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면 행복해지고

날짜: 
2021/10/09
말씀: 
시50:23
말씀구절: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설교: 

유대인의 교훈집인 탈무드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에이, 목사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일단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니요, 목사님! 일단 잘생기고 봐야합니다. 미남 미녀, 몸짱 얼짱이 최고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니요, 목사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입니다.“ ”아니요, 목사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좋은 배우자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 말들이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좀더 생각해봅시다.

돈이 없으면 불행한 겁니까? 그리고 돈이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해지는 겁니까? 그리고 미남 미녀, 얼짱 몸짱이 안되면 불행합니까? 그리고 때때로 병이 들어서 건강을 잃으면 불행합니까? 사람이 죽을 때에는 결국 거의 모두가 병이 들어서 죽게 되는데, 그러면 죽을 때가 가까이 오면, 즉 나이가 먹을수록 불행해지겠네요?

그리고 결혼을 못하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불행합니까? 즉 이런 것들은 나름대로 행복의 조건들이 되지만 근본적이고 보다 완전한 행복의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건 어때요? 돈이 없어도, 잘나지 못해도, 병이 들어도, 문제가 생겨도, 그래도 감사하는 겁니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정했습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지고” 그리고요? 이어서 나오는 말은 무엇입니까? “불평하면 불행해진다.“는 겁니다. 이와 비슷한 말입니다. ”감사하면 흥하고, 불평하면 망한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불평은 마귀를 영화롭게 한다.“

여러분, 인간이 쓰는 말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말 중의 하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웃음이 있고, 감사가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감사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감사가 있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감사하면 불편했던 인간관계도 원만해질 수 있습니다.

감사는 그 사람의 인격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성도는 훌륭한 성도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감사하는 사람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환영받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감사하는 사람을 매우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를 통하여 큰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감사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요, 지옥은 불평하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천국에는 감사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지옥에는 불평하는 사람만 가득 찼습니다. 즉 사람의 운명은 감사냐 불평이냐로 결정이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고, 불평하는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예수님을 믿고 좋은 것은 이전보다 감사가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때도 없이, 시도 없이 자꾸 감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기뻐집니다. 기쁨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목사님! 저도 감사하고 싶어요. 행복해지고 싶다고요. 그런데 감사의 제목이 없는 걸 어떡합니까? 감사는커녕 불평의 제목들이 넘쳐나요?” 구약시대 하박국이란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감사보다는 불평의 제목들이 더 많았습니다. 아니 하나서부터 열까지 모두 불평의 이유가 가득 찼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으며”(하13:17) 오늘날로 말하면 돈이 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직업을 잃었다는 것이요, 거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불평이 나오고, 낙심이 되고, 기쁨을 잃어버리고, 행복하고는 거리가 매우 멀어질 겁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이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할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8) 할렐루야!

어떤 교인이 매사에 불평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듣고 목사님이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뭐 때문에 불평을 하느냐고 물어보니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습니다. 목사님이 그 분을 위로한 다음, 그래도 감사할 것이 있지 않겠느냐며 감사한 것을 찾아서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이 “에이, 목사님이 내 형편과 처지를 잘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 하고 좀 섭섭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이 가시고 난 후 감사할 것을 찾기 시작했는데 정말 감사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불평한 것을 눈물로 회개하고 난 후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나요? 불행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즘 불행하다고 느끼는 분이 있습니까? 불평한 것을 회개해 보십시오. 그리고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 측에 속합니다. ‘나라별 행복지수’라는 지표가 있는데 한국은 178개국 중에 102위입니다. 아시아 24개국 가운데서도 21위입니다. 도대체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뭔가 살펴보니 일단 ‘삶의 만족도’가 낮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안 좋습니다.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보다 훨씬 삶의 질이 떨어지는 나라 중에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참 많습니다. 그러면 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삶의 만족도가 낮을까요? 그 이유는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아- 드라마에 나오는 그 잘생긴 배우와 자기 남편과 아내를 비교하니까 그게 만족이 됩니까? 그 배우 쳐다보고 자기 배우자 쳐다보고 비교하니 도리어 한숨이 나옵니다.

그리고 친구나 이웃 중에서도 가장 부자고 가장 잘나가는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니 그게 감사가 나옵니까? 도리어 질투가 나오고, 낙심이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왜 자꾸 그렇게 쓸데없이 비교해서 스스로 낙심이 되고, 스스로 불평하고, 스스로 불행해지는 겁니까? 물론 사람이 혼자 무인도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어울려 살다 보니 비교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교를 해서 불평의 제목들을 찾지 마십시오. 도리어 감사의 제목을 찾으십시오.

이스라엘의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첫째,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둘째, 맥추절입니다. 보리 추수를 감사하며 드리는 감사절기입니다. 셋째, 초막절입니다. 모든 곡식과 열매를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세 절기의 공통점은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특히 초막절은 오늘날의 추수감사절과 같습니다. 예부터 농경사회에서는 많은 나라들에게 전통적인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고,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은 10월 둘째 주 월요일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11월 셋째 주일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옛날 신라시대부터 ‘추석’이라고 하여 음력 8월 15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추석 역시 추수 감사절의 의미입니다. 즉 나라마다 날짜는 달라도 그 근본정신은 바로 감사하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를 누구에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을 바라보며 거기다가 감사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며 그들에게 감사를 합니다. 북한에서는 누구에게 감사를 할까요?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에게 감사를 하겠지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감사를 합니까? 하늘과 땅과 만물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즉 제사의 근본정신, 오늘날 예배의 근본정신은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빠진 예배는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더 나아가 예배의 근본정신인 감사가 일상생활에도 확산되어야 진정한 구원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그에게 감사하라.”(시100:4) 즉 하나님의 전에 들어올 때 불평하는 자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분에게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어느 암센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환자 분이 혀에 암이 생겼습니다. 결국 그 암은 수술로 도려내야 합니다. 수술 날짜가 잡혀 의사가 그 분에게 말합니다. “이제 수술을 하게 되면 앞으로 영영 말을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이 있으면 하시지요.” 그러자 그 환자 분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마지막 말을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이 분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같이 따라 해봅시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