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날짜: 
2023/06/10
말씀: 
눅17:7-10
말씀구절: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설교: 

며칠 전 포털 뉴스 란을 보다가 이런 기사의 제목을 보았습니다. “해외 신문에 도배된 기적의 한국인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해서 들여다보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에티오피아는 6.25 한국 전쟁에 참여한 고마운 국가임.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이 253전 253승 무패신화를 달성함.

심지어 자신들의 월급까지 모아가며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한국 전쟁 고아들을 보살펴주기도 함. 그런데 에티오피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참전용사들은 한국 전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심하게는 참수까지 당하며 지금도 어렵게 살고 계심.

에티오피아는 인구 880만 명이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안과 의사는 160명밖에 되지 않고 참전용사 분들 중 눈이 아픈데도 환경과 형편이 좋지 못해 치료를 못 받고 있는 분들이 많음. 그리고 최근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한국전 정전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한국 기업이 생애 처음 만나는 참전용사의 모습과 이야기에 충격을 받게 됨.

참전용사의 비참한 현실에 한국 기업은 약속함. “저희가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진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에티오피아로 다시 돌아온 한국 기업은 생존해있는 참전용사와 가족들 모두 눈 검진 및 수술을 완료하고 이 모든 걸 기업명이 아닌 동참해준 한국인들의 이름으로 후원함.

약속을 지킨 한국 기업에 에티오피아는 열광함. “기적의 한국인들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다.” “그들은 우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 반응에 답하여 그 한국 기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그저 한국인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 참으로 감동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도대체 이 기업의 이름이 무엇인가? 누가 이 일을 했는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아마 대기업이나 잘 나가는 중견 기업 정도는 되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주 작은 기업이었습니다. 욕실 화장품 회사인 ‘인프레쉬(Infresh)’라는 회사입니다.

저는 이 큰 일을 하고서도 자신의 기업 이름을 나타내지 않고 “우린 그저 한국인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는 고백을 들으면서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종의 고백이 바로 이와 똑같은 고백입니다. “주여, 단지 하여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하실 때의 시대는 노예 제도가 있었던 시기이니 오늘날의 시대하고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하신 이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종이 된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와 같은 마음의 바른 자세와 동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어느 마을에 한 종이 있었습니다. 이 종은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밭에 나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점심때에는 양무리를 이끌고 나가 풀을 먹였습니다. 또한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가 어둑어둑해질 때에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참으로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애야, 수고했다. 좀 쉬어라.”라고 말하지도 않고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돌쇠야, 내가 배가 고프다. 빨리 밥 좀 차려라.” “아-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물론 주인보다 하루 종일 수고한 종이 더 배가 고팠을 겁니다. 그러나 종은 또다시 주인의 식탁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에도 옆에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이 일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주인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너 참 수고했다. 여기 보너스를 줄 테니 어디 가서 푹 쉬고 놀다 오너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보너스는커녕 돈 한 푼 주지도 않고 계속 부려먹었습니다. 거기다가 자기를 알아주거나 칭찬을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종이라고 그런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경우를 당할 때 오늘날의 보통 사람 같으면 “흥,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마음속으로 주인에 대한 원망과 함께 뒤돌아서면 주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상례일 겁니다. 그러나 이 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까다로운 주인의 마음을 잘 맞추고, 주인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릴까?" 하고 생각하는 종이었습니다.

게다가 평생에 주인을 위해서 그렇게 충실하게 일을 하고서도 “주여, 이 무익한 종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고 혹 주인이 자기를 알아주고, 자기를 높여주고, 자기를 칭찬할까봐 일부러 그러한 칭찬과 존귀의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겸손한 종이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내가 주인을 위해 그 만큼 열심히 일을 했으니 주인이 반드시 나를 알아줘야 하고, 나를 모든 사람 앞에서 칭찬해주고, 나를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종은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나 같은 부족한 종을 이제까지 사용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또다시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묵묵히 주인을 위해 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우리들도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때 바로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얻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는 속죄함을 받은 의인이지 죄가 없어서 의인이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내가 남들보다 잘나고 의로워서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아준 것이 아닙니다. 고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교회를 위해, 주님을 위해 무슨 큰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을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고백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한 그 일을 반드시 남이 알아줘야 한다고생각합니다. 그래야 힘이 난다고 합니다.

