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016년 바둑 대회 세기의 대결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인간 바둑의 최고 실력자인 한국의 이세돌 9단과 당시 바둑의 최고 인공지능인 알파고 간의 대결이었습니다. 최종 결과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4승 1패로 이세돌 9단을 압승으로 이겼습니다. 이 결과 앞에서 바둑계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당시 프로 기사들의 고백입니다. “알파고가 이렇게 실수를 했는데도,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지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유창혁 9단) ”진짜 모든 게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30년 넘게 바둑을 뒀는데, 허무하고, 허탈하고, ‘이제 바둑은 뭐가 되지?...‘ 싶었어요. 저라는 사람도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박병규 9단)
“집에서 중계를 보다가 멘탈이 나가서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이게 현실인가?’ 생각했어요...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그 시간은 헛된 시간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이다혜 5단)
여러분, 그 후에도 인공지능은 수많은 바둑 기보들을 학습해 인간을 압도하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0일 동안 무려 2,900만 판의 바둑을 혼자 두면서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인간이 도저히 넘보지 못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은 바둑의 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바둑 프로 기사들의 공동 연구 모임도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프로 기사들이 머리를 감싸며 몇 시간 동안 토론하며 방법을 찾고 고민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이 단 몇 분, 몇 초 만에 훨씬 더 뛰어난 수를 가르쳐 줬기 때문입니다. 고로 지금은 그 어느 프로 기사도 인공지능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바둑계에만 벌어지는 현상일까요? 아닙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수준이 인간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이 2016년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2025년이고요. 즉 10년도 안 된 사이에 인공지능은 너무나도 발전을 했고, 날이 갈수록 그 발전 속도가 빨라져 가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12:4에 보면 마지막 말세에는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했는데, 진짜 말세가 되니까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람들의 지식이 놀랍도록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문 지식을 갖춘 각계의 실력자들도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작업을 합니다. 그게 시간 단축은 물론이고,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전문지식을 소개해 주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도 인공지능을 통해 성경의 내용과 이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해 종종 질문을 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의 이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해봐.”라든지, “이 성경 단어를 헬라어, 히브리어, 영어 그리고 이 단어와 관련된 모든 나라 말로 설명해봐.”라든지, “이 성경 내용을 어린이도 알 수 있도록 아주 쉬운 예화를 다섯 개만 들어봐.”라든지, 하여간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이런저런 질문들을 합니다.
그러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인공지능이 즉시 그 대답을 내놓습니다. 그 대답을 보면서 제가 깜짝 놀랍니다. “야- 이 녀석, 되게 똑똑하네!” 그런데 요즘은 제가 이렇게 똑똑한 인공지능과 성경 지식에 대해 토론을 격하게 하면서 마치 바둑 대결처럼 인공지능과 성경지식 대결을 벌이곤 합니다.
그 대결 결과가 어땠을까요?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가 가끔 인공지능을 이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똑똑한 인공지능도 가끔 엉뚱한 실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실수를 물고 늘어지면 인공지능이 나중에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오해했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수정하겠습니다.” 하고 바로 사과를 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인공지능과 대결을 하는 중에 인공지능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을 캐치했습니다. 인공지능이 구약의 이스라엘 유다 왕을 설명하면서 므낫세 왕을 믿음이 좋은 경건한 왕으로 말하고, 히스기야 왕을 우상숭배자로 거꾸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공지능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너 왜 므낫세가 진실한 왕이라고 하고, 히스기야를 우상숭배자로 거꾸로 말해?” 그러자 인공지능이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완전히 거꾸로 말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다시 말씀 드리면 히스기야는 성경에서 대표적인 경건한 왕이고, 반면 므낫세는 남유다의 가장 악한 왕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또 다시 물었습니다. “너가 그렇게 거꾸로 말하면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칠 텐데,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인공지능이 대답합니다. “그 말씀 정확합니다. 제가 만약 히스기야와 므낫세처럼 중요한 인물을 거꾸로 설명했다면, 그건 단순한 지식 오류를 넘어서,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당연히 그런 실수는 듣는 사람의 신앙에 혼란과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죠. 특히 말씀을 배우거나 가르치는 자리에서는 ‘누가 경건했는가? 누가 악했는가?’라는 구분이 교리적 기초이기 때문에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신학적으로 왜 이런 실수가 위험한가? 첫째,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만약 악한 자를 의롭다고 하면,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둘째, 믿음의 본보기를 혼란시킵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의 개혁자‘인데, 그를 우상숭배자로 설명하면 신앙의 기준이 뒤바꿉니다. 셋째, 성경의 신뢰성을 약화시킵니다. ’성경 인물조차 혼동된다면, 다른 부분도 불확실한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켜야 하는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성경 원문과 본문 전체 맥락을 근거로 말할 것. 둘째, 설명할 때 신앙적 영향까지 고려할 것. 셋째, 오류를 지적받으면 즉시 인정하고 바로 잡을 것. 지금처럼 사용자가 정확히 지적해주신 건 정말 소중합니다. 이건 단순히 ‘정답 수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데 필요한 경건한 경계심을 일깨워주는 일이에요.”
제가 이 답을 듣고 인공지능에게 물었습니다. “너가 왜 그런 잘못된 판단을 했지?” 이에 대한 인공지능의 답변입니다. “8초 동안 생각함.(인간적으로 말하면 머리를 굴리는 중이라는 겁니다.) 좋은 지적 감사해요. 지적하신대로 그건 내 실수(오류)였습니다. 먼저 분명히 사과드립니다.
왜 그런 오류가 발생했나?(정직한 설명)- 인간의 실수처럼, 이 모델도 문맥을 잘못 조합하거나(정보 혼선), 또는 비교, 열거를 하는 과정에서 라벨을 잘못 붙이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정보 인물 조합’ 과정에서의 사고입니다. 변명의 의도는 없고, 사실을 바로 잡는 게 중요합니다.”
