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 그대로

날짜: 
2021/09/19
말씀: 
사55:1
말씀구절: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설교: 

사람들이 교회 오기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돈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 잘 다니다가 그만 돈에 시험이 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도 한때 돈 때문에 시험이 든 적이 있습니다. 30년 전 쯤의 일입니다. 당시 정부의 보상금이 나와서 십일조 액수가 5천 5백만 원을 내야 할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당시 백만 원대의 단위일 때는 가까스로 십일조를 내셨는데 5천 5백만 원을 십일조를 내려니까 힘이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교회에 안 가려고 합니다. 믿음의 분량보다 더 큰 축복을 받으니까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축복보다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 없이 복을 먼저 받으면 그 복이 도리어 더 큰 시험과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에 시험이 들어 교회 못 오시는 분들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웬만큼 경제적으로 좋은 사람 외에는 매달 수입과 지출이 빠듯하게 짜여 있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으로 헌금생활을 잘 하던 분들도 혹 수입과 지출에 사고가 나면 큰 스트레스가 생기게 됩니다. 지출을 크게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고정되어 있고 짜인 지출을 갑자기 줄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드시 나가야 할 돈이 있습니다. 집세, 모기지, 차량 할부금, 전기세, 전화세, 가스비, 식비... 등등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던 십일조를 못 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와도 힘이 안 납니다.

하나님이 “이 도둑놈아!” 하고 책망하시는 것 같습니다. 괜히 다른 성도님들 눈치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오는 것이 예전처럼 즐겁지 않습니다. 뭔가 불편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이, 경제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교회 다니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즉 돈이 없어도 그냥 나오라는 겁니다. 헌금 안 해도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부자입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시고 그들을 복주시기 위해 부르시는 분입니다.

고로 “돈 좀 생기면 교회에 다시 나가겠다. 부자 되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비록 거지꼴을 해도 하나님께 오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좋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부자 아버지를 둔 둘째 아들이 아버지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 상속을 미리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지냅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그 나라에 큰 경제 위기가 닥쳤습니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날렸습니다. 그리고 쫄딱 거지가 되었습니다. 거지 중의 가장 심한 상거지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돼지 치는 일을 해보았지만 돼지가 먹는 음식도 누가 충분히 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몸은 야위어가고 이대로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아- 나는 여기서 이대로 죽어야 하는가?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데...그냥 아버지 집에 돌아가면 어떨까? 그러나 이런 거지꼴을 하고 돌아가면 나도 체면이 있지.”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에 돌아가야 할 것인지 그냥 여기서 굶어죽어야 할 것인지 갈등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큰 용기를 냅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가자. 이대로 굶어 죽을 수는 없다.” 그리고 상거지 꼴을 하고 아버지 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모습을 보니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했습니다.

옷도 찢어지고 낡았습니다. 아니- 옷이라고 불릴 수 없을 정도의 넝마조각입니다. 그 동안 못 먹고 굶주려서 몸은 삐쩍 마르고 눈은 퀭하니 들어갔습니다. 머리도 씻지 못하여 이리저리 엉키고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아- 이런 모습으로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 창피합니다. 더구나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을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그리고 형은 나를 얼마나 업신여기고 비웃을까?

아- 자존심이 상합니다. 차라리 그냥 죽고 싶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터벅터벅 걸어서 아버지 집에 돌아가는 길도 너무도 멀고멉니다. 그 동안 못 먹어 배가 고파서 한발 두발 옮기는 것도 힘이 듭니다. 드디어 가까스로 아버지가 사는 동네에 가까이 왔습니다.

자기는 모르는데 마을에 소문이 났습니다. 웬 낮선 거지가 하나 마을에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감이 스쳐왔습니다. “그 거지가 혹시 오래 전에 집나간 내 둘째 아들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급히 마을 입구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거지 중의 완전 상거지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멀리서도 “재가 내 둘째 아들이구나!” 하고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들아!”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둘째 아들이 죽지 않고 아버지 품에 돌아왔습니다. 지독하게 썩은 냄새가 나지만 아버지는 그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집안 잔치를 합니다. “야- 우리가 오늘 먹고 즐기자.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아버지는 아들이 무슨 모습으로 오든, 잘난 모습으로 오든, 못난 모습으로 오든, 거지꼴을 하고 오든, 멋있는 신사차림으로 오든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겁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죽기 전에 집나간 둘째 아들, 그 후 소식이 끊어진 둘째 아들을 한번이라도 보고 죽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는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께 돌아가는 겁니다. 내가 성공해서 돌아가겠다. 좀 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가겠다.

