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실한 신앙 꾸준한 신앙
본 문 ; 잠언 28:10
옛날 옛날에 어느 마을에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토끼와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거북이가 살았어요.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어이- 느림보 거북아 ! 나랑 달리기 시합을 해보지 않을래 ? 너 따위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지만 말이야. 어때 ?" 토끼는 거북이를 무시하며 말했어요.
그러자 거북이가 대답했어요. "토끼야, 내가 비록 느리지만 한번 시합을 해볼까 ? 빠른 것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어 !" 그리고 토끼와 거북이는 내일 당장 1시에 동산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경주가 시작되었어요. 저기 언덕 위에 있는 소나무까지 먼저 도착하는 시합이었어요.
토끼는 깡충깡충 뛰면서 순식간에 달려가 버렸어요. 그러나 거북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어요. 토끼는 깡충깡충 뛰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거북이가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어요. "아휴, 저 느림보 거북이 ! 여기까지 오려면 아직도 멀었겠다. 여기서 한숨 자고 가야지 !"
토끼가 동산 위에서 한참 잠을 자고 있는 동안 거북이는 계속 엉금엉금 기어갔어요. 이제 조금만 더가면 소나무까지 도착하게 되었어요. 그때 잠에서 깨어난 토끼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거북이가 벌써 소나무에 가까이 갔잖아 !" 토끼는 일어나 깡충깡충 거리며 뛰어갔지만 꾸준히 엉금엉금 기어간 거북이가 먼저 도착하게 되었어요.
"거북이 만세 ! 만세 !" 이렇게 해서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은 거북이가 이겼어요. 그때부터 토끼는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다시는 놀리지 않았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못 들어 보신 분이 있습니까 ? 그렇다면 초등학교를 제대로 못나온 분이거나, 혹은 이곳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이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 대개는 주제 파악을 하게 되리라 여겨집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빠르고,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가졌어도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에게는 진다는 교훈이 아닙니까 ? 그런데 어떤 분은 "아이- 목사님, 지금 우리 수준을 어떻게 보고 그런 설교를 하십니까 ?"라고 웃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단순하고, 너무도 쉽고,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사람들은 잊고 살거나 혹은 무시하고 넘어가기를 잘합니다. 즉 성실함과 꾸준함이 자신을 성공의 길로 이끈다는 평범한 진리는 잊어버리거나 혹은 무시하고 어떤 특별한 재주나 은사가 자신을 성공의 길로, 출세의 길로 이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요즘에는 "그 사람 참 성실해 !"라고 누군가 말을 하면, "그 사람 좀 융통성이 없어서 답답하겠군 !" 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일쑤입니다. 즉 요즈음 사람들은 빨리 출세하고, 빨리 인정받고, 빨리 성공하는 비결을 이상한 데서 찾으려고 합니다.
말을 잘하고 유머를 잘해야 성공하는 줄 알고 말쟁이가 되는 책을 보며 온통 그곳에 정신을 쏟기도 합니다. 혹은 상사에게 잘 보이고, 줄을 잡아야 성공을 하는 줄 알고 아부와 아첨의 천재가 되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요? 그분은 우리의 말을 보시지 않고, 외모를 보시지 않고, 지식을 보시지 않고, 학식을 보시지 않고, 돈을 보시지 않고,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마음의 중심이 변하지 않고 일편 단심 하나님을 향하여 성실한 사람, 꾸준한 사람을 하나님은 인정하십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이 될만한 인물을 고르기 위해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했습니다. "사무엘아,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삼상16:1)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사무엘이 이스라엘 왕을 고르기 위해 이새의 집에 가보니 그의 아들이 8명이나 되었습니다. 순서대로 장남인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서자 사무엘 선지자는 그의 신장과 용모를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과연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여기 있도다 !"
사무엘이 장남인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려고 하자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동작 그만 ! 사무엘아,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이런 식으로 이새의 7명의 아들이 순서대로 사무엘에게 나아왔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으로 뽑은 사람은 말째 아들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방문한 그 날도 다윗은 꾸준히 성실히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형들처럼 왕이 되려고 나서지도 않았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잘 보이려고 뽐내거나 우쭐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성실함이 있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꾸준한 충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유심히 관찰하셨습니다.