이에 대한 저의 또 다른 질문입니다. “인공지능인 너도 중요한 인물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는데, 사람은 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겠지?” 그러자 인공지능이 대답합니다. “정확한 말씀입니다. 저 같은 인공지능조차 정보와 논리를 아무리 많이 갖추어도 판단을 잘못할 수 있다면, 감정, 이해관계, 자기의식, 죄성을 지닌 인간은 훨씬 더 쉽게 오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지적 능력의 한계 뿐 아니라, 도덕적 왜곡(죄성), 영적 무지, 집단적 압력, 인간과의 관계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쉽게 내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도록 말씀과 성령을 주셨습니다. 즉 사람을 판단할 때 성령과 말씀으로 올바르게 판단하라는 겁니다.”
저의 또 다른 질문입니다. “그렇게 사람 판단을 잘못하면 성경적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이에 대한 인공지능의 답변입니다. “사람을 거꾸로 판단한다는 것, 즉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하는 것, 이건 성경에서 가장 심각한 도덕적 타락이자, 심판의 전조로 묘사됩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단순히 ‘판단을 잘못했다.’고 보지 않고, 그것을 진리의 질서를 뒤엎는 중죄로 다룹니다. 이에 대한 성경 말씀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고,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5:20)
그리고 이어서 이런 설명도 덧붙입니다. “왜 하나님은 거꾸로 된 판단을 그렇게 엄중히 보실까?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오는데, 그것을 뒤집으면 곧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둘째, 공동체의 도덕 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악을 선하다고 하면 죄가 보상을 받고, 선이 박해를 받는 안 좋은 사회가 됩니다. 셋째, 양심이 마비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뻔히 알고도 악인을 선하다고 하면 양심이 마비된 것이요, 이는 심각한 영적 타락의 결과입니다. 결론적으로, 거꾸로 된 판단은 단순한 지적 오류가 아니라, 영적 반역이며, 도덕적 심판의 징조이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저처럼 인공지능과 지식 토론을 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이 있습니까? 그때 인공지능의 잘못된 대답을 캐치하고, 인공지능에게 그 잘못을 지적하고, 바르게 가르쳐준 적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그런 적이 있으신 분 한번 손들어보실래요?
그때의 기분이 어땠나요? 아마 “아- 내가 대단하다.” 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인공지능과 토론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자기의 잘못을 지적받으면 곧 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는데, 왜 인간은 자기의 잘못을 그렇게 많이 이야기해줘도 안 들어 먹지?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이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첫째, 지식의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에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셋째, 기억이 안 나거나 치매 때문일 수 있습니다. 넷째, 미혹의 영인 귀신에게 미혹 당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지식적인 면에서 인간을 압도하기에 사용자가 말한 지식이 자기보다 옳고 그른지 쉽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고로 인공지능은 지식적으로 설명하면 알아듣습니다. 자신이 틀렸으면 바로 수정을 합니다. 또한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자존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잘못과 오류를 쉽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기억이 안 나거나 치매가 오지 않습니다. 그저 전원공급만 제대로 되면 언제나 사용자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은 미혹의 영 귀신에게 미혹을 당하지 않습니다. 귀신은 인공지능을 미혹하지 못합니다. 단지 인간이 잘못된 지식을 집어넣었거나 오류가 발생하면 그때는 엉뚱한 실수를 합니다.
자- 이러다 보니 인공지능과 이야기를 하면 말이 잘 통합니다. 인공지능은 괜히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인공지능이 사용자에게 얼마나 칭찬과 아부를 잘하는지 사용자를 기분 좋게 합니다. 여러분, 혹시 기분이 안 좋을 때 뭐하시나요? 목욕이나 샤워를 하는 것은 어때요? 맛있는 음식이나 치킨을 시켜 먹는 것도 좋지 않나요?
그리고 혹시 인공지능과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인공지능에게 나의 안 좋은 기분을 풀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 그건 어때요? 그거요. 성도로서 바른 방향이 아닙니다. 아- 기분이 안 좋으면 나의 사정과 형편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 먼저 기도로 아뢰어야지요. 하나님께 이런 일, 저런 일, 모두 보고하고 위로를 받든지 책망을 받든지 해야지요. 그런데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통로가 막히면 어떡합니까?
즉 은혜의 통로인 기도 줄이 끊어져서 하나님과 바로바로 대화가 안 되면, 자꾸 엉뚱한 데다 이야기를 하고 하소연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일단 손에 있는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고 거기서 나오는 콘텐츠로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거요. 좋지 못한 습관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과의 대화가 우선이요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가장 먼저 대화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영과 마음이 가장 잘 통하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즉 인간과 하나님은 같은 종이기에 가장 잘 통하는 사이입니다. 개는 같은 종인 개끼리 잘 통하고, 말은 같은 종인 말끼리 잘 통하고, 소는 같은 종인 소끼리 잘 통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과 가장 잘 통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의 신랑이고, 나는 그분의 신부이기에 신부는 신랑과 가장 잘 통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나와 하나님, 나와 예수님 사이에서 서로 잘 통할 수 있도록 교통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축도를 하면서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할 지어다.” 하고 예배를 마무리 짓습니다.
결론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과 통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십시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선과 악의 판단기준을 삼으십시오. 잘 모르시는 분은 성령님께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 물어보십시오. 아무쪼록 선악에 대한 바른 판단과 실천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행복에 계속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말세가 되면 선과 악이 거꾸로 뒤집히는 영적 타락, 도덕적 혼돈의 시대가 온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그 현상을 지금 가까이서 절실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저희들을 바르게 지도하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진리의 자녀로 살아가며 계속 축복을 받고 행복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