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유치한 신앙인가?

날짜: 
2021/09/05
말씀: 
고전13:11
말씀구절: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설교: 

성경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우리의 신앙이 어린 아이 같아야 천국에 간다고 말씀합니다. 즉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성경에는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에 머무르지 말고 어른처럼 장성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히브리서 5:13-14에도 이런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라...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라.“

여기서의 어린 아이는 오래 참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만 먹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고난은 잘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알아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인격과 신앙이 초보적인 어린 아이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어린아이 신앙이라도 뜻은 정반대인 경우입니다. 그래서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영어로 이런 표현을 각각 사용합니다.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의 ‘어린 아이처럼’은 ‘childlike‘로, 그리고 부정적이고 나쁜 의미의 ‘어린 아이처럼’은 ‘childish’로 표현합니다. 이 ’childish‘란 영어 단어는 한국말로 하면 ’유치한‘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childlike 신앙이란 말도 있고, 반면 어린 아이처럼 유치한 childish 신앙이란 말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둘을 거꾸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하여 착한 흥부를 세련되지 못하고 칠칠맞은 흥부라고 하고, 욕심 많고 나쁜 놀부를 책임감이 있고 좋은 사람으로 말을 합니다. 이처럼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신앙을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신앙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어- 이건 아닌데! 그치요? 그래서 오늘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과연 그게 유치한 신앙인가요? 한번 알아보자는 겁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고 하면 “에이, 그렇게 유치하게 믿지 말라.”고 합니다. 아니, 여러분!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는 것이 뭐가 유치합니까?

이런 신앙이 유치하다고 하면 너는 뭐가 유치하지 않고 고상하다는 거야? 한번 말해봐. “아- 이런 저런 사회 운동도 하고 그래야지. 만날 예수 천국, 불신 지옥만 외쳐서야 되겠는가? 좀 고상하게 믿자.”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바라보면 덜 고상한 건가요? 그리고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것은 상당히 무식한 말인가요?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크리스천 학교도 세우고, 세브란스 병원이나 성심병원 같은 기독교 병원도 세우고, 고아원 양로원도 운영하고, 이런 저런 사회운동을 하는 것 참 좋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 중에 보면 간혹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서 천국 간다는 것을 상당히 유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아원 양로원은 운영하는데 거기에 보면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간다는 것은 없습니다. 돈을 쓰고 열정적으로 봉사하는데 예수님 믿고 천국 가는 것은 없는 거예요. 도리어 이런 분들 중에 보면 예수님과 천국을 싫어하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 이건 아니잖아요.

그들에게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예수님 전달해 주지 못하여 그들이 도움만 받고 예수님 없어서 그 영혼이 천국에 가지 못하면 이건 실패잖아요. 꽝이잖아요.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즉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 나름대로 고상하게 믿는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죽을 때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면 실패요, 꽝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최종 목적은 이 땅이 아니라 저 영원한 천국이라는 겁니다. 천국에서 잘돼야 진짜 잘되는 겁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잘되는 것은 하나도 관심이 없고, 도리어 유치하다고 하고, 이 땅에서만 잘되고 잘사는 것이 고상하다고 하면 이건 아니잖아요. 이게 도리어 유치하고 불쌍한 신앙이잖아요.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러라.”(고전15:19)

반면 또 이런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복 받으세요.” 하면 “아- 그런 유치한 말 하지 마라. 그건 사단의 잘못된 번영신학이다.“ 아니, 여러분! 예수님 믿고 이 땅에서 복 받는다는 것이 뭐가 잘못됐고, 뭐가 유치합니까? 그럼 예수님 믿고 이전보다 더 가난해야만 그게 고상한 복음입니까? 예수님 믿고 부자가 되면 잘못 믿는 것이고 나쁜 사람입니까?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 하나님을 믿고 물질적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번영했습니다. 그것 다 잘못된 겁니까? 물론 이 땅에서만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잘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추천할 것이 못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 믿고 복 받는 것까지 유치한 신앙이라고 프레임 씌우고 몰아세우는 것은 도리어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키는 마귀의 교묘한 술책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37:17)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 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 믿고 복을 받아서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라는 것입니다. 나누어 주지 않고 움키기만 하는 것이 문제고 유치한 것이지, 예수님 믿고 복 받아서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는 것은 도리어 추천하고 장려할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믿고 병 치료받는다.”고 하면 어떤 분은 “에이, 그렇게 미신적이고 유치한 말 하지 말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 예수님 믿고 병 치료 받는 것이 뭐가 유치합니까? 하나님께 병을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뭐가 유치하나요? 이렇게 말하는 분들 중에 보면 나중에 자기나 혹은 자기 가족 중에 누가 심하게 아프고 병들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고쳐주세요.”

아니, 예수님 믿고 병 고치는 것은 유치하다며?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며? 뭐야 이거? 남이 병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유치한 기도고, 자기가 병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고상하고 간절한 기도입니까? 완전 ‘내로남불’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자들도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자가 치료된다고 하셨습니다.

병든 자가 하나님께 고침 받는 것은 유치하고 무식한 미신이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성경의 가장 원초적인 진리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병든 자를 치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아프고 병든 분이 있으면 하나님께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5:15)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는데 처음에는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장로교에서 순복음 교회를 굉장히 비난했습니다. 특히 순복음 교회에서 성령을 받고, 시끄럽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저도 그때 한두 번 어머님을 따라 순복음 교회 철야 예배에 가보았습니다.

그때 깜짝 놀았습니다. 내가 교회에 온 것인지 돛대기 시장에 온 것인지 너무도 어수선하고 시끄러웠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찬양하고, 시끄럽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판단을 했습니다. “에이, 더럽게 시끄럽게 믿네. 고상하지 못하고 유치해서 같이 예배 못 드리겠다.”

그러다가 나중에 저도 성령을 받고 너무 기쁘고 좋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오고, 큰 소리가 나오고 아- 나도 모르게 유치해지더라고요. 물론 요즘은 성령 시대이기 때문에 장로교나 순복음이나 다른 여러 교단들도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서 박수도 치고 통성으로 기도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는 유치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여전히 이런 신앙을 유치하다고 비판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은 자기도 성령을 받아서 한번 체험해봐야 압니다. 그래야 그게 어린아이처럼 childish 유치한 것이 아니고, 어린아이처럼 childlike 순수한 것인 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 유식하고 고상한 척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스스로 고상하다고 하면서 가식을 떠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런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애야, 너 너무 느끼하게 나를 대하는 것 같다. 좀 자연스럽게 어린아이처럼 대하면 안 되겠니? 나는 그런 것을 더 좋아하는데...”

고로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잘나고 똑똑하고 고상한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렇게 어렵고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무식한 자도 누구나가 쉽게 믿을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간단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이 내 뜻대로 해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등지고 배반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너무 삐치지 말고, 너무 따지지 말고, 너무 계산하지 말고, 그저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십시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높여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달려가십시오. 아무쪼록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자들에게 주시는 천국을 얻고, 그 안에서 함께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