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성경에 ‘두려워 말라.’라는 말이 365번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일 년 365일 날마다 두려워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말이 366번 있다고 합니다. 4년에 한 번씩 윤년일 때는 일 년이 366일이 되니까 이도 역시 일 년 366일 날마다 두려워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두려워 말라.’ 혹은 ‘두려워하라.’라는 말의 의미가 두 가지로 쓰이고 있습니다. 먼저 사람, 전쟁, 질병, 적군, 소문, 파도, 문제,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글자 그대로 쓸데없이 그것들을 두려워하여 마음이 약해지거나 초조해지고 불안해져서 그만 평안을 잃고, 기쁨을 잃고, 행복을 잃고 스스로 힘들고 어렵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혹은 ‘권세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라‘는 뜻은 하나님이 “이놈! 너 또 잘못했지. 너 또 죄를 지었지. 벌 받아라. 우르릉 쾅쾅!” 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인 줄 오해하여 괜히 하나님께 겁먹고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고,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살피시는 하나님인 줄 알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늘 바르게 지키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니 하나님이 세운 권세자를 괜히 업신여기거나 비방하거나 조롱하여 스스로 화를 자초하지 말라는 뜻으로 권세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합니다. 권세자 앞에서 고양이 앞에 쥐처럼 겁먹으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운 권세자를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인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창9:2)
즉 인간은 처음 지어졌을 때 뭔가를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애초에 두려움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모든 만물의 최고 우두머리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다른 모든 피조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하도록 설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하자, 즉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니 이러한 질서가 깨어졌습니다. 도리어 사람이 호랑이나 사자, 곰 같은 짐승들을 두려워하게 되고, 반면 그러한 짐승들이 감히 사람에게 겁도 없이 덤비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그렇게 다정하게 들렸던 하나님의 음성도 두려움의 음성으로 들려져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자 그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버리고 맙니다.
즉 인간이 타락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인간에게 두려움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고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두려움이 있습니다. 깡패 두목은 어떨까요? 그들이 서슬이 시퍼런 칼과 도끼를 들고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겉모습을 보면 그들에게는 겁과 두려움이 전혀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 깡패 두목조차도 상대방 조직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서 잠을 잘 때 제대로 깊은 잠을 못자고, 침대 밑에 항상 권총을 숨겨놓고 잠을 잔다고 고백합니다. 옛날 유명한 깡패 두목인 김태촌 씨의 고백입니다. 제가 이전에 순복음 기도원에서 전도사로 있을 때 그가 친한 목사님에게 그렇게 솔직하게 고백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백전노장 군인은 어떨까요? 그들은 겁과 두려움이 없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그 동안 많은 전쟁을 치루고 또 앞으로도 계속 전쟁을 치를 군인 중의 군인인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수1:9)
아시다시피 전쟁터에서는 까닥 잘못하면 죽습니다. 그 동안 여호수아는 사람들이 자기 옆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비명 소리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처절한 모습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눈을 감아도 영상으로 나타나고, 귀를 막아도 비명 소리가 들리고 큰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치루는 군인이 전쟁의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생기면 그는 더 이상 군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계속하여 말씀하고 또 말씀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외국 땅에 와서 살다보니 쓸데없이 두려워할 것이 참 많이 생깁니다. 특히 영어가 잘 안되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면 가슴이 덜컹 합니다. 맥박이 빨라집니다. 아- 전화 안 받고 싶은데 혹시 해서 받습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영어로 뭐라고 쏼라쏼라 댑니다. 혹시 중요한 전화면 어떡하지? 더욱 긴장됩니다.
한국에서는 전화벨 소리가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외국 땅에서는 전화벨 소리도 때로는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 땅에서 살면서 비자나 영주권 같은 중요한 결정이 다가올 시기가 되면 긴장이 되고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혹시 비자가 안 나오거나 영주권 서류가 리젝트(reject)가 되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가 쌓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초조함과 두려움도 다가옵니다.
즉 아무리 살기 좋은 캐나다 땅이라도 문화와 언어와 인종이 다른 외국 땅이다 보니 이런저런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비단 외국 땅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지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분들의 경우 천둥 번개 벼락이 우르릉 쾅쾅- 심하게 치면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그때가 언제입니까? 언제 두려움이 생기고, 언제 가슴이 쿵닥쿵닥 뛰고, 언제 맥박이 빨라집니까? 혹은 그 두려움이 심하여 가슴이 답답해지고, 얼굴이 굳어지고 혹은 창백해지고, 마음이 심이 안 좋아질 때가 언제입니까? 저의 경우 낭떠러지를 바라보고 자동차 운전을 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번에 BC를 자동차로 다녀왔는데 그래도 가는 길은 대개 절벽 안쪽으로 가니까 두려움이 덜합니다. 그런데 다시 캘거리로 돌아올 때는 낭떠러지를 바라보고 운전하는 구간이 많습니다. 특히 골든Golden)에서 필드(Field)로 넘어오는 구간이 아시다시피 낭떠러지가 심하여 그거 보면서 운전하면 너무 아찔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골든에서 필드 구간을 공사한다고 통제를 하느라고 래디움(Radium) 온천 쪽으로 우회를 하라고 합니다. 대략 100km를 더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 아직 가는 길이 먼데 너무 지치게 한다,” 하고 생각했는데, 가다 보니 그곳 도로가 아주 좋습니다. 일단 낭떠러지가 없습니다. 저로서는 “아- 이것도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는 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하면서 성도님들 중에 평소에 안색이 안 좋은 모습으로 간신히 교회를 다니던 분들이 저에게 나타나 “목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그러다가 그 분이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에 안 나오려고 합니다.”고 하면 잠시 정신이 나갑니다.
물론 애써 태연한 척은 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칼로 심장을 찌름 당하거나 돌로 머리를 쾅-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습니다. 더구나 믿었던 분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한동안 밥 먹을 기운도 없어집니다. 때로는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저희 집사람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목사는 이렇게 설교로나마 마음을 풀기도 하는데 목사 사모는 참 힘이 들겠지요?
팔자가 센 그대여, 그대의 이름은 목사 사모! 여러분, 우리 집사람을 위하여 한번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쳐줍시다. 제가 올해 만 62세입니다. 여기 캘거리에서 이민 목회만 23년을 했으니 이제는 이런 데서 자유로워질 때가 됐지 않았겠습니까? 어때요? 솔직히 말하면 전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하루라도 빨리 은퇴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한 것은 그동안 그런 일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아직 심장마비로 죽지 않았고,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도리어 꿋꿋하게 하나님이 은퇴하라고 할 때까지는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시니까 나도 역시 최선을 다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다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제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하나님의 얼굴을 보시고 선한 마음으로 계속 교회에서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함께 좋은 것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목사님들이 그런 어려움을 겪고도 계속 사역을 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이 붙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함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인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은 저에게 하신 말씀이고, 또 여러분 각자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제의 파도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환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인생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주님이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다윗은 고백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칠지라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3:6)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결론입니다. 오늘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내일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이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독생자의 생명까지 주신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힘 있게 사랑하시고 있습니다. 그 분과 함께 인생의 끝날 까지, 마지막 한 발자국까지 달려갈 길을 힘차게 달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31)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오늘도 주님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강하고 담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