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하구나!

날짜: 
2023/10/28
말씀: 
계3:7-13
말씀구절: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설교: 

제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쯤의 일인 것 같습니다. 당시 엄마 아빠가 아침부터 밖에 나가서 볼일을 보시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제가 그때 5-6살 정도가 된 여동생을 세수 시키고, 집안 청소와 정리를 깨끗이 해놓고, 콩나물국도 손수 끓이고, 밥상을 미리 차려놓고 엄마 아빠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집에 도착하면 “엄마 아빠! 배고프니까 진지 드세요.” 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 아빠가 매우 감동을 하면서 “아이고, 우리 아들 참 기특하구나!” 하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도 혹시 어렸을 적에 이렇게 부모님으로부터, 혹은 선생님으로부터, 혹은 어른들에게 “너 참 기특하구나!”라는 칭찬을 들어보신 기억이 있습니까?

물론 옛날의 우리 부모님들은 요즘의 젊은 부모님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요즘의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를 최고로 생각합니다. 자기 자녀들에게 칭찬을 참 많이 합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딸) 참 잘하는구나!” “여보, 우리 애가 천재인가 봐요?” 그러나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칭찬보다는 야단을 많이 쳤습니다. “너 이놈! 너희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그러면 안 돼.”

그래서 그런지 저희 어렸을 때에는 칭찬보다는 꾸중을 더 많이 들으면서 자란 것 같습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각자의 부모님에 따라서 자기 자녀들에 대한 교육 방법이 나름대로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자녀 교육법은 칭찬만 해주어도 안 되고, 책망만 해도 안 되고, 칭찬과 책망을 같이 하면서 자녀를 교육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님들이 모범을 보이면서 자녀를 교육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칭찬도 하시며, 책망도 하시고, 권면도 해주셨습니다. 그 일곱 교회 중에 오늘의 본문에 ‘필라델피아’ 교회가 나옵니다. ‘필라델피아’란 그리스어로 ‘형제사랑’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필라델피아 교회의 성도님들에게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8) 한 마디로 참 기특하다는 겁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예배에 열심히 나오고, 봉사도 하고,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잘하고 있다는 겁니다.

더구나 큰 환난이 닥쳐와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하는데, 이런 와중에도 꿋꿋이 인내하며,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애를 쓴다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니까 한 마디로 참으로 기특한 성도라는 겁니다. 여러분, ‘기특하다’라는 말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칭찬하며 쓰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대견스럽다. 자랑스럽다.’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I am very proud of you."입니다. 저도 목사로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 저 성도님, 참 기특하구나! 주여, 저 성도님에게 큰 복을 주옵소서.”

얼마 전의 일입니다. 교회 식당에 싱크대 수도꼭지가 고장이 났습니다. 부교역자분이 그걸 고쳐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전문 실력이 모자라서 고치긴 고쳤는데 좀 불안합니다. 그걸 보면서 한 집사님이 “이거 부속을 사와서 다시 고쳐야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한번 해보세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 다른 분에게서 문자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부엌에 싱크대 고장 난 것, 아무개 집사님이 남편 데리고 와서 고쳐놓았습니다.” “아- 그래요? 그 분 오늘도 일하시느라고 바쁘실 텐데... 일부러 교회 와서 고치고 갔네요. 아- 참 기특하네요. 할렐루야!” 그리고 난 후 제가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 기특한 성도님을 축복해주옵소서.”

여러분, 제가 좀 솔직한 고백을 하겠습니다. 요즘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시면서 성도님들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느냐 하면, 목사님들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일이 있습니다. 한국의 목사님들 중에 ‘동양의 성자’라고 하는 한경직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한국의 영락교회를 창립하신 분입니다. 생전에 겸손하시고 청빈한 삶으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로 알려진 분입니다. 세계의 150개의 종교 단체가 3년에 한 번씩 주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템플턴상도 받으신 분입니다. 스탠튼 R 윌슨 선교사님은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습니다. “한국에 성자가 있다면 그건 반드시 한경직 목사님일 것이다.”

이런 훌륭하신 한경직 목사님이 70세에 은퇴를 하시고 난 후 남한산성 자락에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 한경직 목사님이 치매에 걸리셔서 가끔 심한 욕을 하셨는데, 특히 자기 교회의 장로님들에게 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물론 연세가 들어 뇌가 고장을 일으켜서 나온 말이지 진심은 아닙니다.