아- 물론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건 인격이나 생각이 어렸을 때의 모습이지, 성숙한 인격과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는 아닙니다. 즉 나는 누가 안 알아줘도 내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도리어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는데 누가 칭찬해 주면 “뭐야- 이거! 난 단지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왜 나를 칭찬해주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한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고전7:9,11-12)

이 말의 뜻은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뭔가 유익을 바라보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월급을 받고 일을 하지 공짜로 혹은 자기 돈을 써가며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율법의 정신에도 복음의 정신에도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사도 바울은 원론적으로 이 말을 했지만 자기에게 보수가 주어지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보수가 없어도, 스스로 돈을 벌어가면서, 자기의 생활비를 충당해가면서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왜 그러지요?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고전7:15-16)

즉 보수도 받지 않고,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죽을 고생을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나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생 하나님의 일을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도 바울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전7:16-17) 즉 누구든지 직분을 맡은 자는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일, 즉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대통령이나 수상도 마땅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피곤해도, 때로는 욕을 먹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남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그 일도 맡은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하는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좀 죄송한 이야기지만 설교의 현실화를 위해 제 간증을 좀 하겠습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처음 전도사로 발령 받았을 때 제 사례비가 당시 100만원 정도였습니다. 군대 시절 장교였던 제 월급보다 적었습니다. 그 100만원에서 십일조 떼고, 선교헌금 떼고 감사헌금 떼고, 주일헌금, 수요헌금, 금요헌금, 구역헌금 떼고, 심방비나 교통비 떼면 남은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저의 집에 아버님에게 복을 주셔서 그 사례비로도 삶에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제가 때가 되어 순복음 교회를 사직하고 선교사로 나올 때 퇴직금이 나왔습니다. 한 2,000만 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때 제 생각에 “아- 나에게 이렇게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이제까지 자리를 마련해준 것도 고마운데, 매달 100만원씩 준 것도 고마운데, 또 돈을 주네. 이걸 어떻게 쓰지?” 생각하다가 그 돈을 모두 헌금하고 왔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천국을 주신 것도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주의 종으로 삼아주시고,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서 이렇게 평생 봉사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너무 고맙지 않습니까? 즉 주의 일을 하면서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좀 했다고 하더라도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아니 왜 죄송스러워요? 아- 주님의 은혜와 그 사랑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죄송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회사에서나 어느 일터에서나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그때 사장님이나 주인이 “아- 너 참 일 잘한다. 참 성실하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뭐라고 대답합니까?

“아유, 뭘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주인이나 사장이 주는 월급에 비하면 내가 한 일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고 일을 했다면 내가 한 일이 아무리 많이 했어도 늘 죄송하다는 마음뿐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젊었을 때부터 이 정도 깨달음이 있으면 그 사람 사회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서 반드시 두각을 나타냅니다. 아- 그렇잖아요. 그렇게 일을 충성스럽게 열심히 하면서도 늘 죄송한 마음으로 겸손한데 누가 그 사람 높이지 않겠어요? 누가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겠어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위해 일을 하는 겁니다. 혹 남편이(아내가) 그런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는 단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못한 것에 주님을 바라보고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자- 부부가 이 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가정 틀림없이 행복한 가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심히 좋았더라.”겠지요? 그러나 말세로 갈수록 사람들이 이렇게 깨닫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주님을 바라보고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해타산 적으로만 혹은 이기적으로 생각하며 일을 합니다.자기가 한 일에 마땅한 보수나 대가가 없으면 바로 기분이 상합니다. 왜 기분이 상합니까? 주님을 바라보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내 생명의 은인이고, 지금 하는 그 일이 주님이 내게 맡겨준 일이라면 우리는 오늘 본문의 종처럼 어떤 크고 힘든 일을 했더라도 “주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고백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런 고백이 있습니까?

혹시 이전에는 이런 고백이 있었는데 그만 나도 모르게 언제부터인가 이런 고백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오늘의 말씀에 비춰보아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인격이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본문의 이 종의 고백이 평생 우리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주여,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