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야 기도를 들으시니라

날짜: 
2005/09/05
설교: 

삼하21:10-14 그 후에야 기도를 들으시니라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후 얼마 안되어 아주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지만 3년째 기도 응답도 없고 가뭄이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3년 만에 기도응답을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너무 괘씸해서 기근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 괘씸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그 지역을 하나하나 점령할 때였습니다.
그때 기브온 거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서워하여 꾀를 내었습니다. 그들과 싸우자니 힘이 미약하고 그들과 화친을 하려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가나안 사람들과 화친을 안하려고 합니다. 그들과 화친하면 나중에 우상숭배에 빠지고 올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기브온 사람들은 지금 전쟁을 치루고 있는 이스라엘 진영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기에 군사 작전상 화친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온 거민들이 사신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다 헤어진 옷을 입고,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곰팡이 난 떡을 가지고 여호수아를 찾아 화친을 청했습니다. 형편을 보니 멀리서 온 사람들 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헤치지 않기를 맹세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바로 건너 동네 사람들인 겁니다. 감쪽같이 속은 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의 머리털 하나라도 건드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사울이 왕이 된 다음에 기브온 거민들을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사울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다는 잘못된 민족주의 사로잡혀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거하고 있는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예를 들면 나치 히틀러가 민족주의를 내세워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보시고 괘씸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아니, 내 이름으로 맹세를 했으면 지켜야하는데 네 마음대로 불순한 동기로 기브온 거민들을 학살을 해?”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다. 그러는 중에 사울 왕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된지 얼마 안되어 3년 동안 가뭄이 든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께 어떻게 할지를 물어 보니 살아남은 기브온 거민들에게 물어 보라는 거예요. 그랬더니 기브온 거민들이 자신의 민족을 무참히 학살한 주범들인 사울 왕의 자손 일곱 명을 자신들에게 넘겨달라는 겁니다. 다윗이 학살의 주범인 사울 왕의 자손 일곱 명을 넘겼더니 기브온 거민들이 그 학살범들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났더니 비가 내리고 3년 기근이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리스바라는 사울의 첩이 자기 아들들이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 목메어달려 죽게 되고 그 시체를 먹으려고 새와 짐승들이 덤비니까 그곳을 떠나지 않고 시체를 지키는 모성애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이 그들 7명의 시체와 옛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은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취하여 와서 조상의 묘실에 장사를 지내어 줍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 보니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
이 사건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하, 하나님은 원한 맺힌 것을 풀어주기를 원하시는구나!” 생각해보세요. 기브온 거민들은 하루아침에 사울 왕의 사람들에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특별히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단순히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사울 왕에 의해 부모가 죽었고 자녀가 죽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공포에 떨어야했습니다.
그들은 원한에 사무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 원한을 갚아주세요. 저희들은 합법적으로 이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사울 왕이 단순히 우리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더구나 옛날에 여호수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와 화친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했지 않았습니까?”
즉 이스라엘 사울 왕이 저지른 죄는 하나님을 무시한 행위요, 상당히 질이 안좋은 죄였습니다. 그로 인해 기브온 거민들이 원한에 사무쳤고 하나님도 괘씸하게 여겼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았고 3년 동안 기근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왜 3년 동안 기근이 든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기도하니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사건 때문에 하늘에 원한이 맺혀서 그렇다. 그러니 먼저 그 원한 맺힌 것을 풀어라.”
