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언젠가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찾고 들으면서 제 마음에 확- 와 닿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이 제목을 보고 “야- 이 제목 참 좋다. 나도 언젠가 이 제목으로 설교를 해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고, 그 제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의 신앙은 어둠속에서 증명된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울 때, 환난의 때, 어둠의 때의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조강지처’입니다. 여기서 ‘조’는 ‘술 찌꺼기 조’이고, ‘강’은 ‘쌀겨 강’입니다.
즉 술 만들고 남은 찌꺼기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극한 가난의 어려움을 겪으며 지조를 지킨 좋은 아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 사람의 진짜 됨됨이는 어려움 속에서 나타납니다. 좋을 때에는 누구나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점점 세지면 그 사람의 모습도 점점 확실히 나타납니다.
한국의 연예인들 중에 보면 아무래도 연예인이라 그런지 결혼할 때에는 참으로 호화롭고 화사합니다. 그리고 여성 연예인과 결혼하는 신랑감이 아주 부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들이 이혼하는 모습을 보면 남편이 재벌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재벌이 아니거나, 혹은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까 이혼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씁쓸합니다.
아무래도 ‘조강지처’ 하고는 거리가 먼 경우입니다. 분명히 그들도 결혼할 때에는 주례자가 “가난할 때나, 어려울 때나, 병들 때나, 힘들 때에도, 죽음이 그대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겠느냐?”고 물어 봤을 때 분명히 ‘예’라고 대답을 했을 텐데, 나중에 그 서약이 왜 깨졌습니까?
같이 살면서 각종 어려움을 겪어보고, 그 어려움 속에서 나타나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니 같이 일평생을 산다는 것이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겁니다. 결혼할 때에는 사랑만 있으면, 믿음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평생 해로할 것 같았는데, 그 어려움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하거나, 극에 달하다 보면 그만 사랑도, 믿음도 식어지고, 그 동안 살았던 정도 다 떨어지고 맙니다.
결혼한 지 오래되신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대들이 이혼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고 산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자식 때문에 차마 이혼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제는 사랑도 식어지고, 정도 떨어졌지만 솔직히 말해서 의리 때문에 삽니다. 배신자가 될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핸섬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얼짱, 몸짱, 부자, 권세자보다도, 그리고 겉으로 나타나는 그 사람의 처세술이나 인격보다도, 그 사람의 중심을 봅니다. 그런데 그 중심은 평상시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처해야 나타납니다.
저도 인생을 좀 살다보니 하나님이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의 경우도 이해가 되실 겁니다. 좋을 때는 헤헤- 거리고 살살 거리다가 조금만 상황이 나빠지면 획- 돌아서서 남이 되는 사람, 원수가 되는 사람, 큰 상처와 해를 끼치는 사람하고는 같이 지내기가 무섭습니다. “나도 언젠가 저 사람한테 당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 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하나님도 자신이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 때, 상황이 어려워지면 쉽게 도망가고, 쉽게 배신하는 사람은 사용하기가 참 힘이 드실 겁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이 되어도 절대로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인물들은 모두가 각종 어려움 속에서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욥이라는 사람입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큰 갑부였습니다. 플러스 자녀의 복도 받아 아름다운 7남 3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며 계실 때 사단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묻습니다. “너 어디 갔다 왔느냐? 뭐하고 왔느냐?” “아- 예, 제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면 네가 내 종 욥을 보았느냐?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니라.” 하며 욥을 매우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비꼬며 대답합니다. “에이- 하나님!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주니까 그가 그렇게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이지, 그의 가진 소유물을 다 빼앗아 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욕할 것입니다.”
즉 좋을 때에는 좋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뒤에서 욕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앞에서 욕하고 배신할 녀석이라는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네가 그의 소유물을 빼앗아 보고, 그를 시험해보아라. 그러나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
그 말을 듣자마자 사단이 쏜살 같이 나가서 욥의 가진 소유물을 다 빼앗습니다. 그 많던 소떼 양떼, 나귀 떼, 낙타 떼, 종들까지 싹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욥이 아끼던 사랑하는 7남 3여도 집이 무너져 모두 압사 당하고 말았습니다. 자- 이때 욥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캄캄한 어두움에 처할 때가 진짜 욥의 사람됨을 알 수 있을 때입니다.