그러나 옆에서 한 목사님을 보살피신 권사님이 그 말을 들으시며 “아- 우리 목사님이 목회하시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으면 저러실까?” 하고 이해를 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훌륭하시고 성자이신 한경직 목사님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니 하물며 평범한 목사인 저의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저도 이제까지 목회를 하면서 그런 분들 때문에 솔직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뿐만 아니라 아마 모든 목회자분들이 다 그럴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목사님들도 교회 그만 다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목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말에 좀 놀라시는 분들이 있지는 않나 모르겠습니다. “아- 목사님들도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그 목사님들이 이상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옛날에 그 능력이 많은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면서 하도 원망 불평을 많이 하니까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고 힘이 들어서 “하나님,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하고 하나님께 매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실망한 목사님에게 다시 힘을 주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다름 아닌 기특한 성도가 나타나는 겁니다. “어- 저 분은 별로 기대도 안 했는데...” 그런데 그 분의 기특한 헌신이 나를 찡- 하게 감동을 시킵니다. 그래서 다시 힘이 생겨납니다. “그래, 저렇게 기특한 성도가 있는데... 저 사람을 봐서라도 내가 힘을 내야지. 야- 김원효! 다시 힘을 내자. 파이팅!”

가정생활을 하면서 부부의 경우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한 지붕 밑에서 살다 보니 남편과 아내가 어느덧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사랑도 식어지고,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아- 저 인간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당장 끝장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린 자녀가 품에 안기면서 “엄마 아빠 싸우지 마!” 하면 그 자녀 때문에라도 저 원수 같은 인간하고 다시 화해하며 용기를 내서 다시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시 낙심되고 힘이 들 때가 있으면 기특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이 당장 생각이 나지 않고 없다면 좀 더 과거로 돌아가 여러분의 인생 중에 만났던 기특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런 사람마저 없다면 아- 있잖아요. 우리 크리스천들이 늘 바라보는 그 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제가 지금 캘거리에서 이민 목회를 한지 26년째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바라보면서 특히 청년 시절에 이곳 외국 땅에 홀로 와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그 바쁜 와중에 하나님을 열심을 믿는 청년들을 보면 참 기특한 생각이 듭니다. “아- 재들 피곤할 텐데, 돈도 모자랄 텐데, 그 없는 돈에서 또 십일조까지 하네. 아이고, 주여- 저들을 축복하소서!”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사람들의 헌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했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2 달라(dollar)입니다. 그걸 예수님이 보시고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12:43-44)

저의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철야예배에 나와서 찬양을 합니다. 아- 뭐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거 참 기특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특별히 안수 기도도 해줍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내가 돈 좀 있으면 100불씩이라도 주고 싶은데...“

그런데 그럴 형편이 못되니 어떡합니까? 교회에서 빵이라도 많이 가져가서 드십시오. 왜요? 빵 먹으라고 하니까 좀 지긋지긋 합니까? 그럼 어쩌지요? 하여간 오늘 본문에 보면 필라델피아 교회의 기특한 성도님들로 인해 예수님이 찡- 하게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축복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3:8) 여러분, 문이 닫힌다는 것은 인생이 안 풀린다는 것입니다. 이래저래 불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이 열린다는 것은 인생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특한 성도님들이여, 그 기특한 모습을 계속 유지하십시오. 결국 여러분에게 문이 열리고 좋은 시절이 오게 될 겁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렇게 축복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3:10) 즉 온 세상에 임하는 큰 환난으로부터 너를 지키어 주겠다는 겁니다. 그 환난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말세는 환난의 시기입니다. 더구나 지금 우리 앞에는 전염병과 전쟁과 기근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필라델피아 같은 기특한 성도님들을 지켜주시고 감당치 못할 시험은 피하게 해주시겠다는 겁니다.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요즘의 세계정세를 보면, 특히 이스라엘과 중동의 정세를 보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시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기특한 성도님들에게 면류관을 씌워주시겠다는 겁니다. 고로 그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계속 필라델피아 즉 형제를 사랑하며 기특하고 순전한 크리스천이 되라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기특한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락하지 말고 끝까지 기특한 모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문도 열리고, 환난도 면하고, 찬란한 면류관도 받고,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도 되고,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도 상속받기를 축원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12: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