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말 한마디, 표현 하나가 상황의 흐름을 크게 바꾸거나, 관계를 망치거나 회복시키기도 한다는 의미로 자주 쓰입니다. 성경에서도 말의 뉘앙스와 표현의 차이가 큰 영향을 준 장면들이 여럿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얼마 전 저희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붕수리업체가 일기예보를 잘못 알고 공사를 진행하다가 그만 지붕 안으로 빗물이 들어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입니다. “아이쿠, 이거 대형사고 났네!” 아닌 게 아니라 추후에 이에 대한 견적을 내니까 74000불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 처리에 관해서 지붕회사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아- 잘 되었네요. 이번 기회에 천장을 새것으로 교체하면 되겠네요.” 그 말을 듣고 제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뭐야- 이거? 아니 이 사고에 대해 일단 책임자로서 먼저 사과를 해야지, 사과는 하지 않고 뻔뻔하게 도리어 잘 되었다니?”
며칠 전 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제가 변호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 변호사 앞에서 지붕회사 사장님과 제가 의견조율을 하는 통화를 했습니다. “아- 사장님이시지요? 이번 사고로 인해 보험 처리를 해야 하는데, 보험회사가 우리보고 디덕터블(deductable : 본인 부담금) 5000불을 내라고 하는데, 이거는 우리가 하나도 잘못이 없는데 왜 내야 하지요? 그쪽에서 내야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 보험사에서 보상비가 더 많이 나왔으니 유익이 된 것이 아닌가요?” 이 대화를 제 앞에 앉아있는 변호사가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고에 대해 보험사에 현금 처리(cash settlement)를 요청해서 보상비가 나온 것은 맞지만, 우리도 아무 잘못이 없지만 디덕터블 5000불을 내야할 억울한 상황이고, 이로 인해 내년에 보험비도 올라가게 됩니다.
더구나 우리도 그로 인해 정신적, 시간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문화와 법률이 다른 이곳 캐나다에서 영어로 이 일을 처리하느라고 몇 개월째 큰 스트레스를 받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 통화를 마친 후 제가 지붕회사 사장님에게 이건 아니다 싶어 장문의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의 내용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오늘 보험처리 문제로 통화한 것은 사실 변호사가 증인이 되어 바로 앞에서 다 듣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통화를 마친 후 저희 변호사가 세 가지 옵션을 제안했습니다. 1번, 보험처리를 교회보험으로 클레임하지 않고, 다시 처음부터 지붕회사의 책임보험으로 클레임을 한다.
2번, 지붕회사에 줄 잔금에서 디덕터블 5000불을 빼고 준다. 3번, 디덕터블 5000불과 추후에 있을 교회보험료 인상에 대한 손해를 교회가 부담한다. 이에 대해 교회에서 담당자들의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같이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기에 좋은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같이 기도해주시지요. 살롬“ 그리고 이어서 인공지능을 통해 얻은 몇 가지 예화를 소개했습니다.
예화 1
* 질문 : 지붕수리 업체가 일기예보를 잘못 알고 공사하다가 지붕 안으로 물이 들어와 큰 피해를 입었는데, 도리어 지붕수리업체가 보험 처리가 잘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
* 답변 : 그 상황이라면 지붕 수리회사 측의 말은 매우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표현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당신은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 그 말이 문제인가?
1. 보험처리는 보상이지 면죄부가 아니다. : “보험처리 잘 되셨잖아요.“라는 말은, ”결과적으로 잘 해결이 되었으니 저희 실수는 더 이상 문제 삼지 마세요.“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들릴 수 있습니다. 보험금은 회사의 은혜가 아니라,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메우기 위한 최소한의 보상입니다. 게다가 피해자에겐 시간, 스트레스, 불안, 손실 등 금액으로 환산되지 않는 피해도 존재합니다.
2. 잘못한 사람이 하면 안 되는 말이다. : 만약 피해자가 스스로 “그래도 보험으로 처리돼서 다행이에요.”라고 말하는 건 위로이지만,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결국 문제없잖아요.”라고 들리며, 사과 대신 뻔뻔한 자기변명이 됩니다.
