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결혼하기 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처녀 총각 때에는 잘 몰랐었는데, 결혼해서 부부가 되고, 또 자녀를 낳고, 내가 직접 부모가 되어보니 절실히 깨닫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가정의 화목입니다. 가족 식구들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 어찌 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모든 가족 식구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렘17:9) 그렇게 심히 부패한 사람들이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이 솔직히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인류 최초의 가정이요,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아내 하와를 만들어주셨을 때 아담이 감격하여 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창2:23) 즉 아담과 하와가 서로를 내 몸처럼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짓고 타락하자, 그만 그들의 관계가 틈이 생기고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너 왜 내가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묻자 아담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여자가 선악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아-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100%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인간의 타락성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왜 그딴 여자를 내 와이프로 주었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겁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는 자기 와이프에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Honey, Dear, Darling, 여보, I love you. 당신 없는 세상은 앙꼬 없는 찐빵이요, 불 꺼진 항구에요. 뭐-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미사여구를 늘어놓더니 금방 얼굴색이 변하고 호칭과 말투가 변합니다. “아- 당신이 주신 그 여자가, 그 여자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쫄딱 망했나이다.” 여기서 ‘그 여자가’라는 말투는 문맥상 거의 욕에 가깝다고 봐야 됩니다. 남편에게 이런 쌍욕을 들은 아내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원수 같은 녀석과 같이 잠자리를 하고 싶겠습니까? 같이 뽀뽀를 하고 싶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애를 낳고 살고 있잖아요. 그것도 저처럼 하나만 낳지 않고 둘 셋도 낳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위대하고 대단합니다. 우리 위대하신 아내 분들에게 용기와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냅시다. 짝짝짝-
하와도 그랬습니다. 속이 좁고 쪼잔한 아담이지만, 비겁한 남편이지만, 또 다시 용서하고 뽀뽀도 해주고, 같이 잠자리를 하고 애를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어라- 두 아들이 사이가 몹시 좋지 않습니다. 형이 동생을 심하게 질투합니다. 엄마 아빠인 아담과 하와가 이로 인해 크게 근심이 되었습니다.
결국 큰 사고, 큰 비극이 터졌습니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악- 비명 소리와 함께 땅에는 피가 홍건이 고였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담과 하와,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마 한 동안 정신이 나갔을 겁니다. 말문이 막혔을 겁니다. 평생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와 트라우마가 생겼을 겁니다.
아니- 서로 아껴주고 사랑해야 할 친형제끼리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도저히 사실 같지 않았을 겁니다. 이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부모의 타락한 성품이 자녀들에게 유전이 되어 이런 일이 터진 겁니다. 마귀가 형 가인에게 동생 아벨을 미워하고 죽이도록 충동질을 했습니다.
저의 집안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위로 누님 한 분이 있었고, 아래로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아버님이 늘 저희들에게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애들아,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 지금 와서 뒤돌아보니 저희 삼남매가 그럭저럭 사이좋게 지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먹을 것 때문에, 밥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 앞에서 싸우다가 평안도 출신이신 다혈질 아버지가 밥상을 엎어버려서 가정의 분위기가 사나워진 적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어머님이 밥상이 엎어져서 난장판이 된 방바닥을 말없이 한숨짓고 치우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제가 깨닫는 것은 아버지가 그때 당시에 좀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울증 증세 중 하나는 ‘죽는다. 죽자’는 말을 자주하고, 옆에 있는 배우자나 가족들을 괴롭히고, 그 결과 가정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아지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어머님이 이혼하지 않고, 잘 참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족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므로 가정도 더욱 화목하고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좋은 것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화목입니다. 물론 어제까지 만날 코피 터지게 싸우던 사람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이가 좋아지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인내하고 살다보면 결국 변화가 나타납니다.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됩니다. 불화와 다툼의 사이가 변하여 서로 화목한 사이가 됩니다.
오늘의 본문 1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믿고 각자가 좋은 모습으로 변화가 되고, 또한 여러분의 가정도 더욱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그렇듯이 여기 캘거리에서 이민목회를 하는 저도 절실히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교회의 부흥입니다. 일단 구원 받은 성도님들의 수가 더욱 많아지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도님들이 서로서로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아- 그러잖아요. 교회에 평안을 얻으려고 왔는데 불편한 사람이 있고, 서로 간에 이런저런 갈등이 있다면, 혹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히 교회 나오기가 싫어지잖아요. 그래서 저의 기도 제목 중에 하나가 이겁니다. “주여, 성도님들끼리 서로 화목하고 사이좋게 지내게 하옵소서. 서로 불편하지 않게 하옵소서.”