이때 욥은 너무나도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할렐루야! 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가 가진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그렇게 슬퍼할 이유도 없고, 원망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재물과 자식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며 산 것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그 많던 소유물이 없어지자 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칭찬할 만합니다. 과연 욥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나님이 천사들의 수종을 받고 있을 때 사단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묻습니다. “너 또 어디 갔다 왔느냐? 무엇을 하고 왔느냐? 네가 욥의 소유물을 다 빼앗아도 그가 여전히 믿음을 굳게 지키지 않느냐?” 그러자 사단이 “아- 그러네요. 제가 괜히 욥을 시험했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뒤로 물러간 것이 아니라, 계속 끈질기게 욥을 참소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의 살과 뼈를 치면 그가 틀림없이 대면하여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 “그래? 그러면 네가 그를 시험해보되 그의 생명에는 손을 대지 말라.” 그 말을 듣자마자 또 사단이 쏜살같이 나가서 욥을 칩니다. 욥의 발바닥부터 머리 정수리까지 악창이 들게 합니다. 살에는 구더기가 끼고, 그 살이 문드러져 떨어져 나갑니다. 옴 몸의 뼈가 다 쑤시고 아픕니다.
그 모습을 본 욥의 처가 말합니다. “당신이 그래도 하나님께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겠느뇨?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러자 또 다시 욥이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2:10) 아- 과연 욥입니다. 이 큰 고통 속에서도 그는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욥의 고난의 기간이 얼마인가요?” 그러고 보니 저도 궁금합니다. 욥의 고난의 기간에 따라서 그의 신앙의 척도가 측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의 고난이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면 여러분들도 좀 버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찾아보았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그의 친구들이 조문을 왔습니다. 그때 욥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욥7:3) 즉 욥의 고통은 적어도 여러 달째 계속되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욥이 재앙을 당했을 때의 나이가 70세였고, 그 재앙이 완전히 물러가고 재산이 갑절로 회복되고, 자녀들도 다시 7남 3여를 얻을 때까지 30년의 기간이 걸렸습니다. 꽤 오래 걸렸습니다. 그 때가 그의 나이 100세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욥은 140년을 더 살아서 4대 손자들까지 보고 240살에 죽었습니다.
욥이 그렇게 오래 살았던 것에 대해서 좀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욥은 아브라함과 거의 동년배 사람이었습니다. 욥기서가 시편 바로 전에 있어서 다윗과 같은 시대로 착각하는데 실지는 꽤 오래 전의 창세기 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의 생명의 연수가 급격히 감소되었고, 그 후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제법 오래 살았던 시기입니다. 아브라함도 175세까지 살았습니다.
우리는 욥의 마지막이 병에서 완전히 회복이 되고, 잃었던 재산도 갑절로 늘어나고, 자녀들도 다시 생기므로 그가 겪은 재앙이 완전히 사라진 행복한 결말을 보게 됩니다. 해피엔딩입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아- 어려울 때도 하나님을 끝까지 잘 믿었더니 과연 해피엔딩이구나. 나도 그래야겠다.” 하고 소망을 갖습니다.
그런데 만약 욥의 재앙이 회복이 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대로 욥이 고통 속에서 죽었다면, 즉 해피엔딩이 아니고 새드(Sad) 엔딩이라면 여러분의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이, 하나님을 잘 믿어도 별 수 없네. 괜히 하나님을 믿었네. 괜히 시간 낭비만 했네.“ 하고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우상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계속 섬기겠나이다.”(단3:18)고 고백한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지키겠습니까? 즉 당신의 마음의 중심은 그 환난과 고통 가운데도 여전하십니까? 지금은 우리가 캐나다라는 참으로 좋은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누가 나에게 불이익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나 중국의 경우, 그리고 이슬람 지역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죽음이고 재앙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더욱 순수해지고 더욱 절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등을 돌리며 하나님을 멀리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성도님들에게 이런 권면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 초대 교회 성도님들은 그렇게 많은 환난을 겪고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그 믿음의 정조를 잃지 않고 아름다운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신앙이 우리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증명되는 그들의 믿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극한 재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욥의 신앙이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천사들과 사단 앞에서도 저와 여러분들을 자랑스럽게 칭찬하는 그런 모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