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날짜: 
2016/08/07
말씀: 
마13:18-23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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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혹은 하나님을 믿을 때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나는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고, 보다 발전하는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보다 많이 열매를 맺고, 보다 많이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1.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
생각해 보세요. 길가에 씨가 떨어졌으니 새들이 날아가다가 ‘이게 웬 떡(씨)이냐?‘ 하고 냉큼 집어먹어 버렸으니 열매는 당연히 맺지 못하고 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이 사람은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으세요.” 하고 전도하면 이런 사람은 “너나 믿어라. 나는 내 주먹을 믿는다. 나는 나를 믿는다.’ 하고 강퍅하게 구는 사람입니다. 아니 망치로 한 대 때리면 금방 부서져 버리고 마는 그 약한 주먹을 믿는다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백 년도 제대로 못사는 자신을 믿으니 참으로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 하면 “아이고, 예수쟁이 쩨쩨하게 십 원도 아니고 구원이 뭐냐? 나는 내 주머니에 십만 원짜리 수표가 네댓 개 있으니 그까짓 구원 필요 없소. 당신이나 구원 많이 가지시오.“ 하고 복음을 멸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믿고 축복 받으세요.“ 하면 ”나는 집에 한복도 양복도 많이 있으니 축복은 필요 없소.“ 하고 복음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한 사람이 바로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청년 시절 순복음 전도지를 갖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집 주위에 있는 한 옷가게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곳 옷가게 주인이 한 3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인데 제가 들어오자 “어머, 어서 오세요.” 하고 친절히 맞아줍니다.
제가 “예, 안녕하세요. 예수님 믿고 축복 받으세요.” 하고 순복음 전도지를 건네자 저를 사납게 쳐다보더니 순복음 전도지를 낚아채서 꼬깃꼬깃 꾸기더니 휴지통에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 가게에 들어오지 마세요.” 하고 쏘아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안해서 “예, 안녕히 계세요.” 하고 그 가게를 도망치듯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저는 이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그 여자 분도 저를 보고 굉장히 당황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시 만난 장소는 바로 저희 집에서 여성 구역 예배를 드리는데 그곳에서 저희 어머님을 비롯해 여러 여성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색하게 그러나 기쁜 모습으로 그 여자 분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야 하나님이 저런 사람도 금방 변화를 시키시는구나!”
여러분, 이렇게 강퍅한 사람이 저와 여러분의 가족 식구가 될 수가 있고, 친구나 이웃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계속해서 기도하고 전도하면 결국 하나님이 이 옷가게 여성분을 변화시킨 것같이 때가되면 그들도 변화를 시키시는 줄 믿습니다. 고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보면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 그때서부터 시작해서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고 계속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옳아요. 맞아요. 지당하십니다. 그렇고말고요.” 하고, 때로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면서 “글쎄요, 글쎄요.” 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아니오. 아니오.“하다가 설교가 끝나면 “아멘, 잘 잤다.” 하고 일어나기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년간 계속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수년을 교회에 다녀도 성경을 보면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요. 전혀 성경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저희 가정이 이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심코 신앙 이야기를 하다가 저희 누님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 누님도 빨리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야 되는데!” 그러자 저희 누님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응, 이사 올 때 성냥 다섯 통 받았어!” 제가 “성냥이 아니고 성부 성자 성령 할 때 성령이라.”고 하니까 저희 누님이 대답합니다. “아무거나 잘 켜지면 되지 뭐!”