3. 피해자에게는 그 말이 상처가 된다. : 지붕에서 물이 샌다는 건 건물 전체에 큰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전자제품, 가구, 천장, 바닥, 심지어 곰팡이까지 장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도 “보험으로 잘되셨죠?”라는 말은 마치 “손해 본 것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며, 피해자의 고생을 무시하는 말이 됩니다.
4. 이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 잘못한 사람은 결과가 어찌 되었든, 말보다 먼저 책임지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정확한 일기예보 확인을 못해 피해를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실수로 이런 일이 생겨서 얼마나 불편하고 걱정되셨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사과를 표시한 후에 보험 이야기는 보완적으로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화 2
어느 날, 냉장고 수리기사가 실수로 고장도 안 난 부품을 건드려 냉장고 전체가 망가졌습니다. 결국 고객은 제조사로부터 A/S를 받고 전면 무상 교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수리기사가 웃으며 말합니다. “결국 새 냉장고 받으셨네요. 결과적으로 좋으셨죠?” 고객은 순간 화가 치밀었습니다. “당신 실수로 멀쩡한 냉장고가 망가졌는데, 그게 좋다고요?” 여러분, 잘못한 사람이 말하는 “결과적으로는 유익했네요.”라는 말은 면피성으로 들립니다.
예화 3
어떤 운전자가 앞차를 박아놓고는, 피해자가 입원하고 치료받는 사이 나중에 말합니다. “그래도 보험처리 잘 되셨죠? 병원비도 나오고 위자료도 받고... 결과적으론 이득이 되셨네요.” 이 말을 듣고 피해자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나는 그 사고 때문에 목이 아직도 아프고 일도 못 갔는데, 그게 이득이라고요?” 사람의 고통을 돈으로 덮으려는 말은 진심 없는 위로보다 더 상처가 됩니다.
예화 4
청소도우미가 유리컵을 실수로 깨트렸는데, 주인이 아끼던 기념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소도우미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차피 오래된 컵인데, 이번에 예쁜 걸로 새로 사셨다면서요?” 주인은 그 컵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주신 유일한 컵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나서 울었습니다. 여러분,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그 이후의 말이 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훈 요약
사람은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하지 ‘결과적 유익’을 논하지 않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말하지 않으면, 말이 칼이 됩니다. 말 한 마디에 진심이 실려 있어야 위로가 됩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여기서도 딱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상이 되어서 다행입니다.”라고 했다면 전혀 다르게 들렸을 거예요.
자- 이런 장문의 글을 보내자 지붕회사 사장님이 답장을 보냈습니다. 어떤 답장을 보냈을까요? 이런 답장입니다.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말로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결정되는 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정중히 사과를 드립니다.” 아- 그래도 다행히 이 분은 자신의 잘못을 금방 시인하고 진정으로 사과를 하니까 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자- 다음은 오늘의 주제에 대해 성경적으로 알아봅시다.
사울 왕이 다윗을 질투하여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자기를 따르는 일행들과 함께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피신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피신생활을 하던 중 갈멜 지방에 나발이란 사람이 큰 부자인데 마침 그가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력 산업은 목축업이었는데 양털을 깎는 날은 그 집안의 1년 중 가장 큰 잔칫날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나발은 3000마리의 많은 양들이 있으므로 그 양털을 깎고 처리하기 위해 집안의 모든 종들을 총동원하고, 마을 사람들도 삯을 주고 동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먹을 음식들도 많이 장만했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아- 하나님이 배고픈 우리 일행에게 먹을 것을 주시려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나발에게 소년 10명을 보내 요청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발씨, 저는 다윗입니다. 이전에 당신의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지켜주므로 그들이 해를 입지 않았고, 한 마리의 양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일행이 심히 피곤하고 음식이 좀 필요하니 제가 보낸 소년들에게 음식을 좀 나눠주십시오. 당신과 당신 집안이 모두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다윗 올림.”
