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51:17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며칠 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이란 제목으로 설교 준비를 하다가 이런 의미 있는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백세시대‘라는 신문에 한성대학교 황진수 교수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밑에 보니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라는 글씨가 있던데 여기 소개해도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옛날 영국에 아서(Arthur)라는 왕이 있었다. 다른 나라와 전쟁을 했는데 패했다. 전쟁에 이긴 왕이 아서왕의 목을 쳐서 죽이려는 순간 장난끼가 발동했다. “내가 질문하는 것을 맞추면 목숨을 살려주고, 만약 못 맞추면 죽인다.”고 했다. 그의 질문은 이랬다. “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이 질문을 받고 아서왕은 답을 생각했다. 보석, 돈, 남자, 모성애, 섹스, 사랑 등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나 어느 것도 백퍼센트 정답이라고 하기엔 부족했다. 그리고 목숨이 달려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폐하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얼마나 줄까?” “1년을 주십시오.” 1년이라는 시간을 번 아서왕은 자기네 나라로 갔고, 전쟁에 이긴 왕은 아서왕이 딴 짓을 못하도록 호위병을 파견했다. 본국에 온 아서왕은 모든 신하들을 모으고 어전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왕의 목숨이 달린 상황이라 어느 누구도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
그때 충직한 부하 에르하르트(Erhart)가 말했다. “폐하, 우리나라 변방에 마녀가 살고 있는데 그녀는 정답을 알 것 같습니다.” “그럼 마녀를 불러 오너라.” 그렇게 해서 마녀가 왔는데 그녀는 늙고 주름살이 많고, 옷은 남루하게 입고 있었다. 심지어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까지 났다.
아서왕이 “정답은?” 하고 물으니까 마녀가 말했다. “폐하! 제가 정답을 말씀드려서 살아오신다면 저에게 뭘 해주시겠습니까?”라고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뭘 해주면 좋겠소?” “폐하가 제일 신임하는 저 미남 신하 에르하르트와 혼인하게 해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왕도 다른 신하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충직한 신하 에르하르트가 “폐하가 살아오신다면 저 여자와 제가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후 왕이 “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하고 질문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라고 마녀가 답하였다. 이 대답을 듣고 아서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왕을 찾아가 똑같이 말하니 “그래, 맞다.”고 하여 아서왕은 살아 돌아왔다.
그 후 약속을 한대로 미남신하와 마녀는 결혼을 했다. 피로연을 마치고 신랑이 신방에 들어오니 웬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속옷만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 누구요?” 하니까 그 여성이 “남편이시여! 나는 하루 중 12시간은 늙고 추한 마녀가 되고, 나머지 시간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됩니다. 당신은 내가 밤에 젊은 여성이 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낮에 그렇게 되길 원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남편의 가장 훌륭한 대답은 무엇일까요? 대개 많은 남편들은 밤에 젊은 여성이 되는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암시하는 대답은 아마도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일 것이다. 그렇다 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 제가 읽은 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자- 이 글을 같이 나눈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남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이 대답 역시 남자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에 대한 똑같은 질문을 여러 가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대답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이 대답이 100% 맞는 진리도 아닙니다. 즉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고,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만,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경우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을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예수님은 자신에게 닥칠 죽음의 고통이 만만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땅에 오셨고, 자기 생명을 우리들에게 내어주시기 원할 정도로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육체가 당할 고통과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솔직히 기도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그렇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적어도 죽기는 싫습니다.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뿐만 아니라 적어도 우리 진실된 크리스천들은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대로, 하나님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합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제가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로 나옵니다. 물론 목사님들마다 이런 똑같은 제목 혹은 비슷한 제목으로 설교를 참 많이 하셨습니다. 그 중에 몇 개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찬양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르게 행동하기를 원하신다.”
어때요? 여러분들이 교회 오면 목사님들에게 자주 들었던 설교 내용이지요?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내용대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이 외국 땅에서도 무척 애를 쓰고 있지요? 할렐루야! 아- 마음에는 원하지만 뜻대로 잘 안됩니까? 아무튼 좋습니다. 애를 쓰려고 하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디 입니까?
혹시 “아- 목사님! 죄송하지만 저는 솔직히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1도 애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미안합니다.” 하시는 분이 있다면 뭐-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뭘 해야 하고, 우리가 뭘 가지고 오는 것보다 우리 자체를 가장 사랑합니다. 부모님이 되신 분들은 잘 알겁니다.
