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 람보가 불신자 친구와 함께 자장면을 먹으러 중국 식당에 갔습니다. 친구와 자장면을 시켜 먹다가 드디어 마지막 단무지가 남았습니다. 이 마지막 단무지를 누가 먹을 것인가? 이때 불신자 친구가 꾀를 내어서 람보에게 제안을 합니다. “람보야, 우리 서로 뺨을 있는 힘껏 때려서 울지 않는 사람이 이 단무지를 먹기로 하자.”
“그래, 좋다.” 친구가 먼저 람보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습니다. 눈앞에 별이 보이고 너무 아팠지만 꾹 참은 람보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때릴 차례야.” 그때 친구가 말합니다. “잠깐만! 이 단무지 너 먹어.” 그러고는 다시 크게 말합니다. “아저씨! 여기 단무지 한 그릇 더 주세요.”
그런데 만약 이 중국 식당의 주인이 람보의 아버지라면 어떨까요? 자기 아버지 집인 중국 식당에는 단무지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단무지 하나를 양보하지 못하다가 뺨을 얻어맞은 람보는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 이 람보 속에서 온 우주의 주인을 아버지로 믿는다면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불신자들이 종종 말합니다. “하나님을 보여 줘봐라.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면 나도 하나님을 믿겠다.” 이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줍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고,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람처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시니 어찌 보여줄까요?
그러나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먼지가 심하게 날리면 우리는 그것을 보고 ‘아하- 지금 바람이 세게 불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나 인간 세계에서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아멘!
그런데 불신자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줘 봐라. 그러면 나도 믿겠다.”라는 말뜻은 지금 당장 나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지식적으로 증명해보라고 하는 뜻도 있지만, 좀 더 내면적인 뜻은 “야-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그 모양이냐? 너를 보면 도저히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 하고 비꼬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즉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아하- 너를 보니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하고 믿게 하라는 겁니다.
어때요? 아멘입니까? 아멘은 아멘인데 좀 자신이 없지는 않습니까? 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세상 친구들 만나면 나도 그들과 같이 술도 마셔야 되고, 세상적인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그래야 그들 속에서 고립이 안 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뭔가 그들과 별나게 말하고, 별나게 행동하면 나도 불편하고, 그들도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술 마시고, 그들과 같이 세상적인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전도를 하면 어떤 말을 듣습니까? 그들이 속으로 비웃으면서 “야- 웃기지 마라. 하나님 안 믿는 나하고 하나님 믿는 너하고 뭐가 다른데...” 하면서 “하나님이 어디 있냐? 너를 보니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을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 다닌 지 얼마나 됐습니까? 도대체 교회를 몇 년을 더 다녀야 내 삶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들도 신자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이점에서는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상의 다른 종교와 많이 다른 것은 기독교는 사람이 너무나 타락해서 도저히 착하고 바르게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도 착하고 바르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준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여러분,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거짓된 사람이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세상적인 사람이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심지어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능력이 하나님에게는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을 믿으면 희망이 생깁니다.
아- 그러지 않습니까? 그가 변해야 되잖아요? 남편이 변하고 아내가 변해야 살지, 지금처럼 계속 안 변하면 어떻게 같이 삽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나도 변해야 그가 나하고 같이 살지, 내가 안 변하면 그가 나하고 어찌 백년해로하고 같이 살겠습니까? 즉 변화가 없으면 같이 살 희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변화가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변화의 시간과 변화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언젠가 예수님 안에서 그도 변하고 나도 변합니다. 아멘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제가 대학교 시절 때 친한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둘 다 부산에서 대학교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부산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학자금과 생활비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친구는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비록 가난하지만 아들에게 학자금을 계속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객지에서도 하나님 잘 믿으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교회에 전혀 안 다니는 친구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경우는 교회는 나름대로 다녔지만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친구 셋이 모여서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아- 교회 다니는 사람이 둘이고, 하나만 교회 안 다니니까 둘이 하나를 전도하고 같이 교회를 다녔을까요? No, 그러지 않았습니다. 믿는 우리나 안 믿는 그 친구나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같이 열심히 술 마시고, 당구장 가서 내기 당구치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만 하려고 애쓰고, 때로는 돈이 부족하니까 부모님에게 책 산다고 돈 달라고 속이고, 학생들이 학교 앞에다 도박장 하우스를 만들었는데 그곳에 들락날락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가끔 믿는 우리가 안 믿는 그 친구를 향해 전도의 말을 합니다. “야, 너도 교회 좀 다녀라.”
