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하늘로 올려지시다(눅 24:50-53; 행 1:9-11)>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사실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볼 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으로서 저- 먼 나라 사람, 딴 나라 사람인 이스라엘 사람, 그것도 2000년 전의 아주 먼 옛날 사람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볼 때 기독교라는 종교의 미혹에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비정상적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어리석다고 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그렇게 이렇게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믿음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얻기까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쓰는데 그중에 ‘표적’이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 개정’ 성경에 보면 구약(약 32회)과 신약(약 48회)을 합쳐 총 80회가량 ‘표적’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표적’이란 어떤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시는 표지판(sign)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표적’에 기적(miracle: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초자연적 사건)이 포함될 수 있고, 기사(wonder: 신기하고 놀라운 일)도 포함되고, 때로는 약속과 교훈도 포함이 됩니다. 즉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자신을 알리거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것들을 통틀어 표적이라고 합니다.
제가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새신자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할 때 종종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새신자 아무개 성도님이 교회에 왔습니다. 몸이 매우 아프다고 합니다. 병이 들었습니다. 이분에게 치료의 표적을 보여주셔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분명히 믿게 하시옵소서.”
혹은 이렇게도 기도합니다. “주여, 새신자인 아무개 성도님이 밤에 자꾸 악몽을 꾸고,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합니다. 늘 피곤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분에게 악몽 꾸지 말고, 편안히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표적을 보여주시옵소서. 주여,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옵소서.“
”주여, 아무개 성도가 요즘 돈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649 복권 1등에 당첨되는 표적을 보여주시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히 알게 하옵소서. 축복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라고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아무개 성도님이 믿은 지 꽤 오래되었사오니, 이제는 십일조의 표적을 보여주시어 축복의 하나님을 체험케 하옵소서.”
그러니까 하나님께 표적을 구할 때 긍정적으로 바르게 구하는 것이 있고, 자기의 탐욕을 좇아 좋지 못하게 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 사사기 6장에 보면 기드온이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미디안 족속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고 사는 이스라엘 사람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때 기드온은 하나님께 표적을 요구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6:15)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삿6:17)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표적을 보여줍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가져온 고기와 떡을 바위 위에 놓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그 고기와 떡을 불살랐습니다. 즉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확실히 이루겠다는 표적입니다. 이 표적을 보고 두려워 떨던 기드온은 믿음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호와 살롬’(하나님은 평강이시다.)
그러나 기드온은 더욱 확실한 믿음을 얻기 위해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또 한 번 표적을 요구합니다.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삿6:36-37)
기드온의 이 표적 요구에 하나님은 그대로 들어주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드온이 요구한 대로 땅은 마르고 양털에만 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기드온은 또 한 번 하나님께 표적을 요구합니다. “주여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이제는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삿6:39)
보세요. 하나님은 믿음의 확신을 얻기 위해 요구한 기드온의 표적을 구하는 요구를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습니다. 이스라엘 군사 3만 2천 명이 동원되었고, 적군은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있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135,000명입니다.
그 많은 적군의 숫자를 보고 이스라엘 군사들이 크게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아- 싸움도 하기 전에 적을 두려워하면 어떻게 전쟁을 치릅니까? 하나님도 이를 아시고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두려워 떠는 자는 다들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런데 어라- 진짜 군사들이 우르르-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2만 2천 명이 두려워서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군사가 만 병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직도 군사가 많으니 숫자를 줄여라. 전쟁을 치르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정예군사만 뽑아라.” 그래서 뽑으니까 어라- 이번엔 9만 7천 7백 명이 불합격되고 단 300명밖에 안 남았습니다. 아니- 300명 가지고 적군 135,000명을 상대로 어떻게 전쟁을 치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혹시 또 기드온이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할까 봐 또 다른 표적을 보여줍니다. 기드온이 적의 진영에 정찰을 나갔는데 적군 병사 둘이 이런 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보십시오. 이 꿈과 해석의 표적을 통해 기드온은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전무후무한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것도 아시고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표적을 주시기 원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무지개입니다. 특히 여기 캐나다에 와서 보니 무지개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거 하나님이 노아에게만 준 표적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노아의 후손인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주는 표적입니다.
무슨 표적이지요? “애들아, 이제 너희를 홍수로 멸하지 않을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어디서든지 지켜주고 보호해 줄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표적입니다. 고로 우리는 무지개를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 가끔 눈을 들어 하늘의 무지개를 보십시오.
그리고 창문을 통해서나 혹은 물방울을 통해서나 어디서나 있는 무지개색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평안을 얻으십시오. 여러분,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과 표적이 나타납니다. 왜요? 그 표적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라는 겁니다. 만약 예수님이 공자나 맹자처럼 지식이나 교훈만 말하고 기적과 표적을 베풀지 않았다면 어찌 구세주가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반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표적을 요구해도 하나님이 안 들어 주는 겁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많은 표적을 보여줘도 믿으려고 하지는 않고, 자꾸 트집을 잡고, 다른 표적을 요구합니다. 이때 주님이 말씀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39)
즉 구약의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죽은 자처럼 있다가 살아나와 니느웨에 심판과 회개를 선포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인류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의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면 그때는 심판을 당해도 싸다는 겁니다.
그리고 표적에 대해서 이것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표적 중에 의인을 위한 좋은 표적이 있고, 악인을 위한 나쁜 표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할 때 하나님이 10가지 재앙으로 애급을 치셨습니다. 그 10가지 표적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되는 좋은 표적이지만, 반면 애급의 바로 왕에게는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되는 나쁜 표적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징계와 심판 성격의 표적이 꽤 큰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대략 5:5 비율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는 이 비율이 극적으로 바뀝니다. 대부분의 표적이 인간을 치유하고, 살리고, 회복시키는 유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9:1의 비율입니다.
이렇게 신약에서 표적의 비율이 유익한 쪽으로 압도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 자체가 심판이 아니라, 구원과 은혜에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웬만해서는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표적을 주시지, 사람을 죽이는 방향으로 표적을 주시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종종 선지자들이 “주여, 저것들 못됐으니 하나님이 손 좀 봐주시옵소서.”라고 요청하면 하나님이 그 요구대로 손을 봐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아주 악한 악인에게 “주여, 저 사람 너무 악독합니다. 하나님이 좀 손 좀 봐주세요.”라고 요청해도 하나님이 심판의 표적을 웬만해서는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악인에게 큰 고통을 당하는 의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하나님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약 시대에는 나쁜 표적을 웬만해서는 안 보여주는 하나님이 어떤 때는 진짜 마음먹고 그런 징계의 표적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찾아봤습니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이 좋지 못한 표적을 보여줌으로 사람들에게 경고하신 사건이 있는가? 예- 몇 개가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를 죽이신 사건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자신들의 땅을 판 값의 일부를 숨겨두고는 전부를 바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가 사도 베드로 앞에서 성령을 속인 죄로 그 자리에서 혼이 떠나 즉사한 사건입니다.
이 표적을 보고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행5:11) 물론 이는 신약 성경에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엄한 징계의 표적입니다. 대부분 신약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표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16:17-18, 20)
결론입니다. 저는 믿음이 약한 분들이나 새신자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표적을 얻고, 그 표적을 통하여 마음도 기뻐지며, 그 표적을 통하여 믿음도 좋아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병이 낫는 치료의 표적도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아무쪼록 그 나타나는 표적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을 이토록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더욱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늘 따르는 좋은 표적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그 따르는 표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외국 땅에서도 확실히 증거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