제가 교회에서 우연히 본 장면이 있습니다. 초등부 어린이들이 체육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덩치가 좋은 여자 아이가 덩치가 작은 남자 아이를 물건으로 머리를 쾅- 하고 때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그렇게 맞은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가 아파서 막 울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때렸던 덩치가 큰 여자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전혀 미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아- 이때 제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요? 애들 일에 잘못 끼어들다간 일이 더 커질 것 같아서 몇 발자국 뒤로 돌아서서 가만히 살펴보니 다행히 일이 더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덩치가 작은 아이가 한 대 맞고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그 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계속 같이 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쿠, 저 장면을 지금 맞은 아이의 부모가 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일이 커지고, 크게 시험이 들어서 교회에 안 나올 수도 있겠다. 주여- 애들끼리 사이좋게 지내게 하옵소서.”
여러분, 이게 애들이니까 한 대 때리고, 한 때 맞아도 별 탈 없이 다시 노는 거지, 만약 어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미워하고 다시는 안 보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른들은 다 컸으니 철없는 애들처럼 그렇게 서로 싸우지 않겠지요?
아닙니다. 이런 일은 비단 어린이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과 어른들 사이에도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제가 직접 목격하거나 건너건너서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이 심히 안 좋아집니다. 아- 타락한 사람들끼리 같이 지내다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서로 다투고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인 제가 심히 염려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 그들 중에 믿음이 약한 분이 크게 시험이 들어서 교회에 안 나오는 겁니다. 그로 인해 상대방도 교회 오기가 꺼려지고, 그로 인해 그들의 가족들 모두가 교회에 안 나오게 되고, 그 일로 교회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결국 얼마 동안 교회의 분위기가 침체되고 부흥이 멈춘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도 안 좋아지고, 뒤에서 이런 일을 꾸민 마귀만 좋아서 웃는다는 겁니다.
특히 이런 일들이 제가 이민 목회를 하다 보니 연말연시에 많이 일어납니다. 고로 연말연시에는 제가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여- 성도 간에 서로 시험 들거나 사고 터지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여- 성도 간에 사이좋게 지내게 하시옵소서.” 같이 따라해 봅시다. “애들아, 사이좋게 지내자.”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팔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이 말씀을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불화케 하고 다투는 자는 저주가 있나니 저희가 마귀의 자식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입니다.
고로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일터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든지 내가 잘났다고 피터지게 싸워야 합니까? 아니면 그래도 서로 용서하며 이해하려고 하고 화목해야 합니까? 같이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주님, 다시는 싸우지 않겠습니다. 화목하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고백하고 다짐하고 나서도 교회를 나서면 또 다시 상대방에게 화가 나고, 싸울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마귀가 끊임없이 공격하니까요. 그러나 싸워도 너무 심하게 싸우지 마십시오. 오랫동안 분노를 품지 마십시오. 잠자기 전에는 반드시 그 분노를 풀고 잠을 청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화해하고 화목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 18절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시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친히 화목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고로 어디서든지 우리는 화목의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본문 19절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즉 하나님도 우리와 화목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죄와 허물을 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화목하기 위해선 서로 간에 죄와 허물을 따지면 안 됩니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결국 너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기에 다 같이 상처의 골만 더 깊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화목케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싸움 나는 말, 안 좋은 말, 감정 상하게 하는 말, 이간의 말은 하지 말고, 도리어 화목의 말을 하라는 겁니다.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즉 사람하고도 화목해야 하지만 하나님과도 화목하라는 겁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지지 말고, 가까이 친하게 지내라는 겁니다. 욥기 22:21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결론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부부간에,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이웃 간에, 교인들 간에 서로 화목하십시오. 화목의 말을 하고, 화목의 직분을 잘 감당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짧은 인생 쓸데없이 싸우며 산 죄를 회개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도 불편하게 하고, 하나님이 허락한 가정과, 친히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불편하게 한 것을 회개합니다. 앞으로 화목을 추구하며 살겠습니다. 화목의 말과 함께 화목의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