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춥지 않게 해주세요.

날짜: 
2025/12/13
말씀: 
출22:26-27
말씀구절: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설교: 

사람마다 체질이 각각 다릅니다. 어떤 분은 추위를 많이 타고, 추위를 매우 싫어하는 분이 있고요, 어떤 분은 더위를 못 참는 분이 있습니다. 특히 캘거리에 살면서 이런 분들 종종 봅니다. 분명히 추운 날씨인데도 반바지와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겁니다. “어- 뭐지? 저 사람!”

“당신 춥지 않아요?” “예- 하나도 안 춥습니다.” “아- 그래요?” 여러분의 경우는 어떤가요? 더운 것과 추운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싫고 어느 것이 좋습니까? 물론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노인의 경우 70% 정도가 실내 온도 26도를 선호합니다. 청년과 중년의 경우는 20-24도 정도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성별에 따라서도 차이가 납니다. 여성의 경우 체지방 분포와 근육량 차이 때문에 남성보다 조금 더 따듯한 환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성은 활동적이거나 땀이 많이 나는 경우 시원한 환경을 더 좋아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전체적인 선호도 비율은 6:4의 비율로 차가운 것보다 따뜻함을 더 좋아합니다.

혹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여름엔 시원한 것이 좋고, 겨울엔 따듯한 것이 좋습니다.” Me too. 저도 그렇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1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기는 겨울이 6개월입니다. 상당히 추운 동네입니다.

그러다보니 더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데, 추위는 상당히 신경이 쓰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부터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여- 춥지 않게 해주세요.” 날씨도 춥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특히 마음이 춥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춥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그렇다고 캘거리의 겨울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 그러니까 요즘 아무리 지구 온난화가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지구와 태양이 존재하고, 태양과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는 한 겨울과 추위, 여름과 더위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설계하시고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고로 추운 지방은 여전히 춥고요, 더운 지방은 여전히 덥습니다. 문제는 이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저는 추위를 좀 잘 타는 편입니다. 집안 온도도 22.5도로 맞춰놓고 삽니다. 요즘같이 추울 때, 가끔 잠옷 차림으로 쓰레기를 버리려 집밖에 나갈 때가 있습니다.

“아이고- 추워라.” 그러면서 저의 집이 웨스트(서쪽)에 있다 보니 로키 산이 바로 보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저 추운 산속에 사는 동물들은 도대체 이 추운 겨울날 어떻게 살지? 쟤네들은 히터도 없고 난방시설도 없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래, 너희들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각자 능력을 주셨지. 아- 내가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하네. 애들아- 죽지 말고 잘 살아라. 내년 봄에 또 다시 보자.” 하며 로키 산을 향해 바이(Bye)- 하며 손을 흔들고 쏜살같이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아이 추워!”

이렇게 추운 동네에 살면서 신경 쓰고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여- 보일러, 훠니스(Furnace) 고장 나지 않게 해주세요.” 특히 제가 목사님이다 보니 교회 난방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이 추운 겨울에 난방이 고장 나면 예배드리기가 힘들어집니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난방이 잘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대성전은 온수난방이다 보니 공기도 좋고 기분 좋게 따뜻합니다. 마치 어머니 품처럼 온화하고 포근합니다. 요즘 제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어머니라고 부르면 더 좋지 않을까? 딱딱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보다 포근한 ‘하나님 어머니’라고 부르면 전도에도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어때요? 여러분! 그거 좋은 아이디어 아닙니까? 아- 이거요,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성경에는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면 자칫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들을 어머니처럼 돌보신다는 표현은 있습니다.

이사야49:15 말씀입니다. “어미가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교회를 가리켜 ‘어머니’라고는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을 낳고, 양육하며, 사랑으로 품어주는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엄마가 자녀를 돌보듯 성도들을 돌보는 것과 같습니다. 고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는 어머니로 칭했고, 종교개혁자 칼빈도 교회를 어머니로 비유했습니다. 즉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을 낳고 기르며 품어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같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우리 교회가 어머니 같은 따뜻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경우 어렵고 힘들 때에 아빠와 엄마 둘 중에 누구를 먼저 부릅니까? 물론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여-’를 먼저 부르지만,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에 누구를 먼저 부릅니까?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향으로 유아기 때(0-3세)에는 7:3의 비율로 엄마를 더 부릅니다.