그러면 그 불신자 친구가 뭐라고 말할까요? “그래, 내가 너희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너희들을 본 받을만하다. 나도 너희들과 같이 교회에 다녀야 되겠다.”고 말할까요? No. 아닙니다. 오히려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야- 임마! 술맛 떨어진다.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잔이나 비워.”
그랬던 제가 군대를 제대한 후에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 가서 성령을 받고 변화가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담배도 끊어지고, 술도 끊어지고, 세상 줄이 다 끊어졌습니다. 이제는 세 친구가 모여도 저는 술을 안마십니다. 담배도 안 핍니다. 당구도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야- 원효야! 도대체 너에게 뭔 일이 생긴 거냐?”
이때 제가 설명해 줍니다. “응- 내가 하나님이 말세에 부어주신다고 약속한 성령을 받았는데, 이후로 내가 이렇게 변했어. 이제는 성경 보는 것이 좋아지고, 기도도 하게 되고,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즐거워. 그리고 하나님도 만났어.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어. 나는 앞으로 목사님이 될 것 같아.“
그러자 그들이 변화된 저를 보고 말합니다. “야- 네가 이렇게 변화가 된 것 보니 하나님이 분명히 계신 것 같다.” 그 후에 제가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전도도 하고 지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저를 보면 다 압니다. “아- 저 총각은 앞으로 목사님 될 사람이야.”
맞습니다. 동네 사람 누가 봐도 저는 하나님이 부르신 종이었습니다. 그 후에 진짜 저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65세인데 지금까지 목사님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목사님이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목사님이 되고 싶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이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없는데, 제가 전적으로 이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낍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 캐나다에 와서도 어디서든지 전도하려고 애씁니다. 특히 산책을 하다가도 한국 말하는 사람을 보면 전도용 휴지를 주면서 전도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 캘거리에서 제가 목사님인 것을 알 사람들은 다 압니다. 특히 교회와 가까운 이마트에서는 제가 항상 전도를 하기 때문에 이마트 직원 분들은 저를 알아보고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여러분, 이곳 캐나다 앨버타 캘거리 땅에서도 믿는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떳떳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보고 “아-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구나.” 하고 인정도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 예수님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3-16)
성경에 보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증명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팔렸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 들어가서 비록 노예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열심히 정직히 충성스럽게 일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집 사람들이 모두 요셉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몰려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곳 감옥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되고 증명되었습니다. 같이 감옥에 있던 죄수들과 간수들이 요셉의 언행심사를 보니까 “아- 저 사람은 절대로 강간범이 아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구나.” 하고 인정한 겁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 보면 사무엘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적부터 그의 어머니인 한나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무엘이지만 그는 참으로 성실하게 하나님의 집에서 봉사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가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이 부르신 선지자임을 알았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3:19-20)
또한 구약 성경에 보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나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국 땅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왕이 세운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고, 그 결과 풀무불 속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 뜨거운 불속에서도 살아났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 속에 빠지게 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 그도 사자굴 속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지켜주었습니다. 이들의 신앙의 절개를 본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들이 하나님이 사람임을 알았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참 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느부갓네살 왕은 온 나라에 이같이 공표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단3:28-29)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단6:26-27)
보십시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비록 포로의 신분이지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분명히 그들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하나님, 그의 세 친구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 나라 백성들에게 모두 하나님을 믿으라고 조서를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결론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예수님이 이 외국 땅에서도 증거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거하시고, 내 안에 계신 그 분이 나타나면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가능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명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그 동안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시신 것을 우리의 삶으로 증명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