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나 터닝 포인트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그 계기는 이렇습니다. 40년 전 저의 아버님의 직업은 건축업이었습니다. 지금은 서울 강서구 목동 지역이 좋은 주택가 지역이지만 40년 전에 그곳은 도로 포장도 안 되었고 거의가 논두렁 밭두렁이었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그곳에 주택 9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들과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새로 교회가 건축하면서 들어왔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저와 저의 가족들을 예수님 믿게 하려고 그렇게 한 교회를 저의 집 바로 옆에다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당시에 저는 선데이 모닝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즉 주일 아침에만 가까스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군대를 제대하고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저의 신앙생활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지 못했던 내가 열심을 내고, 전도도 못했던 내가 열심히 전도를 하게 되고, 성경도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 주었느니라.” “알파와 오메가를 주었느니라.” “선물도 주었느니라.” “...으로 주었느니라.” 이 음성을 듣고 제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도요?” 그러자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그래.” 또 제가 물었습니다. “...도요?” “그래.” 마지막으로 제가 물었습니다. “...도요?”
그러자 하나님이 그 물음에는 예스(Yes)나 노(No)라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잠잠하셨습니다. 제가 종종 그 마지막 질문을 생각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의 마지막 질문에도 ”그래.“라고 대답을 하셨으면 나는 자칫 크게 교만해져 서 망하는 길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독생자 예수님도 주셨고, 성경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하는 성령님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하는 것과 혹은 구하지도 않는 것까지 모두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구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즉 그것까지 주면 우리가 자칫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어린 자녀가 아무리 떼를 쓰고 달라고 해도 독약을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그것까지 주면 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 말로 “어이구! 잘났어. 정말!” 너무도 교만하여 사람이 완전히 맛이 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이것저것 많은 것을 주어도 그것만은 주지 않습니다. 그게 뭘까요? 그것을 주면 교만해지는 독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교만이 오면 어떻게 됩니까? 이에 관련된 유명한 성경구절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신약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우리는 주저 없이 사도 바울을 뽑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신약성경 27권 중 그 절반인 13권을 쓴 사람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죽은 사람도 살리고, 그의 손수건을 환자에게 대면 병자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국을 직접 보고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하심이니라.”(고후12:7)
아시다시피 자동차에는 중요한 두 가지 페달이 있습니다. 악셀레타와 브레이크입니다. 만약 차가 악셀레타만 있고 브레이크가 없거나 망가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차 틀림없이 사고가 나고 맙니다. 고로 그 차 아무리 외관이 좋아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그 사람 쓸 수가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막기 위하여 브레이크 장치, 즉 교만 방지 장치를 두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배우자가 브레이크 장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가 브레이크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도 바울처럼 육체의 질병이 브레이크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끔 발생하는 문제가 브레이크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문제는 항상 있다. 왜? 교만을 방지하기 위하여” 저의 경우도 그렇고 여러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교만을 막기 위하여 각자에게 교만 방지 장치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브레이크 즉 교만 방지 장치도 고장이 날 때가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또 다른 브레이크 즉 사이드 브레이크 장치를 두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교만을 철저히 방지하기 위하여 2중 3중으로 교만 방지 장치를 마련합니다. 사실 이런 비상 장치가 많을수록 좋은 자동차나 좋은 배, 혹은 좋은 비행기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좋은 교만 방지 장치를 무시하거나 도리어 단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얼마 전 몇 분의 목사님들과 함께 크로풋 몰(Crowfoot Mall)에 있는 ‘버거킹’에 갔습니다. 거기가 주문을 하는데 한 여성 직원이 묻습니다. “Are you Koreans?" ”Yes." "Do you know 이민호?“ 여러분! 이민호가 누구지요? 저는 잘 모릅니다만 아마도 한국 사람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물어보는 직원은 필리핀 여성인데 한국 드라마와 한국 노래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남자들 너무 잘생겼다고 말을 합니다. 제가 몇 달 전에도 중국인 치과에 갔는데 거기서도 여성 직원이 나도 모르는 한국 남성 탤런트 이름을 대면서 너무 잘생기고 좋아한다고 말을 합니다. 도리어 제가 이상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생기고, 예쁘고 완벽한 연예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에게도 단점이 있습니까?” 모두가 ‘예스’라고 대답합니다. 즉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것저것을 다 주신 것 같지만 그 사람에게도 역시 단점을 주셨습니다. 가시가 있습니다. 교만 방지 장치가 있습니다.
여기 캐나다에 와보니 여러 나라의 자동차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차는 미국 차, 일본 차, 독일 차, 그리고 한국 차입니다.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차들 중에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단 한 대도 없습니다. 한국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누가 자동차를 만들든지 간에 브레이크를 빼놓고 자동차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각 사람을 만들면서 모두에게 교만 방지 장치를 두셨습니다. 그런데 아 참! 그 교만 방지 장치 즉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교만합니다. 매우 교만합니다. 죽을 때가 되어도 교만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자신이 교만한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회개도 못합니다. 아주 인생 망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괜히 얼굴이 굳어지고 긴장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이 쓰러지고 넘어져도 교만하지만 않으면 하나님은 다시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교만 방지 장치가 고장이 나서 계속 교만하면 더 이상 그 사람을 쓸 수가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께 계속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주여, 제가 교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교만 방지 장치가 잘 작동되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공습을 재개한다고 합니다. 그 이라크 나라가 옛날에 어떤 나라였습니까? 성경에도 나오는 바벨론이라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그 당시 바벨론을 세운 느브갓네살 왕이 교만하여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4:30)
그러자 하나님이 교만 방지 시스템을 작동시켰습니다. 갑자기 그에게 짐승의 마음이 들어갔습니다. 짐승처럼 울부짖고, 짐승처럼 행동했습니다. 결국 그는 왕궁에서 쫓겨나 짐승들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뜯어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7년을 지내면서 그가 다시 겸손해졌습니다. ‘내가 내가 하던 자가 ’하나님이, 주님이‘ 하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하늘을 우러러 보자 짐승의 영은 떠나고 다시 인간의 영이 들어갔습니다. 왕위도 다시 회복했습니다. 그때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단4:37)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에는 장로님이 없습니다. 제가 장로님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교단마다 장로님을 세우는 법이 다른데 원래 순복음 교단에는 침례 교단처럼 장로님 제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순복음 교단은 장로님을 세울 수도 있고, 안 세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장로님을 안 세우는 이유는 뭡니까? 교만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장로님을 세우면 더 교만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 아주 망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숨 걸고 장로님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모두 공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장로님을 세우면 교만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는 그러지 않겠지요. 그런데 목사님들 생각에 장로님을 세우면 90% 이상이 교만해진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교만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장로님을 왜 기필코 하려고 합니까? 물론 우리 교회 이야기가 아니고 딴 동네 이야기지만 제가 목자로서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부탁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기필코 장로님이 되지 마십시오. 도리어 겸손한 자리에 앉아서,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십시오.
여러분! 기도해줘야 합니다. 목사인 제가 교만하면 안 됩니다. 성도님이 교만하면 안 됩니다. 남편이, 아내가 교만하면 안 됩니다. 너와 내가 도리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져야 합니다. 내 인생 내가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하나님 없으면 못삽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잡아주지 않으면 쓰러지고 맙니다. 교만하면 인생의 진짜 행복이 달아나고 맙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용감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교만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도 교만합니다. 하나님, 제발 이 교만 좀 물리쳐 주시옵소서.” 같이 따라합시다. “하나님, 제가 교만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도 교만합니다. 하나님, 제발 이 교만 좀 물리쳐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