 몰래 녹음까지 하고, 또 그것을 따로 뽑아서 편집까지 한 그 남자에 대해 “아- 이 놈! 무서운 녀석이구나! 소시오패스구나! 이미 이 녀석은 오래 전부터 다 계획이 있었구나!” 하고 부랴부랴 그들이 몰래 빼돌리려고 했던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좀 이상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아- 이거 뭐야? 이 이야기 진짜 있었던 사실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꾸며낸 픽션이야?” 예- 이 이야기는 어느 면에서는 사실이고, 어느 면에서는 비유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한 이 이야기를 듣고 “아하- 이건 사실이면서도 어떤 것의 비유일 수가 있겠구나!”라고 깨달을 정도면 여러분의 국어 실력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고집이 아주 센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자꾸 부모에게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나 이번 고집은 도저히 부모가 들어줄 수 없는 똥고집입니다. 그러자 아이가 떼를 쓰며 밥을 안 먹겠다고 합니다. 혹 어떤 아이는 자기가 콱- 죽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모가 화가 나서 “그래 이 놈아! 밥 먹지 말고 굶어 죽어.”라고 말을 합니다. 혹은 “그래 이 놈아! 나가 죽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자- 이것에 대해 또 다시 국어 실력을 테스트 해봅시다. 부모가 자녀에게 한 이 말 “그래, 밥 먹지 말고 굶어 죽어.” 혹은 “그래, 나가 죽어.”라는 말이 진짜 굶어 죽으라는 말일까요? 진짜 나가 죽으라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이건 반어법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죽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때 가끔 아이들 중에 부모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 요렇게 얄밉게 말을 하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굶어 죽을게.” 혹은 “며칠만 기다려. 신문에 내가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날거야. 그리고 그 날이 아마 7월 7일 일거야. 바로 내가 태어난 생일이지.” “에라이, 이 못된 자식아!” 짝-!(뼘 때리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긍정이 되기도 하고, 강한 부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단어, 그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단이 되기도 하고, 정통이 되기도 합니다. 고로 그 문장의 표현 기법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해석의 능력은 많이 기도를 해야 하거나, 어떤 신적인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단지 중고등학교의 국어 실력 정도나 상식의 수준 정도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그 국어 실력조차 까먹고 오해를 하고 정 반대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버트란트 러셀’이란 분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이 분, 지성인 중의 지성인입니다.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사람입니다. 그분이 쓴 책 가운에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2)라는 것이 있는데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는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그 어머니와,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의견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기독교 교리를 위하여 생물학적 가족 관계를 끊으라는 의미이다. 이는 기독교의 확산과 함께 세상에 생겨나게 된 불관용과(관용이 아닌 좁은 마음) 지대한 관계를 가진 잘못된 태도이다.(56~57쪽) 즉 버트란트 러셀은 예수님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위하여 가족 관계까지 끊고 서로 원수가 되라고 했다고 오해한 겁니다.

여러분, 러셀이란 사람이 왜 이렇게 오해를 하게 되었을까요? 다름 아닌 예수님이 말한 문장의 수사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과장법을 오해한 겁니다. 예수님의 전체적인 사상을 모르고 단편적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예, 그럴 수 있습니다.

때로는 굉장히 유식한 박사가 성경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고, 반대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아주 무식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님의 말씀을 보다 잘 이해하기도 합니다. 왜 그러지요? 주님이 겸손한 사람에게 깨닫는 영을 주시면 깨닫는 것이고, 주님이 교만한 사람에게 깨닫는 영을 주시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초대 교회 때에 기독교가 로마의 핍박을 크게 받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표현법에 대한 잘못된 오해 때문에 비롯되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55)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입각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찬식을 합니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이를 오해하여 “기독교인들은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구나. 아- 이것들 식인종들이구나. 이렇게 정기적으로 사람의 피를 마시고, 사람의 살을 뜯어 먹으면 계속해서 사람을 죽이고 살인할 텐데... 아- 이거 매우 안 좋은 종교다.” 하고 무지막지하게 핍박한 겁니다.

자- 결론을 내립시다. 종종 우리는 국어 실력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사람 간에 오해도 하고, 성경도 오해하고, 이에 따른 비극적인 결과도 많이 생깁니다. 고로 이런 기도도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국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깨닫는 마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문장과 말의 뜻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이해력을 주시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더욱 겸손하여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깨닫는 은혜도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