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를 두려워하라
요절 : 눅12:4-5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있음. 왜냐하면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고(요일4:1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임.(딤후1:7)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에게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음.
(롬13:7)에도 보면 "너희는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 과연 누구일까요 ?
오늘의 본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함.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즉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임. 이에 대해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함.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오리이까 ?"(계5:4)
"만군의 여호와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로 삼으라."(사8:13)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라."(시33:8)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라." (계14:7)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자비의 하나님이심. 그런데 하나님을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 우리 하나님이 깡패입니까, 강도입니까, 아니면 테러리스트입니까 ?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만 보고 있다가 "이놈, 너 잘못했지. 벌 받아라 !"하고 우리에게 꾸중만 하시고 형벌만 하시는 하나님인줄 착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고 슬슬 피해 다니시는 분들이 있음.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뜻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 결코 아님. 다시 말해 성경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뜻은 하나님을 대할 때 가볍게, 경솔히 대하지 말라는 것이요, 하나님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분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라는 것임.
여러분, 크리스천들은 고난과 환난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강도나 테러리스트들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귀신들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 있고, 무서운 테러리스트들도 이길 수 있고, 귀신조차 좇아낼 수 있기 때문임. 그리고 하나님만 함께 계시면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이를 능히 극복하고 결국 기쁨과 평안 그리고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임.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만약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다면 우리는 고난과 문제를 이길 수 없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귀신들도 이길 수가 없음. 즉 하나님이 혹 멀리 떠나시면 우리는 파멸입니다. 실패입니다. 끝장입니다.
고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강도처럼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 분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그 분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불꺼진 화로처럼 황량해지고 쓸쓸해지기 때문임.
(시3:6)에 다윗은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음.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적이 나를 치려고 해도 하나님만 나와 함께 계시면 까딱없다는 것임. 그러므로 (시27:1)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함.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계속해서 큰 죄를 범하고, 또한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자신의 죄를 돌이켜 회개하지 않아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하신다면,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그 때에는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저주가 임하며, 들어와도 나가도 저주를 받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수치와 모욕이 다가오게 되고 맘.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과 내가 하나님께 멀리 떨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해야함.
만약 여러분이 이런 이유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그리고 이런 이유로 인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분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을 할 수 있다면 목사인 저는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백을 하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임.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하는 여러분의 생활 속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행함 있는 믿음이 따르기 때문임.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나옴. 아나니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은혜로 주셨다'는 뜻이며, 삽비라라는 이름은 '아름다움'이란 뜻을 가지고 있음. 이 두 부부는 자신의 땅을 팔아 많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임. 그런데 이같이 하나님께 물질로 헌신하고 좋은 이름을 가진 두 부부에게 아주 불행한 일이 생겼음. 다름 아닌 이 두 부부가 그만 즉사를 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음.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함.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느냐 ?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느냐 ? (행5:3-4,9)
즉 이 두 부부는 하나님께 많은 물질로 헌신을 했지만 나중에는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교묘히 속이려고 했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는 것임. 저는 이 사건을 대하면서 "아니 하나님, 뭐 하려고 성경에다 이 사건을 기록해 놓으셨습니까 ? 이게 무슨 좋은 사건이라고요 ? 오히려 교회의 수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 그리고 자칫 하나님께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 하고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두 부부의 죽음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반대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① 아니,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줄 알았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 하나님의 인격을 스스로 손상시킨 것이 아니냐 ?
② 아니, 베드로도 그렇지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 용서하고 포용을 해 줘야 주의 종이지 이렇게 성도들을 향해 죽음을 예언해서 죽게 만들면 되느냐 ?
③ 아니,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뭘 잘못했느냐 ? : 땅 팔아 헌금했는데 칭찬은 못해줄 망정 헌금 몽땅 안 했다고 죽으면 무서워서 어떻게 교회 다니겠느냐 ?
④ 아니, 세상에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 한 번 거짓말했다고 이렇게 죽으면 세상에 안 죽을 사람이 어디 있느냐 ?
⑤ 아니, 사람을 죽여도 한 사람만 죽여야지 부부를 다 죽이면 자녀들은 고아가 되지 않느냐 ? 세상에 이런 무정하고 잔인한 일이 어디 있느냐 ?
⑥ 아니, 이 부부가 꼭 죽어야 성경이 이루어지고 교회 질서가 바로 잡히느냐 ? 하나님은 이 사람을 회개 시켜 쓰면 더 좋지 않느냐 ?
⑦ 아니, 이 죽은 것을 보고 그 자녀나 가까운 친척들이 교회에 나오겠느냐 ? 오히려 교회라면 이를 갈고 원수같이 여기지 않겠는가 ?
⑧ 아니, 두 사람이 그것도 땅 팔아 건축헌금 많이 한 사람들인데 이렇게 기회도 안주고 죽일 수 있느냐 ?
⑨ 이 부부의 죽음이 교회에서 미화된다면 교회는 이상한 사교 집단이 아니냐 ?
⑩ 아니,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 다니는 부부가 그것도 한 날에 교회에서 죽었다면 어디 무서워서 교회 다니겠냐 ?
고로, 목사님, 나는 이 두 부부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니,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중하다고 했는데 더구나 두 사람이나 그것도 초대(개척) 교회 일꾼인데 죽도록 내버려두면 되겠습니까 ? 나는 이 성경의 사건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오늘날도 생긴다면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어디 무서워서 교회 나오겠습니까 ?
여러분, 왜 하나님은 자신의 성정에 손상을 당하면서까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죽여야만 됐고, 이 사건을 성경에다 기록해 놓아야만 했을까요 ? 이 난제에 대해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그 해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행5:5)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행5:11)
즉 이 일 후에는 성도들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하나님을 속이지 않고 거짓말을 안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경찰력도 군대력도 없음. 그리고 하나님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음. 목사도 전능하거나 전지하지도 않음. 그렇다고 이렇게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자기 양심을 속이고, 목사를 속이고, 교회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여도 좋은 곳입니까 ? 교회에서는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그리고 자기 성질 부릴데로 다 부려도 괜찮은 곳입니까 ?
물론 하나님은 용서해주고 또 용서해 줍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또 참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하,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시구나 !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분이시구나 !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면 안되겠구나 !"
물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너무나도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애들아, 너희는 이러지 마라 !"는 것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한계를 넘으면 안됩니다. 인간으로서 짐승과 같은 죄를 짓게 되면 그는 위험인물로서 사회에서 격리가 되고 말듯이 성도도 마찬가지임. 죄를 지을 수가 있음.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이 회개를 안하고 자기 양심과 성령을 속이고 자꾸 한계를 넘는 죄를 지으면 그 역시 교회에서 분리가 되고 맘. 결코 목사가 힘이 있어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이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냐 ? 한 마디로 말하면 겁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주차할 때 보면 "Unauthorized vehicles will be towed away at owner's expense."라는 문구를 볼 수 있음. 이를 번역하면 "불법으로 주차하면 견인되어간다. 그리고 그 견인 비는 불법으로 주차한 사람이 물어야 한다"는 것임.
이 경고의 문구를 보면 우리는 깨닫습니다. "으이크, 여기다가 주차하면 안되겠구나 !" 즉 적당한 경고와 법적 집행으로 말미암아 주차질서가 잡혀지고 사회 질서가 이루어진다는 것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필요한 것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질서임.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지 결코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때때로 질서를 이루기 위해 적당한 경고도 하시는 분이심.
고로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거듭해서 말씀함.
"그를 두려워하라. 그를 두려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