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엔 부활입니다.

날짜: 
2023/04/08
말씀: 
요5:24-29
말씀구절: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설교: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장춘몽’입니다. 즉 ‘한 바탕의 봄날의 꿈’이라는 겁니다. 인생을 살면서 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보아도 그것 역시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요. 혹은 그 반대로 인생을 살면서 지지리 고생을 하고 큰 고통을 당해도 그것 역시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성경 역시 인생의 허무함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렸던 솔로몬 왕의 인생 말년의 고백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또한 인생을 제법 값지게 산 모세의 인생 말년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그렇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다 비슷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좀 있겠지만 크게 세 파트로 나뉩니다. 일단 인생의 1/3 정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냅니다. 그리고 먹는 것 준비하고, 준비한 것 먹고, 먹고 난 것 치우고 하는데 또 1/3 정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일하든지 공부하든지 놀든지 하는데 또 1/3 정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가는 겁니다. 그런데 어디로 갈까요? 이에 대하여 뭐 철학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이런 저런 토론을 하면서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성경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전도서 12:7 말씀입니다. “흙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로 돌아간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것도 뭐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자신의 죄 사함을 받은 영혼은 예비된 천국에 들어갈 것이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영혼은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가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일단 너와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믿지 못한 영혼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와서 그들도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겁니다. 즉 전도하는 겁니다. 이 정도 사실만 깨닫고 실천하고 산다면 언제 어느 순간에 자신에게 죽음의 순간이 다가와도 인생에 그리 큰 후회가 없을 겁니다.

그때가 오면 “주여, 제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감사하며 주님께 가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아버지, 저 왔어요. 예수님, 제가 왔어요.” 하며 허그(hug) 찐하게 하며 '할렐루야!' 하고 찬양하며 행복과 평안을 누리면 되는 겁니다. 아- 그 날이 때로는 매우 그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천국에 올라가고 난 후에 진짜 중요한 것 하나가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예- 다름 아닌 부활입니다. 어찌 보면 이미 천국에 올라가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몸의 부활이 뭐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부활의 몸을 입는 것은 도리어 영혼을 속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그리 부정적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부활의 몸을 입혀 주시는 것은 그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 그 장점에 대해서 제가 성경을 바탕으로 좀 애기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일단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도 부활의 몸을 입으셨으니 그의 신부인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의 몸을 입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야 신랑과 신부가 더욱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부활의 몸을 입히신 것은 예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고로 우리들에게도 나중에 부활의 몸을 입혀주시는 것도 우리를 더욱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지 우리의 영혼을 속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어야 장차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이룰 때 부활의 몸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는 것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의 몸과 부활의 몸에 대해 그 차이점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몸이 하도 마음에 들지 않고, 하도 연약하고, 하도 불완전하기에 부활의 몸도 그런 줄 착각하는 겁니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있을 부활의 몸에 대해 보다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1. 부활의 몸은 쇠하지 않는 몸이요, 병들지 않는 몸이요, 죽지 않는 몸입니다.

현재 우리들의 몸은 종종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매일 휴식을 취해야 하고, 잠을 자야만 합니다. 그래야 육체가 버티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피곤을 모릅니다. 지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먹어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이빨이 빠지지도 않습니다. 피부가 탄력을 잃고 쳐지지도 않습니다.

얼굴에 기미나 주름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암도, 각종 질병도 생기지 않습니다. 늙지 않습니다. 물론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불멸의 몸입니다. 그리고 현재 인간의 체온은 36.5도입니다. 즉 추위와 더위를 느끼는 몸입니다. 저는 더위보다 추위를 싫어합니다. 캘거리에서 오래 살다 보니 더욱 추위가 싫어집니다.

그런데 부활의 몸은 추위를 이기는 몸입니다. 물론 더위도 이기는 몸입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추위와 더위를 이길까요? 일단 용광로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몸입니다. 그리고 영하 수천도 혹은 수만 도에도 얼지 않는 몸입니다. 그래서 우주 어디에 거해도 그곳의 극한 온도에도 견딜 수 있는 몸입니다.

혹 어떤 분은 “아- 부활의 몸을 입으면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못 먹을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 되게 섭섭한데요. 저는 먹는 것이 취미이고 먹는 것이 낙인데요.” 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활의 몸은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몸입니다. 그리고 부활체는 음식을 먹어도 100% 다 소화가 되고, 몸 안에서 완벽히 처리가 되기 때문에 화장실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혹 어떤 분은 이렇게 묻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부활체도 성행위를 하고 결혼을 하는가요? 그리고 자녀도 낳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이 대답하신 적이 있습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30) 즉 부활의 몸은 성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출산도 하지 않습니다. 고로 그때에는 산부인과 병원도, 산후조리원도 필요 없어집니다.

그리고 성행위에서 얻는 쾌락보다 더욱 큰 기쁨과 행복이 주어지게 때문에 성행위를 못한다고 섭섭해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혹 어떤 분은 “부활해서도 골프를 칠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어떤 분은 예수님이 골프를 굉장히 잘 치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 보면 그냥 웃고 싶습니다. 부활의 몸은 그 어떤 오락을 할 때의 즐거움보다 수천만 배의 기쁨을 누리는 몸입니다.