그러나 이 요청을 접한 나발이 다윗이 보낸 소년들에게 이렇게 모욕적인 말을 합니다. “도대체 다윗이 누구냐? 최근 주인에게 도망친 종들이 많이 있는데, 다윗도 그런 놈이 아니냐? 내가 어찌 그런 놈에게 내 떡과 고기를 주겠느냐?“ 아니, 음식을 주기 싫으면 “아- 저희가 나눠줄 정도로 그리 음식이 많지 않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어느 정도 성의만 보이면 될 것을 다윗을 대놓고 모욕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인격 모독의 말을 듣고 다윗과 다윗의 일행이 몹시 화가 났습니다. “아니, 우리가 이전에 그들을 보호해주었고, 은혜를 베풀었는데, 이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고, 한때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고 골리앗을 무찌른 이스라엘의 영웅인 다윗을 조롱하다니! 이런 못된 놈! 죽일 놈!” 그래서 그들은 나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려고 400명이 각기 칼을 차고 나발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잠시 후에는 나발의 집이 온통 쑥대밭이 될 겁니다. 그때 나발의 아내인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불량한 자기 남편 나발이 다윗을 조롱한 언행을 알아차렸습니다. 아- 큰일 났습니다. 이로 인해 집안에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래서 아비가일은 종들을 시켜 급히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도 다윗에게 달려가 공손이 엎드려 간청합니다.
“내 주여, 청컨대 저의 남편의 무뢰한 말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든든한 집을 세우실 줄 믿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싸움을 하고 있으니, 당신의 생명은 하나님이 보호하실 겁니다. 저는 하나님이 당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것을 믿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이 말을 듣고 다윗은 화가 풀어지며, 이 여인의 지혜를 칭찬했습니다.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하마터면 내가 오늘 피를 흘릴 것을 네가 막아주었구나. 네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라. 내가 너의 말을 듣고 너의 청을 허락하노라.” 보십시오. 누구는 무례하고 불량한 말로 다윗의 분노를 일으키고, 누구는 공손하고 지혜로운 말로 집안사람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보면 말 한 마디 잘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키며 치료의 기적을 체험한 여인이 나옵니다. 일명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입니다. 하루는 이방인 여자 하나가 예수님의 뒤를 쫓아다니며 계속해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 딸이 흉악히 귀신이 들렸나이다.”
이 여인이 하도 소리 지르고 귀찮게 하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주님, 아- 이 여인이 이렇게 계속 뒤따라오며 소리를 지르는데, 이 여인에게 가라고 하든지, 뭐라고 좀 하십시오. 귀찮아 죽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여인이 예수님께 절을 하며 또다시 간절히 부탁합니다. “주님,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을 개로 취급을 했는데, 아- 예수님도 이 여인에게 이런 말을 하므로 여인이 큰 모욕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보통 사람 같으면 “흥- 내 요청을 들어주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나를 개로 취급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 하냐? 아이고- 자존심 상해! 두고 보자.” 하고 포기하고 돌아갔을 겁니다. 그리고 뒤에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인격을 모독하는 질이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했을 겁니다. 혹은 예수님은 이방인들을 인종 차별하는 아주 안 좋은 사람이라고 이간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녀를 둔 어머니입니다. 더구나 자기 자녀가 흉악한 귀신이 들려 심히 고생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즉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자기 자존심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예수님께 간절히 사정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이런 지혜롭고 감동적인 말을 듣고 이 여인을 칭찬합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 그러자 그 시로부터 그의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고 딸이 온전해졌습니다. 보십시오. 지혜로운 말 한 마디, 믿음의 말 한 마디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기적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은 말의 지혜, 말의 태도, 말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0-21)
이 글을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입을 잘 놀리면 단 것을 실컷 먹고, 입술을 잘못 놀리면 쓴 것을 들이켜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달렸으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 현대인의 성경 번역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말 한 마디 잘해서 만족을 얻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혀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혀를 놀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받는다.”
결론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언뜻 보기엔 말을 잘하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예- 맞기는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과 머릿속에 있는 근본적인 생각과 사상이 하나님의 진실과 공의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말이 나와야 가식적인 말이 아닌, 진실 되고 올바른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혹 말의 표현력이 어눌하고 좀 부족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은 나의 중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과 일치된 마음의 중심에서 나오는 좋은 말로 보다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가족,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가며, 서로가 평강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가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바르고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내 주위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우리들도 행복하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도 행복하게 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