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먼저 행복하게 하라.

날짜: 
2021/03/14
말씀: 
마7:12
말씀구절: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설교: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와 자기 가족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캐나다에 유학도 오고 이민을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캐나다에 왔더니 어떻습니까? 많이 행복한가요? 혹시 여기 캐나다에서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은가요?

혹 캐나다에서의 생활에 도저히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은 또 다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역이민을 가기도 합니다. 즉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자기의 행복을 얻기 위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행복을 얻기 위한 방법은 각각 다를 수가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행복을 얻는 방법에서 다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을 먼저 행복하게 하므로 나도 행복해지려는 사람이 있고, 반면 남을 찍어 누르고 불행하게 하므로 내가 행복해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좀 알려진 세상 말로 하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남의 행복을 먼저 추구하는 사람을 이타주의(Altruist)자라고 합니다. 반면 자기의 행복을 먼저 추구하는 사람을 이기주의자(Egoist)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또는 우리 크리스천의 경우는 이타주의자입니까? 이기주의자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경우는 이타주의자입니까? 이기주의자입니까?

영어로 교회를 Charity 기관이라고 합니다. 자선단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Non-profit Organization 이라고도 합니다. 즉 교회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관이라는 것입니다. 고로 교회는 태생 자체가 이기적이 될 수 없고 이타적인 기관입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하나님의 이익,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서로가 힘을 합쳐 일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일하면서 나도 그 안에서 행복과 보람을 누리는 곳입니다. 즉 성도란 하나님과 남을 먼저 행복하게 하는 이타주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수고하고 희생하므로 그 속에서 나도 행복의 열매를 얻는 곳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교회는 세상의 다른 이익 집단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은 항상 남을 먼저 행복하게 하기 위한 가르침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이를 가리켜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합니다. 3세기 로마황제였던 ‘알렉산더 세벨루스’가 이 말씀이 너무 좋아서 황금으로 이 구절을 벽에다 새겨 놓은 데서 황금률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구절의 뜻은 남이 나를 대접하고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고 행복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런데 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머리로는 아멘 하지만 실천이 잘 안 될 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남보다 더 높아지고, 내가 남보다 더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남보다 더 사랑 받고, 내가 남보다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의식이 거의 본능적으로 사람들의 몸에 배어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말세는 성경의 예언대로 자기를 더욱 사랑하는 시대입니다. 고로 이기주의자가 많이 생기는 말세는 살기가 참 힘이 듭니다. 뻑뻑합니다. 가정에서도 아내도 이기주의자, 남편도 이기주의자, 자녀도 이기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고로 가정이 쉽게 깨지고 불행해지고 맙니다.

교회에서도 자기만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주의 신자가 많으면 참 힘이 듭니다. 성도 간에 인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해서 남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꼭 남에게 먼저 인사를 받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지적한 현대판 바리새인입니다.

내가 남보다 더 높아져야 되고, 내가 남보다 더 잘 났다고, 더 가졌다고 뻐겨야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에서 결국 불행해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높여주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성도님을 높여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는 목사님이나 성도님이나 다 낮아져서 서로를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나도 행복을 느끼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과 남을 먼저 행복케 하므로 나도 그 후에 행복해지는 곳입니다. 이런 올바른 생각을 가진 분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어디서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즉 내가 남에게 받기만을 바라지 말고 네가 먼저 남에게 친절을 주고, 사랑을 주고, 돈을 주고, 행복을 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너를 크게 복주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또 예수님의 말씀 중에 이런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즉 먼저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면 하나님이 너를 행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고, 구제하고, 선한 일에 힘을 씁니까?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을 예수님 믿게 하여 천국가게 하고,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면 하나님도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이 행복해지면 나도 역시 행복해집니다. 아멘이지요? 혹시 그 일을 했는데 하나님만 행복하고 나는 불행한 것이 있지는 않나요?

예를 들면 헌금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했더니 하나님만 부자가 되고 나는 거지가 되지는 않았나요? 그래서 나는 불행하고 하나님만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요? 저는 헌금을 많이 해서 그와 그 자손들이 거지가 되고 불행해진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헌금도 많이 심으면 하나님이 물질로도 거두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물질로 행복하게 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물질로 행복하게 합니다. 즉 그 사람에게 물권을 주어서 평생에 때를 따라서 쓸 물질이 다가오게 합니다. 고로 부탁합니다. 어찌하든지 그 분을 먼저 행복하게 하십시오. 말세의 이기적인 시기에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시고, 지금의 COVID-19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요즘 ‘페미니즘’이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여성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어떤가요? 성경은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종종 여자를 숫자에서 치지도 않습니다. 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성경은 여성의 권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성경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하는 것은 가정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것이지, 남편이 아내보다 잘나고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몸으로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머리를 가리켜 머리가 손이나 발보다 잘났다고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몸의 각 기관의 기능이 다르다는 뜻으로 머리는 머리라고 부르고, 눈은 눈이라고 부르고, 손은 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여자의 숫자를 치지 않은 것은 당시 싸움에 나가는 군인들의 숫자를 세었기 때문에 군인이 아닌 여성들과 아이들은 숫자에서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기업을 분배받을 때에도 여성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보면 화가 단단히 날 상황입니다. 이것도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당시 지파별로 가정별로 땅을 분배하는데 남성의 이름만 있는 것은 아내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남편에 속하여 같이 기업을 얻게 되는 겁니다.

