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라.

날짜: 
2018/01/13
말씀: 
행4:5-14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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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에 관한 명언 중에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돈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니라.” 영국 속담 중에도 “건강이 가장 큰 재산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란시스 톰슨’이란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건강은 행복의 어머니이다.”
예수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2-13) 즉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영육간에 병이 든 환자인 것을 아시고 그들을 고치러 왔다는 것입니다.
고로 병이 들면 병원에도 가서 의사를 만나고 약도 먹어야 되지만 만병의 의사가 되시는 예수님에게도 나아와 인간 의사가 못 고치는 병을 고침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병든 것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환자는 자기가 중한 병이 들었는데도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기 병을 숨기는 자는 낫기를 기대할 수 없다.” ‘아미엘’이란 분은 이런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믿는 환자는 고칠 길이 없다.”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건강하십니까? 물론 “아- 저는 매우 건강합니다. 저는 여태까지 병원에 가본 적도 없고, 약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건강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에는 100%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글쎄요. 계속 건강하기를 소원합니다.”라고만 대답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모두가 건강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들에게 질병이 찾아옵니다.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았는데도 독감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 캘거리에 처음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아는 분의 소개로 환자를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가서 보니 일단 밀리언이 넘는 굉장히 좋은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환자 분은 50세 정도 중년의 아내였습니다. 남편 역시 중년의 나이였는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캐나다에 좀 더 행복하려고 이민을 왔는데 그만 아내가 병들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 땅에 이민을 왔는지 후회가 됩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 있고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그렇습니다. 캐나다가 아무리 아름답고 공기가 좋아도 일단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중한 병이 들어 병상에 있다면 그 좋은 캐나다의 환경도 제대로 누릴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그 좋은 환경이 나를 약 올리고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캐나다에 이민 온 특권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가족들이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아기를 키우는 부모는 말 못하는 아기가 병들어서 며칠 간 밥도 안 먹고 칭얼칭얼 울어대면 정신이 없게 됩니다. 다 큰 자녀일지라도 자녀는 자녀입니다. 80세 된 할머니가 60세가 된 할아버지 자녀가 아프면 80세 된 할머니는 역시 어머니로서 마음이 아픕니다. 또한 남편이나 아내 중에 누가 아파서 제대로 활동을 못하면 부부의 행복은 달아나고 맙니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아프면 자녀는 풀이 죽습니다.
돈이 떨어지거나 명예가 없으면 성실히 일하여 돈과 명예를 얻으면 됩니다. 그리고 설사 돈이 부족하더라도 아껴 쓰면 됩니다. 명예가 없더라도 사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병이 들고 건강을 잃으면 돈을 벌러 나갈 수도 없습니다. 명예도 회복하기 힘듭니다. 고로 돈보다 건강이요, 명예보다 건강입니다.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이 그렇게 중요한데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는 큰 병에 걸렸습니다. 지금은 죽음이 잠복기에 있지만 어느 때가 되면 잠복기에 있던 죽음이 튀어나옵니다. 고로 우리 모두는 다 예비 중환자들입니다. 다만 개인마다 다른 시기의 문제일 뿐입니다.
고로 노인 분들에게 있어서 큰 기도 제목은 죽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 죽더라도 아프지 않게 살다가 아프지 않게 죽는 것입니다. 즉 죽음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은 최대한 건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래 살고 건강하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오래는 사는데 건강하지 못하면 인생이 버거워집니다. 빨리 천국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 ’호세아‘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할 분이십니다. 우리가 죽음이란 질병에 삼키어져도 때가 되면 우리들을 죽음으로부터 해방하실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에도 우리를 치료하시는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손을 댄 것입니다. 그녀가 손을 대자 예수님으로부터 치료의 능력이 나갔습니다. 순간 그녀도 자신의 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래 율법에 의하면 혈루병을 걸린 여자는 부정한 여자입니다. 그런 부정한 여자가 선지자에게 가까이 와서는 안 되고, 선지자와 접촉을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예수님이 군중을 향하여 묻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주님, 군중들이 밀치므로 예수님의 옷에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대었는데요.”
여인이 떨며 말합니다. “접니다. 제가 손을 대었어요.”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막5:34) 오늘날도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딸아(아들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혹시 지금 병든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병이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시39:12-13) 여러분 중에도 가족이 혹은 본인이 병이 들었으면 다윗처럼 기도하십시오. “주여, 나의(내 가족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여호와 라파)”(출15:26)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사53: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5:15)
오늘의 본문에 보면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를 일으켰습니다. 그 가운데 베드로가 이렇게 외칩니다.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9-10)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건강이 필요합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일을 하기 위해서도 건강이 필요합니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역시 건강이 필요합니다. 자녀로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도 역시 건강이 필요합니다. 아기도 노인도 청년도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목사도 성도도 모두 건강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건강을 이렇게 빌어주고 있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3:16)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딤후4:17) 즉 하나님이 복음 전파를 위해 애쓰는 사도 바울을 건강하게 보살펴 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예외는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 건강하고, 너무 잘 나가고, 너무나도 깊은 계시를 혼자 받다 보니 바울은 “에헴, 나보다 잘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고 교만해지기 쉬웠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교만을 막기 위하여 바울에게 질병을 하나 꽃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병은 병입니다. 괴롭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무 괴로워서 자기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이런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8-10)
보통 사람들이 돈이 많을 때에는, 건강할 때에는, 잘 나갈 때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그러다가 지옥가기 쉽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기에 하나님은 종종 우리들에게 기도할 제목을 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문제도 고난도 질병도 허락합니다. 그러나 질병과 환난과 고난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세상에 그 어떤 부모가 자기 자녀가 아파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인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놀아나면서 다 허비하고 거지가 되어서 아버지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 거지새끼를 위해 잔치를 크게 베풀고 즐거워했습니다.
그의 형이 밭에서 돌아와 멀리 자기 집에서 잔치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을 듣고 하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하인이 대답합니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눅15:27)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거지가 되어서 돌아와도 좋습니다. 그가 건강하게 돌아왔으니 아버지는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즐겁습니다. 건강한 아들의 모습을 보니 참 반갑습니다. 만약 둘째 아들이 다리병신이 되어서 절뚝거리든지, 큰 병에 걸려서 돌아왔다면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이고, 이 녀석아, 너 왜 이 지경이 되도록 지금에야 돌아왔니?” 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를 껴않고 통곡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아들의 병을 고치려고 할 것입니다. 만약 아들의 병을 고칠 수가 없고, 그 아들이 혼자의 힘으로는 살수 없다고 생각이 되면 아버지는 그때부터 자기의 건강을 더 챙기게 됩니다.
왜 그럽니까? 병든 아들을 죽을 때까지 간호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건강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저 병든 아들보다 며칠만 더 오래 살게 하여 주옵소서.” 혹시 그 병든 아들에게 어머니가 있다면 어머니는 이렇게 기도할 겁니다. “하나님, 할 수 있으면 아들의 병을 제게 주시고 저 아들을 건강하게 하옵소서.”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자녀의 병든 영혼, 병든 몸을 살리기 위하여 그 분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대신 질병과 저주를 지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고로 우리에게는 질병이 떠나고 생명이 역사하고, 저주대신 축복이 역사합니다. 우리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자녀가 건강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오늘도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딸아) 건강하라. 건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