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을 모독하지 말라.

날짜: 
2021/07/31
말씀: 
히10:26-29
말씀구절: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설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이렇게 썼습니다. ‘유대인의 왕’.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빌라도를 찾아와 요청합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주시오.

즉 로마 황제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하지도 않았는데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하니까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요, 그 결과 십자가 사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시에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고, 이스라엘 역시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라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은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 황제를 반역한다는 것은 도리어 민족의 독립투쟁을 이끈 영웅적인 행동입니다. 고로 로마인에게는 예수님이 반역 죄인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큰 위인이 되어 칭송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런 민족의 위인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넘겨주면서 “이 사람이 반역죄를 저질렀으니 죽여주시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해보니 예수님은 반역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슨 큰 죄를 저질렀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을까요? 다름 아닌 ‘신성모독죄’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했으니 신성모독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요, 그 결과 사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은 욕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아주 심한 욕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특히 반기독교인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욕하는 것을 보면 참 기가 막힙니다. 신성모독도 그런 신성모독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심한 욕을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 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당했을 것입니다. 특히 이슬람 나라에서는 오늘날도 자신들이 믿는 알라신에 대한 신성모독죄는 바로 사형에 처하거나 매우 심한 벌로 다스립니다. 고로 혹시 타국인이 되어 이슬람 나라를 방문할 때 신성모독죄에 걸려서 큰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여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니 그까짓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을 좀 욕했다고 뭐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느냐?” 하고 좀 의아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신자들에게 있어서 자기가 믿는 신은 부모님보다도 더 귀한 분입니다. 그런 신성한 분을 욕하는 것은 자기 부모님에게 욕하는 것보다 더 화가 나는 행동입니다.

여러분들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누가 자기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내 부모를 욕하는 것은 참기 힘듭니다. 그런데 부모님보다도 더 위대한 자기가 믿는 신을 욕하면 그건 서로 원수지간이 되고 맙니다. 성경에 보면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신27:16) 그리고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출21:17)

여러분, 왜 자녀가 자기 부모를 가볍게 여기고, 자기 부모에게 막말을 할까요? 아- 물론 자녀가 부모에게 몹시 화가 난 상태일 겁니다. 어쩌면 부모가 자녀에게 큰 잘못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녀가 부모를 경멸하고 모독하는 죄를 저지르면 그건 상당히 큰 죄입니다.

저도 자녀였을 때는 이 죄가 그리 큰 죄인 줄 몰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모가 되어 보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녀와 부모가 다투는 중에 그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이런 말을 종종 합니다. “너도 애 낳고 자식 키워봐라. 부모 마음 알거다.”

여러분, 성경은 신성모독죄가 사형에 해당된다고 하듯이 부모 모독죄도 사형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독죄(다른 말로 모욕죄)는 종류가 참 많습니다. 국가 모독죄, 사이버 모독죄, 개인 모독죄, 상관 모독죄... 그리고 그런 대부분의 모독죄는 형량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사형까지 당할 정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부모 모독죄는 어떤가요? 물론 오늘날은 어떤 자녀가 부모를 모욕했다고 그 부모가 자기 자녀를 고소하지 않습니다. 누워서 침 뱉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법적으로는 부모 모독죄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성문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법도 있고, 천륜이라고 하는 하늘의 법도 있고,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법도 있습니다.

즉 부모모독죄는 하늘의 법, 양심의 법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용서받기 힘든 하늘의 윤리를 배반한 죄입니다. 부모가 되어서 자기 자녀에게 욕을 얻어먹으면 그 부모는 순간 정신이 나갑니다. 너무나도 비참해집니다. 더 이상 인생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고 죽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자녀가 부모를 모독하면 그 부모를 심적으로 죽이는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도 인격의 신이기에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게 심한 모독을 당하면 그런 느낌이 들게 됩니다. 즉 신성모독은 심적으로 하나님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용서받지 못하는 모독죄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귀한 진리를 받은 자가 일부러 진리를 모독하는 죄입니다.(26절) 그리고 자기를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29절) 그리고 은혜를 베푼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29절)

여기서 모독죄의 공통점은 진리를 받았던 자, 거룩하게 된 자, 은혜를 받은 자가 은혜를 준 자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하고, 내가 많은 은혜를 끼쳤던 그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하고는 느낌이 다릅니다. 상처의 깊이가 다릅니다.

히브리서 6:4-6에도 말씀합니다. “한 번 비침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부모 모독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었습니까? 그런데 그런 은혜를 받았던 자녀가 자기 부모를 욕한다?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완전히 호래자식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도 그런 새끼는 죽이라고 합니까? 현실 세계에서도 보면 부모가 자기를 욕하는 자녀를 도저히 참지 못하여 “너 죽고 나죽자.” 하는 식으로 대판 싸우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 믿는 부모들은 영적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 내 자녀에게 부모를 욕하는 마음을 주고, 누가 내 자녀에게 부모를 모독하는 말을 주었을까요? 바로 사탄이라고도 하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항상 그런 식으로 부모와 자녀를 이간하고 가정의 행복을 깨려고 합니다.

고로 우리 자녀들이 그런 행동과 말을 할 때 부모님들은 자녀를 더욱 불쌍히 여기고, 자녀를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한 짐승이 바다에서 나옵니다. 그 모습을 보니까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입니다. 그리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참람된) 이름들이 있다고 했습니다.(계13:1)

또 그 짐승이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계13:5) 즉 적그리스도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에게 가장 존경을 받아야 할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이 모독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지으실 때 그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가 되겠다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한 정면도전행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 짐승에게 하나님을 모독하는 입을 준 자가 누굽니까?

바로 용이라고도 하는 사탄 마귀입니다. 즉 마귀가 하는 짓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욕하고 모독하게 하여 그 피조물과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욥기서에도 보면 사단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그가 주를 향하여 욕하리이다.”(욥1:11)

그러나 욥이 모든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다 잃었어도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다시 하나님께 참소합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살과 뼈를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그가 주를 향하여 욕하리이다.”(욥2:5) 그러나 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들어 큰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욥의 와이프가 요런 요상한 말을 합니다. “그래도 당신이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 자- 보십시오. 욥이 그 큰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자 사단은 욥의 와이프의 입을 통하여 지껄입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즉 사단은 큰 고난을 통하여 욥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욥과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위대합니다. 결코 하나님을 욕하고 모독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끊임없이 모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궤계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없으면 인간은 하나님을 그렇게 모독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없으면 자녀는 부모를 그렇게 모독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없으면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심하게 모독하지 않습니다. 고로 혹시 인생 살다가 누구에게 심하게 모욕스런 말을 듣거나 모욕스런 행동을 당했습니까? 그래서 죽고 싶을 정도로 비참합니까?

그때는 깨닫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아- 저 마귀 녀석이 또 장난질 하는구나. 내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하는구나. 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 난 후 그렇게 나를 모독한 사람을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십시오. 더 나아가 그를 더욱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결국 최후의 승리는 인내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나도 알게 모르게 그 분을 모독한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먼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모독하는 길로 가게 만드는 사탄을 내 마음 속에서, 내 인격 속에서, 내 말과 행동에서 물리치십시오. 그래야 인간은 사탄과 함께 심판을 당하지 않습니다.

결론입니다.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많은 모독을 당하여 기분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도 그 사람처럼 같이 모독을 하지는 마십시오. 도리어 그를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한 번만 용서하고, 한 번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인생 끝날 까지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께 가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그런 저와 여러분들 “너 참 수고했다.” 하고 품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