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오소서. 임마누엘

날짜: 
2022/12/17
말씀: 
마1:21-23
말씀구절: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설교: 

여러분, 혹시 대림절 혹은 대강절 혹은 강림절이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세 단어 모두 같은 뜻인데 영어로는 ‘The Advent'라고 합니다. 이는 ’도착‘ 혹은 ’오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어로 '기대할 대(待)'를 써서 대림절 혹은 대강절이라고 합니다.

12월 25일 성탄절 4주 전 주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예수님의 오심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올해 2022년 대림절은 11월 27일 주일부터 12월 24일 성탄절 이브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바로 대림절 기간입니다. 이 대림절 때 부르는 찬송이 ‘새 찬송가’ 97-105장까지의 ‘구주 강림’이란 주제로 묶어놓은 9개의 찬송입니다.

그 중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이란 찬송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저도 이 찬송을 매우 좋아합니다. 일단 곡조가 장엄하면서 가사 또한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초림 구세주뿐만 아니라 재림 구세주까지 기다리는 가사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 그들의 인생이 졸지에 망했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도, 또 그들의 후손인 인류도 다 같이 망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이기에 태어날 때부터 망한 존재로 태어나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한국에서 ‘흑수저’로 태어났다.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모든 인류가 완전 ‘똥수저’로 태어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지가지 문제의 가시와 엉겅퀴에 이리저리 찔리며 괴로워합니다. 저주와 질병과 사망이 다가옵니다. 그것을 본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마치 어린 자녀가 밖에서 놀다가 그만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곧 죽을 처지에 빠지는 소식을 들은 것 같습니다. 머리가 띵-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 아담과 하와가, 그리고 그 후손들인 인류가, 또 저와 여러분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살다가 결국 영적으로 육적으로 완전히 죽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렇게 만든 원수 마귀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마귀도 심판하고, 마귀의 꾐에 걸려 불행에 빠진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구약성경에다가 총 456회 예언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약속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자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습니다. 특히 그들의 처지가 슬프고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더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큰 고통이 있을 때마다 구원자를 기다렸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사무엘, 삼손 같은 사사들도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BC 586년 그들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그곳 외국 땅에서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처지에서 구원자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찬송가 104장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 생활 고-달파 메시아 기다립-니다.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 오 임-마누엘.” 그들이 그렇게 구원자를 학수고대하자 하나님은 이방인인 바사왕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70년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이 또 다시 큰 고통에 빠졌습니다. 이번에는 BC 63년에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게 예루살렘이 정복당하고, 그때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 또 괴로운 시절이 또 도래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구원자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드디어 약속하신 구원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이전에 보낸 구원자들인 모세, 사무엘, 삼손, 고레스 같은 사람들은 단지 이스라엘만 구원하는 구원자들이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토록 약속하고 약속하신 전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몰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당장 자기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구원자를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도리어 로마 병사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그들로부터 십자가 사형을 받고 너무나도 나약하고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들 입장에서 예수님은 자신들이 바라던 그 구원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고, 도리어 딴 구원자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사람들이 이렇게 눈이 가리고 깨닫는 마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를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7년 환난 때에 사단이 보내는 가짜 메시아 즉 자신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적그리스도를 자신들의 메시아로 생각한다고 성경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저와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을 보는 눈을 열어주시고, 깨닫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이 그토록 우리가 고대하던 메시아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456회나 약속하신 바로 그 구원자입니다. 그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예언하신대로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고, 남자의 씨가 아닌 성령으로 잉태되어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3)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그 구원자인 것을 100% 확실히 믿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분이시고, 우리를 불행에서 행복으로 옮기시는 분이시고, 죽음에서 부활로 우리를 바꿔주시는 분인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들의 성공과 실패는 과연 누가 예수님을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아- 아무리 돈이 많고 호의호식하며 잘 살아도 그거 100년 안쪽이면 다 끝나고 맙니다. 그 후에는 필연적으로 죄의 삯인 사망이 오고, 그 후에는 분명히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들은 죄의 용서함을 받고 심판을 당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의인으로 인정되어 영생의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니 예수님만이 너와 나의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외에는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구원자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그 분 한 분이면 족합니다. 그런데 그 분의 이름을 본문은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God with us)“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 분이 하나를 이루는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만리 장천 먼 곳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역사 속에 오셔서 인생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왜요? 우리가 인생을 혼자 살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못 견딥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 살면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살 힘이 없을 때에는 용기와 힘을 주시려는 겁니다. 우리가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할 때는 친히 길이 되시고, 그 길을 인도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절망에 빠졌을 때 희망을 주시고, 불안과 근심을 느낄 때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우리는 그 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분을 내 안에 모셔 들여야 되고, 그 분과 늘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날이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 날은 신부되는 우리가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결혼식 날입니다.

신부가 아름답게 단장을 하고 신랑을 기다리듯이, 신랑이 사랑하는 신부를 보고 싶어 하듯이, 그 날은 우리도 예수님도 학수고대하는 날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올 것을 1518회나 약속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은 너무나도 확실한 약속입니다. 이제 잠시 후면 그 약속이 성취될 겁니다.

그 동안 우리들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신부단장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대강절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초림 예수님을 만났고, 이제 또 다시 기다리고 기다리는 중에 재림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아무쪼록 기다림의 보람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다리는 중에도 좋은 일이 계속 생기며, 기다리는 중에도 행복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혹시 기다리다 지치신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기다리다 낙심한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은 안 오고, 현실 속에서 나는 너무도 초라해진다고 느끼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기다리기를 포기하겠다고 절망하시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안됩니다. 절망은 금물입니다. 포기는 안 됩니다. 약속하신 초림 예수님은 정확히 때를 맞춰 오셨습니다. 그리고 재림 예수님도 약속을 따라 정확한 때에 오실 것입니다. 고로 기왕에 기다렸으니 좀 더 기다리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반드시 늦지 않게 역사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지각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날씨도 추운데, 더구나 외국 땅에서 계속 기다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기다리는 것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바람맞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고로 좀 더 힘을 내시고 기다리는 중에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를 하면서 상급을 쌓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