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표적

날짜: 
2023/11/04
말씀: 
막16:17-20
말씀구절: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설교: 

성경에는 기적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믿음이 없었을 때는 그 모든 기적들이 사람들이 지어낸 거짓인 줄 알았습니다. 그도 그런 것이 한국의 고조선 단군신화를 봐도 그렇습니다. 뭐- 하늘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환웅이 3000명의 신하를 데리고 이 땅에 내려오고, 그 환웅이 쑥과 마늘을 100일간 먹고 곰이 변하여 여자가 된 여인과 결혼을 해서 단군을 낳고, 그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가운데 이것이 진짜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뭐 고조선 단군신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가 처음 세워질 때 보면 대개 이런 신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짜 일어난 기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그 나라의 정통성이 세워지고 멋있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종교의 경우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하여 그 종교가 생긴 기원에 대해 혹은 그 종교의 교주를 미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시각으로 성경의 기적들을 보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진짜 기독교는 너무나 과장됐고, 너무도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여러분, 어떠세요? 성경에 나온 그 수많은 기적들을 다 믿습니까? 아멘입니까? 노멘입니까? 솔직히 어떤 것은 믿고, 어떤 것은 믿기가 좀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테스트를 할 겸 한번 물어봅시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6일 만에 창조하신 것을 믿으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또 묻습니다. 분명히 천국과 지옥이 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을 100% 확신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그런데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 옛날 성경에 나온 기적들은 그럭저럭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일어나는 기적은 하나도 믿지 못합니다. 목사님들 중에 일명 신신학을 하신 분들이 그렇습니다. 저의 경우는 순복음 영산 신학대학원을 나왔습니다. 오순절 교단에 속한 순복음 교회 목사님들은 성경에 나온 기적들을 다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님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성경에는 기적이란 말도 있고, 이적이란 말도 있고, 표적이란 말도 있는데 모두 같은 말인가요?” “아니요. 같은 것 같지만 좀 다릅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기적’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테라스’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팔레’ 혹은 ‘모페트’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miracle'이라고 합니다. 기적이란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초이성적인 일이나 사건을 뜻합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이적‘ 혹은 ’기사‘라고도 합니다. 영어로는 ’wonder'라고 합니다. wonderful, wonder woman 할 때의 그 wonder 맞습니다. 이는 기적보다는 못하지만 ‘신기한 일(사건)’을 뜻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표적’이란 단어가 참 많이 나옵니다. 개역한글에도 총 59번이나 나오고, ‘표적’의 헬라어 원어인 ‘세메이온’은 총 77번이 나옵니다. 그리고 ‘표적‘을 히브리어로 ’오토‘라고 하고, 영어로는 ’sign‘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표적‘을 다른 한국말로 ’징조, 표시, 표징‘이라고도 합니다. ’표적‘이란 이적을 실현하는 자의 신분을 나타내고, 이적을 이루는 목적을 밝히기 위해 의도된 일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기적은 기적 자체이지만, 표적은 그 기적을 통하여 의도된 목적입니다. 그리고 표적은 꼭 기적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일상적인 일이나 일상적인 진리라도 그것을 통해 의도된 목적이 있다면 그것을 표적이라고 합니다. 아- 좀 어려운 것 같은데... 좀 더 예를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80세가 된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라고 애급으로 보냅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출4:1) 즉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려면 나와 그들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키시고, 또 모세의 손에 문둥병이 발하기도 하고, 치료되기도 하는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표적을 보고 모세는 담대하게 애급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지팡이가 뱀으로 변화가 된 것은 기적이면서 또한 표적입니다. 그리고 문둥병이 발하고 치료되는 것도 기적임과 동시에 표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적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세를 보냈다는 표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나타나서 예수님에게 침례를 베푸시고,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증거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그런데 그가 감옥에 갇혀 얼마 있으면 죽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증거한 예수님이 과연 메시아인지 보다 확실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이렇게 질문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11:3) 이에 대해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4-5)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이사야 35:5-6의 인용 구절입니다. 즉 메시아의 가장 큰 표적은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의술로 치료 불가능한 병을 치료하는 것은 기적이면서, 또한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심을 증거하는 표적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특별한 기적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의 표적입니다. 즉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멸시받고 천대받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우리들에게도 이런 표적이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오늘날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사람들 중에는 꼭 기적을 봐야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특히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8) 그래서 초대교회의 성도님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님이 표적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그러나 반면에 아무리 큰 기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아주 강퍅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2:37 말씀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특히 예수님 당시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처하는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아무리 큰 기적을 보여줘도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믿지 않습니다. 자꾸 더 큰 기적만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12:39-40) 즉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한 표적을 보여 줄 텐데, 이것 보고 믿든지 말든지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남자만 5천명을 먹이고 12바구니가 남는 오병이어 같은 큰 표적을 보여줘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꾸 떡만 달라고 예수님을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타까워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내가 메시아인)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6-27)

구약 성경에 보면 표적에 관한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 처녀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거든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신22:20-21)

이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다름 아닌 하나님이 처녀에게 처녀의 표시를 주었다는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다름 아닌 첫날밤에 생기는 피가 그 표적이라는 겁니다. 그 피가 없으면 처녀가 아니고 음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여자는 돌로 쳐 죽여서 악을 제하라고 하는 겁니다. 물론 구약의 이야기이고 오늘날 신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 구절을 들으면 여성분들은 기분이 상당히 나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 왜 처녀에게는 그런 쓸데없는(?) 표적을 주고 총각에게는 그런 표적을 안주었나요?“ 하고 하나님께 따지고 싶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딸 가진 부모로서 그걸 하나님께 한번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그건 왜 그러셨어요?“

기왕 피에 관한 표적 이야기 나왔으니 이 이야기도 해야겠습니다. 출애굽기 12:13 말씀입니다. “내가 애급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즉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면 죽음의 천사가 그 피를 보고 보고 “아- 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집이구나. 이곳은 그냥 넘어가자.” 하고 그 집에는 죽음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피가 표적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죽음과 저주가 피해간다는 겁니다. 확실히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표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도 표적이 따르게 하시므로 우리가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도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들도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키므로 우리들을 미혹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라.”(살후2:9)

즉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도 기적을 일으키고 능력을 행함으로 자기가 진짜라고 미혹한다는 겁니다. 고로 우리는 그 기적과 능력이 과연 하나님께로 나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표적으로 제대로 쓰이는지 분별해야만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각자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야- 너를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나도 너처럼 하나님을 믿고 싶다.”라는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부탁의 말씀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즉 착한 행실이 믿는 자이 표시라는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이 “야, 너를 보니 마귀가 보인다. 너 때문에 하나님 믿을 생각 1(일)도 없다.”라고 말하면 그건 내가 사단의 도구요 사단의 표적으로 쓰이는 겁니다. 아니- 빛이 되어서 세상을 밝혀야할 우리가 도리어 어둠이 자식이 되어 그런 소리를 들으면 되겠습니까? 이럴 경우 우리는 애통한 마음으로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했습니다.”(고전1:22) 그렇습니다. 표적도 중요하고, 지혜도 중요하고,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한 도구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아무쪼록 각자가 복음의 좋은 표적이 되어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 나타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