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계획

날짜: 
2025/01/01
말씀: 
빌2:5-11
말씀구절: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설교: 

어느덧 2025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아쉬움도 있었고, 후회도 있었을 겁니다. 반면 나름대로 크고 작던 좋은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좋은 일보다 어렵고 힘든 일을 더 잘 기억하고, 먼 과거보다는 당장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더 잘 기억하고 있기에, 일단 최근에 일어난 일들이 여러분들의 행복도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어때요? 여러분, 지난 2024년도가 행복하고 만족한 한해였습니까? 1. 매우 만족 2. 매우 불만족 3. 대체적으로 만족 4. 대체적으로 불만족. 이에 대해 이 시간 공개적으로 손을 들어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복도나 만족도 조사를 하면 그 대답이 어떻게 나올까요? 반수 이상이 대체적으로 불만족이나 매우 불만족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만족의 대답을 하신 분들에게 “그게 누구 때문이지?“라고 물었을 때 ”나 때문이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너 때문이다.“라고 대답한 사람보다 조금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불만족, 그 불행이 결국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는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는 겁니다. 즉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고 싶고, 더 만족하며 살고는 싶은데, 능력 부족이라는 벽에 항상 부딪히고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아주 큰 결심을 했습니다. 부엌의 음식 창고인 pantry 유리문에 이런 글귀를 적어놓았습니다. 한번 띠워보실래요? “피부 알러지 음식 : 1. 밀가루(글루텐) : 국수, 라면 : 과감히 버려! 2. 설탕 : 젤리 3. 우유(유제품) : 빵, 과자” “사지 말고, 먹지 말고, 가져오지 말고, 야채(당근, 샐러리, 양상추, 토마토)로 대체”

아- 그런데 제가 토요일에 ‘세이프웨이(Safeway)’에서 빵을 가져오는데 그건 모두 맛을 보았기에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에는 ‘파리 바게트’에서 훨씬 더 맛있고 질이 좋은 빵을 가져오는데, 그건 한번 쳐다볼까요? 안 쳐다볼까요? 안 쳐다 안봅니다. 아- 하와가 선악과 쳐다보다가 망했잖아요?

제가 작년에 이렇게 밀가루와 설탕, 유제품 다이어트를 했는데 스스로 점수를 매기면 몇 점일까요? 91점 정도가 되지 않았나 하는데... 근데 그건 있습니다. 밀가루 음식 안 먹으니까요, 인생의 큰 낙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맥도널드나 팀호튼을 비롯해 패스트푸드점이나 레스토랑을 안 가게 되고... 뭔가 허전합니다. 인생사는 재미가 조금 줄어듭니다.

암튼 그렇게 인생의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되었는데, 새해에는 무슨 특별한 소원이나 계획이나 결심이 있지는 않습니까? 한국의 Job Korea에서 2020년에 성인 남녀 16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직장인과 알바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입니다. “당신의 올해 소원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1위 : 취업과 이직 : 41% / 2위 : 경제적 여유 : 35% / 3위 : 가족들의 건강 : 19% / 4위 : 운동과 다이어트 : 17% / 5위 : 연애와 결혼 : 15% 순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새해의 결심에 대해 물었습니다. 늘 나오는 단골 대답은 1위 : 열심히 QT 해야겠다.(성경 읽어야겠다) 2위. 전도 해야겠다. 3위. 기도해야겠다. 4위. 예배에 열심히 다녀야겠다. 5위 : 더 열심히 봉사해야겠다. 6위. 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암튼 이렇게 각자 좋은 결심을 하시고, 나름대로 노력도 하셨고, 앞으로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노력한 대로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올해 2025년, 저는 담임 목사로서 우리 교회 식구들과 같이 1년간 합심하여 기도할 제목을 정했습니다. “1. 예수님을 닮게 하소서. 2. 예수님처럼 생각하게 하소서. 3. 예수님처럼 말하게 하소서. 4. 예수님처럼 행동하게 하소서.”입니다. 혹시 이 목표와 기도 제목이 좀 부담이 되거나 별로 마음에 썩- 들지는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올해 각자의 목표를 1. 한 달에 5000불 이상 벌기 2. 1년에 6만 불 이상 벌기 3. 1년에 만 불 저축하기 4. 5년에 5만 불저축하기로 하기에는 너무 돈돈돈 하는 것 같고... 도리어 스트레스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도 어찌 보면 큰 스트레스가 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이런 기도 제목을 정하고, 여러분들과 같이 애써보려고 하는 것은 저도 이제 나이가 먹고 하늘나라에 갈 햇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니까, 그날 주님 앞에 서서 좀 더 떳떳해지고 싶고, 좀 더 주님을 닮아서 그날 주님과 마음과 마음이 잘 통하여 주님과 좀 더 깊은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무엇을 닮아야 할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 성경에 보니까 예수님이 아주 욕을 찰 지게 잘 하시던데요.” “아- 그래요? 예수님이 어떤 욕을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3:33에 예수님이 이런 심한 욕을 하셨습니다. ‘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아- 예수님도 그런 못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욕을 하셨으니 나도 그런 욕을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 그래요. 예수님의 욕하는 것을 닮으시려고요? 하필-?” 그리고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 예수님이 이 땅에서 첫 번째 하신 기적이 뭡니까? 아- 맹물을 포도주로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들 취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저도 올해는 예수님처럼 술 좀 마셔보려고요.” “아- 그게 올해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싶은 겁니까?”

