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을 좋게

날짜: 
2015/06/28
말씀: 
창1:1-5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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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때때로 굉장히 나쁜 사람을 만나 근심하고, 탄식하며, 분노가 끓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반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늘 뿌듯한 행복 속에 싱글벙글 기뻐하며 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좋은 친구, 좋은 이웃, 좋은 선생, 좋은 부모,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목사, 좋은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디 인생이 내 뜻대로 다 되나요? 때로는 나쁜 사람, 나쁜 환경이 다가와 나를 파괴하며 고통과 절망가운데 빠트리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나쁜 사람, 나쁜 환경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생 중의 상당 부분을 실패와 불행 속에서 몸부림을 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사람, 나쁜 환경이 다가올지라도 나쁜 것을 좋게 바꿀 수가 있다면 끝없는 전진과 소망, 그리고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이렇게 물으실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목사님! 어떻게 나쁜 것을 좋게 바꿀 수 있습니까?" 물론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시느니라."(마19:26)
여러분, 하나님은 아무리 나쁜 것도 좋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실 때의 상황을 보십시오. 본문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즉 최고로 어둡고, 최고로 캄캄하고, 최고로 부정적이고 나쁜 상태에서 천지창조라는 걸작이 탄생된 것입니다. 그리고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하는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찬란한 다이아몬드나 금은보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줌의 흙, 즉 가치 없는 흙(먼지)에서 사람이 탄생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은 종종 다릅니다. 인간은 가장 나쁜 상태가 되면 낙심하고 이제 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나쁜 상태가 되면 그것을 오히려 역으로 바꾸어서 가장 좋은 모양을 만들므로 친히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나타내십니다. 더구나 이 외국 땅에서 나쁜 환경이 다가오고, 일이 꼬여서 나쁜 모습으로 나를 덮칠 때, 그리고 나쁜 사람 때문에 나의 앞길에 큰 장애가 생길 때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나쁜 것을 좋게 변화시키시므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한번은 저희 아버님이 사업을 하시다가 아주 유명한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거짓증인을 내세우므로 거꾸로 고소를 당하여 옥살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던 사업은 일순간에 정지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쫄딱 망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출소 후에 아버님은 너무나 분통이 터지고 낙심이 되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금보다도 귀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평소에 바쁘셔서 안 읽으시던 성경을 감옥에서 3번이나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최악의 상황을 오히려 가장 좋은 모양으로 바꾸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손실도 나중에 더 큰 축복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를 아십니까? 혼인잔치를 하다가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초청한 손님들은 계속 밀려오고 있습니다. 상황이 아주 이상하게 꼬였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날이 가장 난감한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때 예수님은 맹물을 극상품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를 맛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칭찬합니다. 수치가 도리어 더욱 큰 영광이 되었습니다. 즉 문제가 있어도 그곳에 예수님이 있으면 그 문제는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언제 예수님을 만났나요?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피곤에 지쳐 있을 때였습니다. 절대 피곤, 절대 절망의 순간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리니 일생일대의 가장 많은 물고기를 잡는 체험을 했습니다. 고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나쁜 환경이 다가와도 좌절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가장 나쁜 것을 가장 좋게 바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혹 외국 땅에서 나쁜 환경으로 인하여 좌절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 나쁜 것을 좋게 바꾸실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기적이 일어나는 상황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어떤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다름 아닌 최악의 상활 속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세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이 일어난 상황을 보십시오.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빈들입니다. 즉 이곳 어디에도 수많은 군중을 먹일 빵을 사거나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많은 빵을 파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즉 이래보고 저리보아도 최악의 상황입니다. 모두가 절망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즉 기적은 오히려 나쁜 환경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쁜 것을 좋게 바꾸실 능력의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병을 고쳐준 사람들의 상태를 보십시오. 그들은 소경이었습니다. 귀머거리였고요. 중풍 병자였습니다. 혈루병자도 있었고요. 간질병자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까지도 있었습니다. 즉 가장 나쁜 상태, 가장 고치기 힘든 질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만약 지금의 상태가 나쁘다고 좌절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 속에 빠지고 부정적이 된다면 능력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신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하고는 같이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빛이 있으라."고 선포하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막9:23)고 말하며 앞으로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100세에 아들을 낳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성경은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7-22)
즉 100세에 자녀를 낳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증거하기를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나쁜 것을 좋게, 슬픈 것을 기쁘게, 절망과 탄식을 웃음과 기쁨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약할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여러분, 왜 이런 믿음의 고백이 바울의 입에서 나올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할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므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고로 인간 바울은 약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환경을 변화를 시키심으로 오히려 그가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정신이 있었기에 그는 온 유럽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잃으면 안됩니다. 낙심은 금물입니다. 만약 용기를 잃고 좌절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성경 잠24:16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나느니라."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힘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장난감 오뚝이가 넘어져도 계속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뚝이의 가장 밑에 중심을 잡아주는 무거운 물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오셔서 중심을 잡아주시면 우리는 계속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칠전팔기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좌절을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아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는 자가 진정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4-5)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혹시 상황이 최악이지 않습니까? 만약 이때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은 스스로 낙심하며 무너지고 맙니다. 더구나 이곳 외국 땅에서 이러한 나쁜 환경이 나를 덮칠 때, 그리고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을 때 더욱 비참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나쁜 것을 좋게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절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 나쁜 사람, 못된 사람 때문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팔자가 사납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나쁜 사람도 좋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하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나쁜 환경, 나쁜 사람 바라보고 시험 들지 말고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어두움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시며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혹 이제까지 내 스스로 나쁜 계획, 나쁜 고집, 나쁜 모양을 가지고 남을 파괴하는 인생을 살았다면 오늘 나는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나쁜 모습을 변화시켜 주십시오. 좋은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스스로 이렇게 좋은 모습을 사모하며 나아가는 당신에게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으로 반드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당하고 겪는 모든 나쁜 것을 반드시 좋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