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율법을 지금도 지켜야 하나요?

날짜: 
2023/06/17
말씀: 
마22:35-40
말씀구절: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설교: 

율법을 히브리어로 ‘토라’라고 합니다. 이는 ‘규정 혹은 교훈’이란 뜻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토라’라는 말은 ‘화살을 쏘다.’라는 뜻을 가진 ‘야라’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즉 화살을 쏴서 과녁을 맞히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정확히 맞추기 위한 바른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 즉 ‘토라’에 대한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흔히 우리가 율법의 반대말은 ‘은혜’ 혹은 ‘복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토라의 반대말은 히브리어로 ‘죄’라는 의미를 가진 ‘하타트’라는 단어입니다. 이 ‘하타트’라는 단어는 화살을 쏘았는데 과녁을 빗나갔다는 동사인 ‘하타’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토라’는 화살을 쐈는데 과녁에 맞힌 것이고, ‘하타트’는 화살을 쐈는데 과녁에 맞히지 못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맞추지 못한 것이 죄라는 뜻입니다. 어때요? 그런 의미로 보니까 ‘토라’와 ‘하타트’ 단어가 정반대말이지요? 그러나 요즘 이 정도로 아는 성도님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토라’를 ‘율법’이라고 번역한 것은 영어 성경 번역본에서 대문자 'Law'로 번역했기 때문에 그대로 한글로 옮겨 ‘율법’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토라’는 구약성경 중에 모세가 쓴 5권의 책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한글성경에서 ‘율법’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136 구절, 신약에서 140 구절이 나오고 이를 합하면 총 276 구절이나 나옵니다. 상당히 많이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쟁론이 아주 많이 되는 예민한 주제이고, 오늘날에도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상당히 쟁론이 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에 대한 질문입니다. “목사님! 신약의 크리스천들도 구약의 ‘토라’에 나오는 계명들을 지켜야 하나요?” 이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뭐- 둘로 나뉠 겁니다. 신약에 사는 크리스천들은 구약의 계명들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분이 있을 테고, 반면 신약에 사는 우리들도 구약에 나오는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분이 있을 겁니다.

미국의 ‘오치터라더‘ 장로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토라에 나오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토라에 나오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인해 그만 패가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서로 비난합니다. “너희는 율법주의자다.” “너희는 율법 폐기주의자다.“

결국 이 장로회는 이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교단이 둘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은 장로회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모두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율법의 계명을 지키느냐 마느냐가 교단을 가를 만큼 중요하고 예민한 쟁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구약의 율법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부족하면 오늘날 우리 교회 역시 ‘오치터라도’ 장로회처럼 둘로 나뉘게 되는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의 율법 즉 토라에 대한 이런 저런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그 모든 구절을 찾아서 세 종류로 분류해보았습니다.

하나는 율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 구절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율법에 대하여 조화롭게 말한 부분입니다. 물론 시간 관계상 모든 구절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표적인 구절들을 몇 개씩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율법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한 부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앎이라.”(롬3:28)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4:15)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4) “예수 그리스께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도다.”(엡2:1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도다.”(갈3:13)

어때요? 이 구절들을 보면 “아하! 오늘날에는 율법이 폐하여졌구나. 그러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네. 이미 폐해진 것을 왜 우리가 지켜야 되느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와 반대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즉 율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 구절들도 살펴봅시다.

먼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7:12)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아는도다.”(롬12:14)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딤전1:8)

자- 이 구절들을 보면 “어- 율법은 폐해진 것이 아니네. 율법은 신령하고 좋은 것이네. 예수님도 율법을 옹호하셨네.”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자- 이렇게 율법에 대해 긍정적 면만 보거나 혹은 부정적인 면만 보면 조금 전에 말한 장로회처럼 서로 싸우고 분열될 위험이 있습니다.

고로 이번에는 율법에 대해 조화롭게 말한 구절들도 함께 살펴봅시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자- 이를 헤겔의 변증법인 정반합해서 종합해 보면 어떤 결론에 도달할까요?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에 도달할 겁니다. “신약시대인 오늘날에도 율법은 완전히 폐해지지 않았다. 다만 구약의 율법은 더 좋은 것으로 대체가 되고 완성이 되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지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논쟁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3:9)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보니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에 빠트리고 율법에 대해 논쟁을 하려고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율법서인 토라에 보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계명을 총 613가지로 나눈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뭐가 가장 큰 계명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자- 이 계명은 신명기6:5를 인용한 말씀으로 613가지 계명 중에 418번째 계명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자- 이 계명은 레위기19:18을 인용한 말씀으로 613가지 계명 중에 243번째 계명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40)

즉 예수님은 613가지 계명을 크게 둘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 이웃 사랑입니다. 이 두 계명은 토라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인 오늘날에 우리가 이 두 계명을 가리켜 “아- 그건 구약의 율법 계명이다. 그 계명은 오늘날 폐하여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율법 중에 그 두 계명은 신약 시대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두 계명을 좀 더 확대한 것이 모세의 10계명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관한 계명이고, 5-10계명은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입니다. 그러나 십계명 중에 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라는 것은 날짜와 내용 면에서 좀 변경되었습니다.

구약 시대는 안식일 법이 매우 세밀하고 까다롭고 엄격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율법사들과 예수님이 많이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가 그렇게까지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을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요하는 안식교인들 조차 구약시대처럼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남들에게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니 참- 자기모순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의 크리스천들에게는 굳이 날짜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큰 이유는 일요일이 모든 관공서가 쉬기 때문에 이 날을 안식일 개념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게 예배드리고 모이기에 편리합니다. 즉 율법 중에 어떤 계명은 폐해지고, 어떤 계명은 변경 되고, 어떤 계명은 오늘날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율법이 완성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율법 중에 폐지되거나 변경된 것을 오늘날도 자꾸 그대로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면 율법주의자가 되고, 더 심하면 이단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율법 중 폐기가 되지 않고 여전히 지켜야 되는 것조차 폐기되었다고 하면 그건 율법 폐기론자가 되고 맙니다.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한 율법의 완성주의자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완성은 바로 사랑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이웃을 사랑하면 그는 율법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의 홈페이지에 보면 ‘목회 비전’란에도 제가 이 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사랑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곳 외국 땅에서도 이루기 원합니다. 어떻게요? 그들도 우리와 같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해야합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ㅎ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그들도 우리도 모두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므로 주님 안에서 더욱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