2. 부활의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입니다.

현재 우리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그래서 좀 답답합니다. 캘거리에서 밴쿠버를 가려고 하면 차로 10시간, 비행기로 1시간은 걸려야 합니다. 더구나 한국에 급한 일이 있어 가려고 하면 12시간 비행기를 타야합니다.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시간과 공간을 순식간에 뛰어넘는 상상을 합니다. 바로 ‘타임머신’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몸은 그 자체에 타임머신 기능이 있습니다. 캘거리에서 한국까지 가는데 1초도 안 걸립니다. 생각만 하면 어디든 갈수 있습니다. 저 우주의 수천억 광년 떨어진 별들이 모인 은하계도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여행이 가능합니다. 저는 부활의 몸을 입으면 도대체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그곳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가끔 인터넷에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아름다운 장소를 100군데 선정해놓고 평생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 별로 가보고 싶지 않습니다. 뭐- 그곳 가봤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 뭐 특별한 것 있습니까? 도리어 부활의 몸을 입고 저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곳 100군데를 가보고 싶습니다. 아- 그래서 빨리 부활의 몸을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혹 어떤 분은 이런 걱정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 목사님!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가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고요, 또 경치가 좋은 곳은 부활한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너무 복잡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혹 부활한 사람이 과거나 미래로 가서 역사를 뒤집어 놓으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저도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부활체에도 질서라는 시스템을 작동시키십니다. 저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질서 있게 운행하도록 만드신 하나님이 부활체도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질서 있게 운행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놓으실 겁니다.

그리고 부활체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부활한 사람들이 많다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활 때에는 집 평수에 따라서 빈부격차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부활한 사람들이 수십 억 명이 모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공간과 장소가 필요할까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공중 재림 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하고, 그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부활체로 변화가 돼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고 말씀합니다.(살전4:16-17) 이때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공중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나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수십 억 명이 모이고 만나기 위해서는 그 만남의 장소가 어마어마하게 커야 될 터인데 그게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예- 그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활의 몸은 공간을 초월하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이 성전에 한 줄기 강한 빛을 비추면 그 빛을 따라 먼지가 보입니다. 그 먼지의 수가 도대체 얼마나 됩니까? 이 성전에 있는 먼지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즉 부활의 몸은 지금 이 성전에도 수십 억 명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아- 목사님! 그거 확실합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고 물으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물리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신비한 물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신비한 것들도 우주에는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몸은 공간이라고 하는 물리법칙을 초월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의 몸을 입고 제자들이 모인 장소에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분명히 문을 잠갔고, 밖에 인기척도 없었는데 그냥 쓱- 예수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예수님이 공간을 초월한 부활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그 때가 되면 우리의 IQ가 상당히 높아지겠지요?” 그렇습니다. 부활의 몸을 입으면 지금의 지혜와 지식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집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나오는 과거의 사람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같은 사람들을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때가 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바로 알아보게 됩니다. 부활체는 그만큼 깨닫고 인식하는 능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그 때가 되면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읽다가 풀어지지 않는 궁금한 사항도 그때는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다 알 수가 있습니다.

3. 부활의 몸은 죄를 이기는 영화로운 몸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피곤하여 잠 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제자들은 예수님을 도와서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술과 담배를 끊어보려고 합니다. 각종 죄의 나쁜 습관들을 끊으려고 합니다. 아- 며칠간은 잘 참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또 다시 슬그머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웁니다. “아이고- 이 녀석아! 너 또 왜 그러니?” 하고 자책합니다. 자기의 마음에는 술과 담배를 끊고, 보다 성결하고 거룩하게 살고 싶은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죄를 이기지만 육체가 죄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죄를 이기는 몸입니다. 그때에는 죄를 지으면서 “에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자책하는 말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죄를 이기는 영화로운 몸이기에 마음과 육체가 따로 놀지 않습니다. 마음도 영화롭고 육체도 같이 영화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최종의 목표는 바로 이런 영화로운 몸, 부활의 몸을 입는 것입니다. 즉 부활은 구원의 최종 완성입니다. 우리 보다 먼저 죽어서 천국에 올라간 분들은 영혼의 구원은 받았지만 육체의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고로 산 자나 죽은 자나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재림의 그날을 학수고대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날이 육체의 구원도 완벽히 이루어지는 부활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는 부활을 생각을 하면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부활을 상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가끔 사람들 중에 복권에 당첨이 되어 억만장자가 되는 상상을 합니다. 그 돈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시지요? 그거 거의 다 개꿈입니다. 꽝입니다. nothing입니다. 혹 재수 좋게 당첨이 되어 그 돈으로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려도 잠시 후에 죽으면 끝납니다. 일장춘몽입니다. 아- 너무 허무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부활의 꿈은 결코 헛된 꿈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확실히 일어날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누구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지칩니다. 아직까지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찬란하고 희망찬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그때에는 또 다시 이런 메아리가 울릴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고 그 부활을 누리며 우리는 또 다시 찬양할 겁니다.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아무쪼록 예수님의 재림의 날, 부활의 영광의 노래를 다 함께 힘차게 부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