아니요.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돈이 없어도 좋습니다. 파산을 당해도 좋습니다. 거지(홈리스)라도 좋습니다. 아버지는 그 모습 그대로 하루라도 빨리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올 때 좋은 옷을 안 입고와도 좋습니다. 슬리퍼를 신고와도 좋습니다.

머리를 안 감고와도 좋습니다. 냄새가 나도 괜찮습니다. 돈, 헌금? 안 가지고 와도 됩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거지입니까? 그리고 뭐- 술과 담배를 끊고 나서 교회에 나온다고요? 에이- 그냥 나오세요. 일단 아버지 집에 나오는 것이 우선이래도요. 아- 이 꼴을 하고 어떻게 교회에 나가요? 아니요. 그 꼴을 하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총각 때 전도를 할 때 공장 기숙사에 매주일 전도를 나갔습니다. 그때 보면 처녀 총각들이 주일에 그 동안 밀린 양말, 옷 등을 빨래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자고 하면 “아- 지금 신고 갈 양말이 없어요. 지금 빨래가 다 안 말랐어요.” 하고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전도 나가기 전에 미리 새 양말을 몇 켤레 사두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이 나오면 가방에서 즉시 새 양말을 꺼내면서 “여기 새 양말 있지롱.” 하고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또 어떤 자매님은 “아- 스타킹이 다 찢어지고 펑크가 나서 오늘 교회 못가요.”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저랑 같이 전도를 나간 자매님이 가방에서 새로 산 스타킹을 꺼내주면서 “여기 새 스타킹 있지롱.” 하고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아- 여러분! 사람들을 보면 교회에 못 오는 이유가 뭐 그리 많습니까?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한 임금님이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사람들을 오라고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핑계를 대면서 못 온다고 합니다. 아- 나는 밭을 새로 사서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못가겠습니다.

아- 나는 소를 사서 그 소를 테스트 해봐야겠기에 못갑니다. 아- 나는 얼마 전 결혼을 해서 지금 신혼중이라 못가겠습니다. 사실 오늘 교회에 오신 분들도 교회에 못 올 이유를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 그대로 교회에 오는 겁니다.

아- 뭐 전염병 때문에 교회에 오기 힘들다고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지금 전염병이 돈지 1년 반이 지났는데 그 동안 한 번도 교회에 못 온 것은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 1년 반 동안 쇼핑몰은 애들 데리고, 마스크 쓰고 잘 다녔잖아요? 교회가 쇼핑몰보다 중요하지 않나요? 그래도 명색이 신자고, 명색이 집사인데...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여러분, 깨어진 그 모습 그대로, 더러워진 그 모습 그대로, 실패한 그 모습 그대로, 불완전한 그 모습 그대로 나오십시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이 오기를 기뻐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자녀가 잘나서 사랑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도리어 자녀 중 못난 자녀가 더 애처롭고 사랑을 많이 주게 됩니다.

예수님은 잘나고 똑똑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못나고 부족한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고로 당시 가장 큰 죄인이라고 하는 세리들도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창녀도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역시 부족한 죄인이지만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이 나오는 것을 적극 환영합니다.

결론입니다. 신앙생활 하다 보면 여러 이유로 인해 교회에 나오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그 모습 그대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아- 오늘의 이 설교는 사실 오늘 교회에 못 나온 분들이 들어야 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같이 기도합시다.

주위에 보면, 각 부서에 보면 요즘 어떤 이유에서든지 교회에 못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 집에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너도, 나도, 우리도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만큼은 그 모습 그대로 나올 수 있도록 믿음을 달라고 미리미리 기도합시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크게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