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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이 해군 장교로 임관하여 부임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해군 제독이 카터에게 묻습니다. “자네 사관학교 때에 공부는 잘 했나?” 카터가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예- 820명 중에 59등을 했습니다.” 카터는 그렇게 대답을 한 후에 해군제독이 자기를 칭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해군 제독이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자네는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Why not the best?)"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카터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습관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땅콩 밭의 주인이 일약 미국의 대통령이 된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봅시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절히 권고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어 적당히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온 힘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최선을 다하여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하면 하나님이 너희와 너희 자손들에게 장수, 축복, 번성, 건축지 아니한 성읍,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 파지 아니한 우물, 심지 아니한 포도원, 감람원을 주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 자녀가 최선을 다하여 공부를 하거나 맡은 일을 충실히 행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마음이 흐뭇합니다. 하루는 부모님이 바쁜 일이 있어 바깥일을 보러가면서 초등학교 6학년 자녀에게 집안 청소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집안 청소를 잘해놓으면 얼마간의 돈을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모가 다시 집에 돌아와 보니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청소를 잘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동생도 잘 돌보고 있었습니다.
누구 이야기일까요? 제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집안 청소를 제법 잘합니다. 그런데 저보다 집안 청소를 더 잘하는 양반이 있습니다. 저의 집 사람입니다. 부부가 집안 청소를 잘하며 깨끗하게 지내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부부 중에 한 사람은 집안 청소를 잘하고 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이혼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심하게 애를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여간 제가 그렇게 부모님이 밖에 일보러 나갔다가 들어오면 제 여동생을 씻기고, 돌보고, 때로는 어린 초등학생으로서 콩나물국도 끓여 놓고 밥도 차려놓고 부모님을 맞이하고 있으면 저희 부모님이 돌아와서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리고 약속하지 않았던 보너스도 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부모님인 하나님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약속한 축복 + 보너스를 주십니다. 기왕이면 저와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므로 보너스까지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로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일찍부터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는 예배를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도 최선을 다하여 응답해주십니다. 반면 하나님을 만나려고 교회에 오는데 만날 지각만 하고 딴 생각, 잡생각만 하면 글쎄요, 그런 예배 자세를 가지고는 믿음이 자라지 않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예배 때 찬송을 부를 때에도 입만 벙긋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찬송을 드리고, 기도를 할 때도 대충대충 건성건성 기도하지 마시고 아주 열심히 하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듯이 기도는 못할망정 가끔은 땀도 좀 나면서 기도하려고 애쓰는 것이 보기가 좋습니다.
헌금을 낼 때에도 남의 눈치 보지마시고 최선을 다하여 헌금하는 것이 보기가 좋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헌금보다도 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 동전을 내는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칭찬하셨을까요? 그 과부는 없는 중에도, 궁핍한 중에도 최선을 다하여 생활비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사건을 보게 됩니다.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이 어린 아이의 도시락인 오병이어를 통하여 기적을 만드신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에 광야에서는 모두가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는 어린아이에게는 상당히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그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한 어린 아이의 최선을 다한 헌신이 있기에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어찌 보면 기적이란 인간의 최선과 하나님의 최선이 결합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불신자들보다 잘 믿는 크리스천에게 기적이 더 자주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잘 믿는 분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너희에게 억지로 5 리를 가자고 하거든 그와 함께 10 리를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너희의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도 주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남을 도와줄 때에도 억지로, 마지못해, 소극적으로 돕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땅에다 파묻어 둔 종을 게으르고 악하다고 책망했습니다. 반면 바로 나가서 주인이 주신 재능과 달란트를 사용하여 힘을 다한 종들은 착하고 충성되다고 칭찬했습니다. 즉 최선을 다해야 할 사람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우리는 게으르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뻔히 알고도 게으른 것이 지속되면 그건 악하다고 말을 합니다.
성도와 목사로서, 아내와 남편으로서, 학생과 선생으로서, 사장과 사원으로서, 각각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성도, 좋은 목사가 되는 것이요, 좋은 아내와 좋은 남편이 되는 겁니다. 반면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게으른 모습은 우리 크리스천에게 어울리지 않는 생활 태도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 모르드개, 다니엘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외국 땅에서 이방 민족으로 있으면서 그 나라의 국무총리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충성을 해도 누가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보시고 있으니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미혼으로서 혼자 이 외국 땅에 오신 분들의 경우에는 부모님이나 누가 간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국땅에서 최선을 다하기는 고사하고 게으르고 악한 길로 들어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이 보든 안 보든, 하나님이 보시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2에 보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베스트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베스트입니다. 물론 우리의 실력이 달려서 하나님이 요구한 베스트를 드리기가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나의 무능함을 애통해하며 최선을 다하도록 힘을 써야합니다.
제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 사람들도 노는데 최선을 다하는데, 그리고 고스톱을 치거나, 나이트클럽에서나 노래방에서 놀며 춤을 추거나, 술집에서 노는 데에는 며칠 밤으로 새우고 최선을 다하여 노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되지 않겠는가?
저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어찌하든지 운동도 잘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운동선수들을 보면 죽도록 연습합니다. 이전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는 연습을 하면서 “가끔은 너무 힘이 들어 자동차 속에 뛰어 들어가 죽고 싶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골프 선수 박세리는 “밤새도록 1000개의 퍼팅을 하고 잠을 잤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일에 나는 더욱 최선을 다해야 되지 않는가? 그래야 양심이 있는 목사, 양심이 있는 성도가 아닌가? 여러분! 양심 있는 아내, 양심 있는 남편, 양심 있는 젊은이, 양심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아무리 해도 내 힘으로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을 달라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다가 주님 앞에 칭찬받는 모습으로 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