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응답, 계시, 성취

날짜: 
2006/10/02
설교: 

눅18:1-8 기도, 응답, 계시, 성취
성경에는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탐욕으로 구한다든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구한다든가, 혹은 우리 손에 피가 가득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알아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말씀도 합니다.
예를 들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들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님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구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자녀를 위하여 챙겨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챙겨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성경의 중심사상은 우리가 하나님께 반드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단지 우리의 필요한 것만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요술 방망이 같은 도구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이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고로 기도가 없는 성도의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은 사람으로까지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가 응답이 바로바로 오면 기도가 상당히 재미있고, 남이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를 하는데, 반대로 기도해도 응답이 신통치 않을 때에 우리는 기도를 중단하기 쉽고, 기도에 게을러지기 쉽습니다.
더구나 이곳 캐나다 땅은 영적으로 한국보다 기도의 응답이 더딘 곳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한국보다 두 배 정도 기도의 응답이 늦게 오는 곳입니다. 즉 한국에서 한 시간에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이곳 캐나다에서는 두 시간을 기도해야 응답이 온다는 것입니다. 고로 캐나다에서의 기도생활이 한국에서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물론 이 사실에 대하여 조금은 납득하기 힘이 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다니엘서 10장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니엘이 21일간 절식을 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지만 그 응답을 천사가 가지고 오는데 21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공중의 권세 잡은 사단이 하나님의 응답이 다니엘에게 오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단10:12-14)
이 사실을 통하여 볼 때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때로는 시일이 걸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기도할 때 응답이 빨리 안온다고 낙심하면서 기도를 멈추면 안됩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예수님도 과부의 기도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1-7)
혹시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여러분, 기도를 했으면 하나님이 분명히 내 기도를 들으신 줄을 믿고 인내하면서 기도에 대한 응답을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응답은 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하여서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응답이 왔는데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현실 속에서는 그 응답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혹시 내가 귀신으로부터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닌가?” 혹은 “그 응답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기도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지고, ”아이고, 기도를 해도 소용없구나! 괜히 혼란스럽기만 하구나!“ 하고 더욱 낙심이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그 여동생이 시집가기 전에 오산리 기도원에서 3일 간 금식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스튜어디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 스튜어디스 시험에 꼭 붙게 해주세요.” 여동생이 이런 기도를 하고 난 후 집에 내려와서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가 면접시험을 보는 데 면접관이 자기 서류를 보더니 쓰레기 통으로 집어넣으려다가 ‘에이!’ 하면서 합격자 명단으로 옮기는 꿈이었습니다.
동생은 이 꿈을 가족들에게 흥분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오빠, 이 꿈은 반드시 내가 스튜어디스가 되는 꿈이지? 나 분명히 합격이지! 오빠, 내가 스튜어디스 되면 십일조도 잘하고 하나님 더욱 열심히 믿을 거다!” 우리는 이 말에 같이 기뻐하면서 이렇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었구나!”
그런데 얼마 후 스튜어디스 시험을 쳤는데 보기 좋게 꽝이었습니다. 낙방을 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더욱 실망을 하면서 탄식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러면 그렇지. 내가 무슨 신령하다고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 그것은 개꿈이야! 아이고, 내 주제를 알아야지!“ 이렇게 말하면서 동생은 믿음생활이 점차로 식어져 갔습니다. 주일예배도 친구들과 노느라고 자주 빠지기도 했습니다.
저와 어머님은 여동생이 이렇게 낙심을 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자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여동생에게 기도에 대한 계시나 응답을 주시지 말 것이지 왜 기도에 대한 계시를 주어가지고 이렇게 더욱 낙심하게 하십니까?” 그러면서 저와 저의 어머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다음번에는 꼭 동생을 합격시켜주세요.”
그런데 이렇게 여동생의 직장을 위하여 기도를 하다가 저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환상 중에 천사가 나타나기에 제가 천사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주여, 제 여동생을 합격시켜 주세요.” 그런데 천사는 별로 좋은 표정을 하지 않고 저의 기도를 자꾸 뿌리치려고 하면서 떠나려고 합니다. 제가 더욱 열심히 매달리니까 천사는 ‘에이!’ 하면서 동생의 스튜어디스 지원서를 합격 쪽으로 밀어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여동생이 다시 스튜어디스 시험을 쳤는데 이번에는 합격을 했습니다. 즉 기도에 대한 응답과 계시는 일년 전에 왔는데 그것이 성취되기에는 일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동생이 스튜어디스가 되면서 처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십일조도 내고 열심이 있더니만, 조금 지나니까 사치와 허영에 빠지고 신앙생활을 더욱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천사가 스튜어디스 시험에 여동생을 합격시키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를 알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별로 좋지 못한 기도를 하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 기도가 가장 절박하고 가장 좋은 기도라고 생각하지만 뒤돌아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 그때 제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여 주시지 않았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이제 창립 9주년이 되는데 처음에 저희들이 교회 건물을 구입할 때 옛날에 캘거리 벧엘 장로교회 건물을 사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때 저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건물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비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때는 저희들이 지금 캘거리 제일감리교회가 세 들어 있는 교회 건물을 달라고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역시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참으로 낙심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얼마 후 지금의 교회 건물인 더 좋은 성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내 소원이 아주 강렬하지만 때때로 하나님은 나의 기도대로 응답하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에는 낙심하지 말고 더욱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솜씨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도에 대하여 응답을 해주어도 우리가 육신이 약하여, 혹은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놓치면 그 안타까움은 더욱 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내 자신이 실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놓쳐도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여 기도에 대한 응답을 놓칠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응답을 확실히 받도록 다시 새롭게 역사하시고 계획을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기가 아주 힘이 들면 강권적으로라도 우리에게 응답을 안겨주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늘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 일을 성취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기도를 하다가 응답이 안온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응답과 계시가 왔는데도 안 이루어진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루실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더욱 좋게 더욱 온전히 자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기도에 욕심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욕심을 성취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고로 기도를 하면서 보다 순수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즉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꼭 하나님과 흥정을 하여 무엇인가 얻어내려고 하는 마음보다 기도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려고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누가 나한테 접근을 할 때 나의 좋은 것이 탐이 나서 나에게 접근을 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나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 말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려는 자세가 있어야 하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신명기 4:7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즉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이고, 우리가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면 상대방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친구나 애인이 굳이 달라고 하지 않아도 미리미리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서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늘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응답은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응답이라는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는데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고로 기도를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의 기도는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여러분, 혹시 당신이 무엇이 필요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하기 전에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고로 기도하여 아뢰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 줄 것을 예비하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으십시오. 이렇게 믿을 때 하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식하다는 것도 잘 아시고 있습니다. 아무리 응답을 주어도 그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계시를 주어도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미련함을 잘 아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련하다고 우리의 일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미련하고 약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기에 우리의 일들은 그 분의 손안에서 해결이 되고 성취가 됩니다. 고로 우리는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을 노래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