혹 어떤 노총각 청년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예수님도 장가 안 가셨지요? 위대한 사도 바울도 장가 안 가셨지요?” “예- 맞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본받아 장가를 안 가려고요.” “주여- 왜 그러니? 이 웬수야!” 암튼 올해의 기도 제목이 예수님을 본 받자인데 예수님의 무엇을 본받아야 할까요?

오늘의 본문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즉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을 본받자는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본받아야할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요? 이어지는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즉 우리가 본 받아야할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자기가 높아져야 출세했다고 하고, 남들보다 자기가 높아져야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출세와 하늘나라의 성공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낮아져서 그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교회에 온 이유도 처음에는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나를 좀 더 잘 대접해주고, 좀 더 높여주는 곳을 선호하지만, 나중에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가면 오히려 내가 그들보다 더욱 낮아져서 그들을 더 서빙하려고 하는 목적이 생깁니다. 그게 바른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태어나실 때에도 호화로운 궁궐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냄새나고 더러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가난한 빈민들과 함께 자라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도 호화찬란한 마차를 타고 입성하시지 않고 조그만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마21:5) 예수님도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 즉 겸손해야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말을 할 때도, 행동을 할 때도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11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골로새서 3:17에도 말씀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씀하고, 하나님처럼 행동하시므로 친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과 온유로 그들을 섬겨야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죽기까지 충성하신 예수님의 그 성실하고 충성스런 마음을 본받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한국의 소설가 김동인의 단편소설 중에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남자가 매춘부와 관계를 하다가 그만 성병에 걸렸습니다. 잘못하다간 아내에게도 옮겨지고 유전도 되는 아주 독한 성병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잠자리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어- 이상하다! 나중에 사실을 살펴보니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 임신을 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를 이리저리 아무리 살펴봐도 자기를 닮은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빠와 아기가 하나도 안 닮았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아내도 남편도 태어난 아이도 당장 불행해지고 가정이 깨질 것 같았습니다.

뭔가 아기가 자기와 닮은 곳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아기를 이리저리 살피는 중에 발가락을 자세히 보니 아- 갓 태어난 아기가 자기와 같이 발가락이 5개입니다. 그래서 그 소설의 제목이 ‘발가락이 닮았다’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과 당신은 어디가 닮았습니까? 말하는 것이 닮았습니까? 마음이 닮았습니까? 행동이 닮았습니까? 인격이 닮았습니까? 혹시 발가락만 5개 닮은 것이 아닙니까?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는 세 권의 고전 책이 있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이 세권의 책의 주제는 결국 하나로 통일됩니다. 즉 예수님을 닮자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어 의로워진 우리들이 성화를 이루며, 결국 예수님처럼 영화로움에 들어가자는 겁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어서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결론입니다. 아무쪼록 2025년도엔 각자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여 예수님과 잘 통하고, 깊이 교제도 하시고,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보다 큰 기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