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옛날에 처녀 귀신들이 나타나 새로 부임하는 사또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사또님, 제 원한을 풀어주세요.” 그리고 사또가 그 원한을 풀어주자 그 고을의 저주가 없어진 것입니다. 즉 우리가 혹시 남에게 원한을 맺히도록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먼저 풀어야 기도가 응답이 되고 저주가 풀린다는 교훈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즉 원한을 풀지 않고 하나님께 제물만 드리면 열납이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회개라는 것도 어찌 보면 하나님과 인간에게 원한 맺힌 죄를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그 원한을 푸는 것입니다. 그렇게 먼저 원한을 풀면 천국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즉 땅에서 해야 될 일을 바르게 하면 하나님도 그 바른 행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원한 맺힌 것을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축복을 풀어놓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혹시 원한 맺힌 것이 없습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면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이 자기에게 원한 맺히게 한 것은 두고두고 잊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기가 남에게 원한 맺히게 한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생각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속담에 “원한은 돌에 새기고 감사는 물에 새긴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먼저 남에게 원한 맺히게 한 것을 푸는 것이 순서라는 입니다. 그래야 기도의 응답이 있고 저주가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저의 집안 이야기 입니다.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님이 풀이 죽어서 집안에 돌아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갑자기 세금이 일억 사천만 원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까지 거액의 세금을 포탈했으니 일주일 안에 세금을 내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빌딩을 경매를 붙이겠다는 것입니다. 살펴보니 우리가 낼 세금이 아니라 모 회사 사장이 낼 세금인데 우리에게 잘못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무서에 사정 설명을 해도 들어주지를 않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하루아침에 거지가 될 처지입니다. 그때 저와 저의 어머님이 한강을 바라다 보이는 마을 야산에 밤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큰일 났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우리가 거지가 되면 하나님 망신, 우리 망신, 모두 망신인데 어떻게 좀 해주세요? 주여- 주여-” 다급하니 기도가 아주 간절히 나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저의 어머님에게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다름 아닌 몇 년 전의 사건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때 저의 부모님이 평택에서 건축업을 하실 때 너무 바빠서 주일날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고 그곳 평택 순복음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날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그 당시 돈으로 120만원을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약속을 해놓고 먼저 있는 돈 18만원만 내고 나머지는 나중에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건축업을 하면서 몇 번이나 그 약속한 금액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에도 차일피일 미룬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축복을 해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무심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깨달아지자 저의 어머님이 당장 이모님에게 100만원을 빌려 평택 순복음 교회로 찾아가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저희가 이전에 작정한 건축헌금을 내지 못해 문제가 터진 것 같습니다. 저희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께 기도 좀 해주세요.”
그리고 이틀 후 저희 아버님이 기분이 좋아서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야, 세금이 천만 원으로 다운이 되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것으로 저의 어머님의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에 또 다시 동네 앞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세금을 감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천만 원 세금도 우리가 낼 것이 아닙니다. 아시지요. 하나님, 천만 원 세금도 감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한 후 저희 어머님이 또다시 100만원을 더 꾸어서 교회에 감사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또 다시 저희 아버님이 기분이 아주 좋아서 들어오셨습니다. “야, 세금이 100만원으로 줄었다.” 할렐루야! 그 동안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것을 풀고 나니 문제가 해결이 된 것입니다. 땅에서 먼저 푸니까 하늘에서도 풀어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요. “아니, 하나님이 단 돈 몇 백만 원 때문에 쩨쩨하게 섭섭이가 들어가지고, 그것으로 인해 기도도 안들어 주고, 뭐 그런 속이 좁은 하나님이 다 있어? 그러다가 돈 가지고 오니까 기분이 좋아서 기도 들어 주고! 에이 참, 하나님, 잘났네요?”
여러분, 혹시 당신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순전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몇 백 만원 때문에 쩨쩨하게 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금도 은도 다 하나님의 것이요, 이 우주도 다 하나님의 것이요, 무엇이든지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신데 돈 몇 푼
때문에 쩨쩨해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 무슨 이유로 기도도 듣지 않으시고 문제를 일으켜서 우리를 골탕을 먹이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충성을 못했습니까? 하나님을 배신했습니까?
어찌 보면 다윗왕 만큼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너는 나의 합한 자라” 하고 칭찬을 들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가 왕 위에 있을 때 3년간이나 기근이 임한다는 말입니까? 혹시 하나님이 실수하지 않으셨나요? 물론 3년 기근 사건은 다윗 왕의 죄가 아닌 사울 왕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죄는 개인의 죄가 아닌 이스라엘 전체의 죄입니다. 옛날 기브온 거민과 약속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약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그 책임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있기에 이스라엘에 기근이 임한 것입니다.
좀더 근본적으로 3년 기근의 문제를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요 축복의 하나님이시지만 한편으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주어도 공의롭게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둑놈을 축복해 주면 마귀가 옆에 와서 하나님께 참소를 합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도둑놈인데 그 사람을 축복해주면 공의롭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도둑질을 한 사람이 도둑질한 것을 회개하고, 도둑질 한 물건을 돌려주고, 정신적 피해를 입힌 것까지 보상을 해주어야 그 사람을 축복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구약 성경에 보면 보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즉 남에게 상처주고 원한 맺히게 한 것을 먼저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마음씨를 바르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야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물론 죄를 밥 먹듯이, 물 먹듯이, 간식 먹듯이 하는 저희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다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는 막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를 100% 만족시키신 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많은 죄로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원한을 맺히게 할 때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원한을 대신 풀어주셨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풀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들으면 하나님은 공의를 나타내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오늘 우리는 기도가 응답되기 원합니다. 문제가 풀어지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원한 맺히게 한 것을 회개로서 푸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되고 문제는 해결이 될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하는 예언이 외국 땅에 사는 우리에게도 성취되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