자기 자녀가 부모님을 위해 뭘 해주는 것보다 부모님은 그 자녀 자체를 사랑합니다. 자녀들 중에 좀 잘나서 부모님에게 뭘 해주는 자녀보다, 좀 못나고 부족하여 부모님에게 아무 것도 못해주는 자녀를 부모님은 더욱 사랑하고,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특히 자녀가 장애가 있어 자기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능력이 없는 자녀를 부모는 더욱 강하게 사랑합니다.
오늘의 본문인 시편 34:18의 배경입니다. 한때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어린 나이에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됩니다. 그리고 사울 왕의 사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인인 사울의 질투로 인해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결국 도망자의 신세가 됩니다. 그렇게 도망하다가 급기야는 적국의 나라이고 골리앗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도망갑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곳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알아보고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너무나 당황하여 미친 척을 합니다. 그들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헛소리를 지껄입니다. 얼마나 연기를 잘했던지 누가 봐도 완전 미친 녀석입니다. 이로 인해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내용의 이야기를 보면서 참 마음이 안 좋아졌습니다. “아니- 하나님, 그래도 다윗인데, 하나님이 그토록 마음에 들어 하시던 다윗을 이렇게 불쌍한 처지와 곤경에 빠트리시면 어떡합니까? 이게 뭔 창피입니까? 에이, 하나님이 미리 좀 역사하셔서 다윗이 이런 개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하셔야지요? 안 그래요? 하나님!“
그런데 훗날 다윗은 이 장면을 추억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잘난 자, 부한 자, 가진 자, 배운 자보다 무슨 이유로 인했든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십니다.
오늘의 또 다른 본문인 시편 51:17의 배경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에 꼭 든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예수님이 나게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윗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남의 아내와 간음을 저지르고, 그녀의 아내인 충신 우리야를 죽인 것입니다.
그로 인해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고 심히 괴로워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 보시기 참으로 죄송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그토록 보호해주고, 사랑해주고, 자랑스러워했는데 그만 너무나도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로 인해 마음의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그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인생일대의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잘못을 아뢰며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매달립니다. 이런 큰 죄를 저지르므로 자기를 주 앞에서 쫒아내지 마시고, 자기 안에 있는 성신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리고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여러분,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누가 병이 들었든지, 창녀가 되어 죄를 지었든지, 가난한 자가 되어 수치를 당했든지, 세리가 되어 동족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든지, 예수님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마음이 상한 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사랑하시고,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잘난 사람, 부한 사람, 가진 사람을 가까이 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단언하건대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찾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제가 젊었을 때에 이 성경 구절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가까이 하실 때가 언제인가? 아마도 내가 가장 성령 충만하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 열심히 일할 때가 하나님이 나를 가장 가까이 하시겠지!”
그러나 나이가 먹고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의 생각이 좀 바뀌어졌습니다. 오늘의 본문처럼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살면서 마음이 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떤 때가 마음이 상합니까? 아- 마음이 상한 이유를 들라면 너무나도 많을 겁니다.
돈이 없어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요, 어떤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불통이 되어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요, 그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못해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요, 누구에게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아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요, 외국 땅에서 살다 보니 뭔지는 모르는데 답답하고 갑갑하여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요, 암튼 마음이 상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때가 하나님이 나를 가장 가까이 하시는 때입니다. 고로 마음이 상했을 때, 기분이 안 좋을 때가 하나님을 만나기 가장 좋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을 만나주시고 그들을 치료하시는 겁니다. 고로 이 자리에 마음이 안 좋은 분, 기분이 안 좋은 분이 왔다면 하나님을 불러 보십시오. 아버지를 찾아보십시오.
오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는 너의 하나님이다. 네가 마음이 상해서 나를 찾는구나. 그래. 내가 바로 여기 네 가까이 있다. 무슨 이유로 마음이 네 상했는지 한번 말해보아라. 내가 너의 말을 듣고, 너의 원통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너의 상한 마음을 고쳐 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마음이 상한 것을 오래 끌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끙끙대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같이 힘들어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해서라도 그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시고 속히 치료받으십시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시는 의사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순간순간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때마다 나를 더욱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 다시 마음이 좋아지고, 힘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계속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