그리고 영유아기 때(3-6세)에는 6:4의 비율로 엄마를 더 부르고, 초등기 이후(6-10세) 때에는 5:5의 똑같은 비율로 아빠와 엄마를 부릅니다. 그리고 청소년기가 되면 다시 6:4의 비율로 엄마를 아빠보다 더 선호합니다. 왜 사람들이 아빠보다 엄마를 더 선호하고 먼저 부를까요? 다름 아닌 엄마의 따뜻함과 포근함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저와 여러분도 좀 더 포근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아내, 따뜻한 남편, 따뜻한 부부, 따뜻한 가정, 따뜻한 교회, 따뜻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한번 따라서 해보실래요. “당신은 저보다 훨씬 더 따뜻한 사람입니다.“ 옆에 분에게 이 말로 같이 인사해봅시다.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출22:26-27)

당시에 겉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밤에 몸을 덮을 수 있는 담요 역할을 했습니다. 즉 겉옷은 추위와 감기와 저체온 증으로 인한 사고를 막는 생존과 안전을 위한 필수품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런 겉옷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요, 인권유린이라는 겁니다.

신약 시대에도 야고보서 2:15-17에 말씀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자비로운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셨습니다.(출13:22)

오늘날로 말하면 더울 때는 시원하게 하시고,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특히 광야의 밤은 급격히 기온이 떨어집니다. 매우 춥습니다. 그들에게는 따스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얼어 죽습니다. 하나님은 추운 캘거리에서 사는 우리들을 위해서 따뜻한 옷, 따뜻한 음식, 따뜻한 집, 따뜻한 교회, 따뜻한 가정, 따뜻한 사람들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따뜻한 성령님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도록 하셔서 우리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시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곳 캘거리에서 겨울을 지내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따스하고 포근한 사랑이 임하여 보다 따스한 겨울, 행복한 겨울을 지내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하나님을 본받아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인사, 따뜻한 말, 따뜻한 마음으로 캘거리의 추위에 떠는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인생의 추운 겨울을 만나서 고생하는 그들의 옆에 계속 머물러주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의 히터를 더욱 세게 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이 먼저 성령의 불로 뜨거워지기를 기원합니다.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고 했습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번역하면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공동번역, 새표준 번역)는 겁니다. 영어번역으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Do not quench the Spirit."

여러분, 불 꺼진 항구, 불 꺼진 화로, 불 꺼진 도시는 너무나도 썰렁하고 춥습니다. 이 추운 캘거리 겨울날 우리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마저 꺼지면 우리는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나아가 육체적으로도 너무나 힘들고 춥습니다. 살기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고로 성령의 불은 절대로 꺼지도록 방치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에 항상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레6:13) 즉 각자의 마음의 성전에 성령의 불이 꺼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온도가 따뜻하면 혈관의 피가 잘 돌듯이 영적으로 따뜻함을 유지해야 영혼의 순환이 좋아지고 영적 건강이 좋아집니다.

따뜻한 마음 따뜻한 성도가 교회를 포근하게 하고 살립니다. 따뜻한 아내, 따뜻한 남편이 가정을 따뜻하게 꾸밀 수 있고, 자녀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고로 서로 따뜻한 부부가 되십시오. 서로 따뜻한 성도가 되십시오. 계속 성령의 불을 지피고, 계속 기도의 히터를 돌리시고, 계속 말씀의 연료를 공급받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명령대로 서로 사랑하십시오.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그 따스함으로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다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외국 땅 추운 겨울, 캘거리에서 견딜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한 겨울에도 춥지 않고 따스함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차가운 마음과 냉담한 태도를 제거해주시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가정과 교회를 따뜻하게 하며, 서로를 사랑하며 격려하게 하시옵소서. 추운 겨울을 보다 따뜻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