여러분, 말세의 시대는 예수님이 예언한 것처럼 노아와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가 옵니다. 즉 그 당시에 노아가 아무리 이 땅에 심판이 온다고, 홍수가 내린다고 외쳐도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무관심하고 들어먹지를 않은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무관심하고 마음이 강퍅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
2.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흙이 얇은 돌밭에 씨가 떨어졌으니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으면 말라비틀어지고 맙니다. 즉 처음에는 반짝 하고 하나님 잘 믿는 것 같지만, 십일조도 몇 번 내어보고, 전도도 하는 것 같지만 환난이나 시험이 오면 “에이, 하나님이 없는 모양이다. 하나님이 있으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어?” 하고 금방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신앙이 좋은가 나쁘냐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처음 보아서는 잘 모릅니다. 더구나 환경이 좋을 때에는 구별하기가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나 환경이 나빠지고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 사람의 신앙의 참모습이 나타납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그만 믿음도 식어지고, 사랑도 식어지고, 소망도 충성도 식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게 되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믿기 전보다 더욱 나쁜 모습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문제가 다가와도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고, 이것이 기회가 되어 더욱 신앙이 자라나고 발전하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3.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
가시떨기에 씨가 떨어졌으니 그만 가시나무가 영양분을 다 빨아먹어 결실치 못하는 경우입니다. 즉 세상의 염려, 재리의 유혹, 기타 여러 가지 욕심, 세상 열락과 세상 재미 때문에 하나님을 못 믿거나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며 믿으려는 사람입니다. 즉 양다리 걸치는 신앙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주일날 택시를 타고 교회에 가면서 운전기사 분을 전도하려고 말을 붙인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예수님 믿고 축복 받으세요.” 그러자 그 분이 백미러로 뒤를 흘끔 돌아보더니 “제가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요? 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 말씀해 보시지요?“ 하며 저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답변을 잘하도록 지혜를 주세요.“
그러자 그 택시 기사 분이 “선생님은 돈이 더 좋습니까? 하나님이 더 좋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 믿는 사람이 돈보다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제가 “예, 저는 하나님이 더 좋습니다.” 말하면 그 기사 분이 틀림없이 “선생님은 돈 없이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되받아 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아니오. 돈 없이는 살수가 없지요.” 하고 대답해야 되고, 그러면 그 택시 기사 분은 틀림없이 “아이고 돈이 뭐기에! 저도 교회는 다니고 싶지만 돈을 벌어야 되기 때문에 교회는 못나갑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고, 그러면 이 전도는 택시 기사 분의 판정승이고, 저는 판정패를 당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님 믿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돈이 더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참으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순간 번득 지혜가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고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혹시 아드님이 있으신가요?” 그러자 그 기사 분이 대답합니다. “예, 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혹시 그 아드님한테 이런 질문을 하면 아드님이 어떤 대답을 할까요? ‘아들아, 너는 돈과 아버지 중에 누가 더 중요하냐?’ 그때 아드님이 ‘나는 아빠보다 돈이 더 좋아요.’ 하면 선생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그 분이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어서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돈이 중요하지만 아빠보다도 더 중요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선생님이 아드님을 사랑하셔서 돈을 벌어 아드님 먹이고 입히고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도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돈도 주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돈보다는 훨씬 좋으신 분이지요.“ 그러자 그 기사 분이 백미러로 저를 쳐다보면서 속으로 “아이고 저거 진짜 예수쟁이구나!” 하고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민 와서 처음에는 교회에 나오다가 그 만 직장 잡고 사업하다 보면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가족하고 시간을 보내야 된다고, 교회를 등지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들은 이곳 외국 땅에 이민 와서도 최우선 순위를 하나님을 섬기는데 두시기를 축원합니다. 돈보다도 하나님, 세상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두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금도 은도 모두 쥐고 계신 하나님께 복을 받고, 하나님께 좋은 것을 풍족히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의 일을 위해 더욱 많이 나누어주고, 더욱 많이 베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4. 좋은 땅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
이는 곧 말씀을 잘 듣고 잘 받아 30배 60배 100배 결실하는 좋은 신자를 뜻합니다. 물론 말세에는 이렇게 좋은 신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신자를 보면 목사는 참으로 마음이 흐뭇하고 하나님께 감사가 나옵니다. 저희 교회에도 이렇게 착하고 순종 잘하고 열심히 충성하는 좋은 성도를 보내 주셨으니 저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는 하루아침에 안 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나서, 한참을 기다리고 길이 참아서 열매를 얻듯이 때로는 우리에게 지루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히기까지 늘 보살피고 노심초사 애를 써야 하는 돌봄도 필요합니다. 이때 저는 조금 옛날 사람이기에 시인 서정주 씨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네 종류의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밭에 떨어져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원하기는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이렇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처럼 착하고 선한 마음 바탕 위에서, 그리고 인내로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