아내의 이름이 빠졌다고 남편만 그 땅에서 살고, 아내는 땅도 없이 집도 없이 방황하며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남성이 대표자라는 뜻입니다. 혹시 페미니스트 중에는 이것도 좀 싫어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왜 여성을 대표자로 안 세우고 남성을 대표자로 세우느냐?”

이것도 좀 생각해 보십시오. 남자는 외출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외출하는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간이 상당히 걸립니다. 그런데 당시는 전쟁 상황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빨리 회의를 소집해야 하는데 누가 대표자로 나가야 빨리 모일 수 있습니까? 그것도 칼 들고 완전무장하고 나와야 합니다.

혹시 동작이 빠르고 전투력이 좋은 아내가 있어서 대표자로 나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하고 전쟁을 할 때 아이는 누가 돌봅니까? “아- 뭐 그때는 남편이 돌보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는 여성분이 있는데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이 아빠와 같이 있기를 원합니까? 엄마와 같이 있기를 원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남성을 대표자로 뽑아야 일이 편하고, 서로의 행복에 좋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7장에 보면 므낫세 지파 중에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따집니다. “우리 아버지는 광야에서 죽었고 아들이 없는데 그렇다고 딸들에게 땅을 분배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 가서 사느냐? 우리에게도 땅을 분배해줘라.”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이 대답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없으면 딸들에게 땅을 줘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3000년 전에 이미 여성의 재산(부동산) 상속권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여성을 무시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남자만 5000명을 먹였다고 했는데 이때 왜 여성은 숫자에 안 들어갔냐고 따지는 분도 있습니다.

아니, 여성이 숫자에 안 들어갔다고 오병이어 당시 여성은 먹을 것을 주지 않고 굶겨서 보냈나요? 그 당시에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과 같이 움직이기에 빵과 생선을 분배하고 계산하기 쉽기에 그렇게 대표 남성만 계산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분은 “아니, 예수님은 12제자를 뽑을 때 왜 여성은 하나도 뽑지 않고 전부 남자만 뽑았느냐?”고 따지는 분도 있습니다.

이것도 생각해 보세요. 당시 예수님은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때로는 핍박도 당하고 죽을 고비도 있었습니다. 이때 여자 제자가 있었다면 그녀는 어디서 잡니까? 아- 서로가 불편해지는 겁니다. 그 외에도 뭐 불편한 것이 많이 있겠지요? 그러니까 12 제자를 다 남성으로 뽑은 겁니다.

또 신약 성경에 보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는 것도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이 말은 교회에서 여자는 입 닥치고 순종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리석고 말 많은 여자가 자기 남편을 핫바지로 만들고 가정의 질서뿐만 아니라 교회의 질서까지 어지럽히니까 질서를 지키라는 뜻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드보라’라는 여자 선지자도 세웠고, 지혜로운 여성이 나라를 구하고 가정을 구한 사건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고로 페미니스트 여성분들이여, 하나님은 여성을 차별한다는 나쁜 하나님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신체구조상 그리고 정신 구조상 역할 분담이 필요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내는 남편을 먼저 행복하게 하고, 또 남편은 아내를 먼저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그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죽도록 애를 썼는데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로 나는 불행하다. 나만 바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남을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는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닌가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대접해주지 않으면 항상 하나님이 나를 대접해주지 않은가요?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주고, 사람이 나를 칭찬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칭찬하시고, 혹 사람이 나를 멸시해도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고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 물론 내가 남을 대접하고 행복하게 해서 곧 바로 나도 남에게 대접받고 행복해지면 기분이 좋겠지요. 그러나 혹 나의 행복이 더디게 올지라도 너무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잠시 후에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런 사람에게는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로 최근 기분이 나빠졌다면 기분을 좋게 전환시키십시오. 그리고 꿋꿋하게 사십시오. 계속해서 남의 행복을 위해, 주님의 행복을 위해 그 일을 계속 하십시오. 물론 인내도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으로부터 계속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그 분도 행복하고 여러분 각자도 결국 행복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