"저렇게 꾸준한 사람이라면, 저렇게 성실한 사람이라면 이스라엘 왕이 되어도, 부귀영화를 주어도 그 마음이 변함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겠구나 !" 아닌게 아니라 다윗은 꾸준한 사람이었습니다. 좋을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꾸준하게 기도하고, 꾸준하게 찬송하며, 꾸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죽어서도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꾸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꾸준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 쉽게 그 마음의 중심이 무너지고 변질되는 사람입니까 ? 아니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다가와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일을 충실히 감당하며 나아가는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
여러분, 한 차례의 반짝이는 충성은 쉽지만, 반짝이지 않더라도 일생동안 충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도 세상사람들이 그리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열악한 환경, 낮은 자리에서 평생동안 꾸준하고 성실하게 충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꾸준한 사람, 성실한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가치관이 혼돈된 시대에서 꾸준하게 일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게 보일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 "개미는 여름에 꾸준하게 열심히 일을 했지만 베짱이는 여름에 놀기만 하다가 추운 겨울이 되었다. 베짱이는 먹을 것이 없어서 개미에게 얻어먹는 가련한 거지 신세가 되었다." 여러분, 이것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제 1탄입니다. 바로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그러나 제 2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디스크에 걸려 눕게 되었다. 그 동안 벌어놓은 재산을 다 치료비로 탕진하여 개미는 알거지가 되었다. 그러나 베짱이는 노래만 하다가 너무 노래를 잘 하게 되어 음반을 냈다. 음반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베짱이는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여러분, 이 이야기는 가치관의 혼돈 시대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개미처럼 성실하게 꾸준하게 일해보았자 허리디스크만 걸리고 손해만 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베짱이처럼 자신의 노래가 히트만 치면 당장 일확천금을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개미의 꾸준하고 성실한 인생을 살려고 하지 않고 베짱이 같은 기회주의적인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제 3탄은 이렇습니다. "허리디스크에 걸린 개미는 목사님을 모셔다 안수 기도를 받고 깨끗이 병 고침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베짱이는 그 많은 돈으로 술과 마약을 하다가 몸이 망가져 죽었다." 즉 이 이야기는 다시 정상적인 가치관으로 돌아온 사회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영어 공부를 하면서 이런 격언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
"Many a pickle makes a mickle.(티끌 모아 태산)"
"Many drops make a shower.(물방울이 모여 소나기가 된다.)"
"Rome was not built in a day.(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느리지만 꾸준한 사람이 경주에서 이긴다.)
성경도 꾸준함과 성실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신다"(시31:23)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사곡히 행하는 부자보다 나으니라"(잠28:6)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잠28:10)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37:3)
전기의 발명자인 발명왕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된다" 여러분,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 그리고 상당수의 예술가들은 이 말들이 사실임을 입증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노력 없이 이루어진 것 같은 그들 작품들의 배후에는 가장 엄격하고 꾸준한 자기 수양이 은폐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피아니스트 패데레우스키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을 연습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한 소절, 한 장의 악보를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 50번이나 반복하여 연습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한번은 빅토리아 여왕이 그의 연주를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패데레우스키씨, 당신은 진짜 천재이군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여왕 폐하, 저는 천재이기 이전에 노력가입니다"
여러분, 일시적인 충동이나 흥분과 즐거움 때문에 헌신하고 정열을 쏟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목숨 다하는 날까지 평생 동안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 없이 한 길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헌신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 받을 때에는 펄쩍 펄쩍 뛰며 좋아하다가는 이내 주저 않고 마는 신앙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고 자신의 입맛에 맞을 때는 목숨이라도 내어놓을 듯 하다가 감정이 나빠지고 불편한 일이 나타나면 마치 원수 만난 것처럼 교회를 대적하는 그런 신앙도 있습니다.
교회를 2-3년마다 옮겨 다니며 떠돌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서는 믿음이 자라간다고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꾸준하게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 꾸준하게 기도하는 사람, 꾸준하게 섬기는 사람, 꾸준하게 예배드리는 사람,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꾸준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나는 사람, 오래 될수록 더욱 신뢰가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기를 우리는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