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것도 많고 불평할 것도 많다.

날짜: 
2016/10/09
말씀: 
시50:23
말씀구절: 

.....

설교: 

그래서 어떡하시겠습니까? 감사하며 살겠습니까? 불평하며 살겠습니까? 스스로 이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쉬운 답도 실생활에서는 잘 실천이 안 됩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동산의 모든 실과를 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the fruit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과실을 먹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신 동산의 실과를 이것저것 다 먹으면서 “하나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선악과 하나 못 먹게 한다고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사단을 좇아갑니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봅시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사탕을 10개를 주었습니다. 돈 받고 준 것이 아닙니다. 내 자녀이니까 그냥 공짜로 준겁니다. 그런데 그 어린 자녀는 10개의 사탕을 준 것에 감사하지 않고 계속 엄마 손에 있는 나머지 한 개의 사탕을 안 준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고 웁니다. 그 사탕은 지지입니다. 먹으면 죽는다고요. 그래서 안 주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 사탕 안 준다고 “당신 우리 엄마 맞아?” 하고 도끼눈을 뜨고 사납게 쳐다보면 어떡합니까?
좀 더 신앙적으로 나를 비유해서 예를 들어봅시다.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이것저것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준 것에 대하여는 감사하지 않고, 굳이 없는 것만 보고, 혹은 남과 비교해서 못 받은 것만 보고 왜 불평을 합니까? 누가요? 저와 여러분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출애급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애급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힘이 듭니다. 더구나 애급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남자 아이를 낳으면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우리를 구원해주세요. 이제는 도저히 못살겠어요.”
그들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광야에서 40년간 지도자 훈련을 받은 모세를 보냈습니다. 그들을 큰 기적으로 구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툭하면 모세에게 불평을 합니다. 만나가 맛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고기가 없다고 불평합니다. 정력제인 마늘과 부추를 먹지 못한다고 불평합니다. 길이 험하다고 불평하고, 적들이 많다고 불평하고, 그 불평한 것을 하나님이 징계하니까 징계한다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약속의 땅이 안 좋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바꿔보면 도리어 모두가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모세를 보내주셨으니 감사하고, 만나를 40년간 주셨으니 감사하고, 고기를 주셨으니 감사하고, 정력제라고 생각하는 마늘과 부추를 안 먹으니까 도리어 감사합니다.
길이 험하지만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적이 많지만 그들을 물리쳐 주시니 감사하고, 물이 없지만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니 감사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니 감사하고, 무엇보다 애급의 노예에서 구원해주시니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같이 따라 해봅시다. “주여,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남편과 아내가 같이 왔습니까? 한번 남편과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아내와 남편을 보니까 감사할 것이 많습니까? 불평할 것이 많습니까? 아- 위선 떨지 말고 솔직히 말해보세요. 물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전도사님 같은 분은 불평할 것보다 감사할 것이 더 많겠지요. 그렇게 쭉- 감사하며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감사할 것은 줄어들고 살살 불평할 것들이 늘어납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오늘날 이혼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잖아요. 서로 감사하며 살면 왜 이혼을 하겠어요. 서로 불평이 쌓이고,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이 미움과 원한이 되면 이혼을 하잖아요.
오늘날의 가정문제, 사회문제, 국가문제, 세계문제, 심지어 교회문제도 감사하면 거의 다 해결이 됩니다. 개인의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는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누가 행복합니까?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불평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당연히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왜 다 잘 알면서 감사하며 살지 못합니까?
그 중요한 원인 중 첫째는 욕심입니다. 그 정도면 감사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를 주면 둘을 안 주었다고 불평합니다. 둘을 주면 셋을 안 주었다고 불평합니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계속 불평이 나옵니다. 둘째 불평의 이유는 분명히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었는데도 나쁘다고 불평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른 것을 주면 이것은 더 나쁘다고 불평합니다. 아이고, 어쩌란 말이냐? 이것을 줘도 불평하고, 저것을 줘도 불평하고.... 하나님도 어찌할 수가 없어서 가만히 있으면 왜 하나님이 가만히 있냐고 또 불평합니다. 나중에는 “당신 진짜 전능한 하나님이 맞느냐?”고 따집니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하나님 자격도 없다고 은근히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이렇게 계속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못 말립니다. 하나님이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애야, 너는 너대로 알아서 인생을 살아라. 나도 심히 피곤하다.”
여러분, 계속 불평하는 아내는 남편을 피곤하게 합니다. 계속 불평하는 남편은 아내를 지치게 합니다. 계속 불평하는 자녀는 부모를 화나게 합니다. 계속 불평하는 국민을 보면 애국자는 탄식을 합니다. 계속 불평하는 성도는 목사를 힘들게 합니다. 계속 불평하는 성도는 마귀를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겁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보면 말세가 되면 고통 하는 시대가 온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딤후3:2) 부부간에도 감사하지 않아서 고통스럽고, 부모 자녀 간에도 감사하지 않아서 고통스럽고, 너와 내가 감사하지 않아서 고통스럽습니다.
물론 불평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도 불평할 것이 많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불평할 것이 많이 있고, 미래에도 불평할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떡하시겠습니까? 옛날에도 불평하고, 오늘날에도 불평하고, 미래에도 여전히 불평하며 불행하게 인생을 살겠습니까? 불평하며 사는 것은 이제 지나간 과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늘 추수감사 주일에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감사할 것도 참 많이 있습니다. 밥 먹고 사는 사람은 당장 밥도 못 먹고 사람 사람들을 보면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나올 정도로 건강이 있는 사람은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큰 빚을 지고 파산하여 자기 몸의 장기까지 팔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저와 여러분이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항상 탑 텐(10)에 들어가는 캐나다 캘거리에 사니까 이것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감사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제가 지난 주일에 오늘 추수감사주일에는 헌금봉투에다 감사 제목을 적어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무슨 감사의 제목을 적으셨습니까?
성경을 보면 황소를 통째로 드림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일리라.”(시50: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세를 사는 우리는 너무나도 불평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불행합니다. 가정도 불행하고, 사회도 불행하고, 국가도 불행하고, 심지어 하늘나라 지점인 교회도 불행합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인 오늘만큼은 감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식구들도 기쁘게 해주고 싶습니다. 같이 따라 해봅시다. “하나님, 감사하는 마음을 주세요.” 오늘 마지막으로 감사에 관한 시 한편 읽어드리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 항상 감사하기 ♣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일궈진 불평, 불만들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창,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집이 있다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고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성가가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 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에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