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날짜: 
2017/06/11
말씀: 
눅7:36-50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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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 세계 크리스천들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지고 불러지는 찬송가가 있다면 단연 존 뉴우튼(John Newton)이 전통 미국 멜로디에 따라 작사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라는 제목의 찬송가일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오늘날 혹은 이전에 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굉장히 은혜를 받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신 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찬송가가 은혜스럽지만 특히 이 찬송가의 가사를 음미하면 참으로 내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 번 회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찬송가의 작사자인 존 뉴우튼은 한 때 악명을 떨치는 노예 상인이었습니다. 그의 잔인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노예가 상처를 입고 병신이 되고 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배가 거의 파선을 당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를 육체적으로 구원해 주시고 또 영적으로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무나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노래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이 찬송가에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고백을 하므로 더욱 깊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스스로 “나는 그렇게 큰 죄인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가사에 그리 큰 감명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목사님이나 혹은 어떤 성도님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하고 눈물을 흘리며 찬송하는 모습을 보면 “야, 저 목사(성도)는 옛날에 되게 죄를 많이 지었고 못된 사람인 모양이다!” 하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이상하게 쳐다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대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눈물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또 다시 내 자신도 주님께 대한 은혜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아주 못된 죄를 지어 사형언도를 받고 죽음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내 대신 죽임을 당하고 나를 자유케 했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나를 살린 것이 단순히 모든 사람들이 맞이하는 그런 육체적인 죽음에서 살린 것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인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나를 살려내었다면 그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격스럽겠습니까?
영원한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신음하며 살아야 하는 나를 영원한 행복과 기쁨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나를 살리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나는 그토록 조롱하고 멸시했지만 예수님은 원수 같은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으니 이 얼마나 귀중하고 고마운 은혜입니까?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크나 큰 비극일 것입니다. 물론 한국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놔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큰 은혜를 베풀어도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려고 하는 짐승과도 같은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을 부르면 주님께 향한 감사와 함께 “주님, 나 같이 못난 사람, 나 같이 못된 사람을 살려주셨으니 이 몸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주님, 이렇게 못난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불러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평생토록 헌신하는 귀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날 이렇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죽도록 헌신하는 일꾼을 바라보시면서 굉장히 마음이 흐뭇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흐뭇해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또다시 “주여, 저 같은 못난이를 그렇게 예쁘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때로는 눈물 콧물과 함께 통곡을 하면서 “주님, 왜 날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것입니까? 나 같은 못난 사람, 나 같이 못된 사람을 왜 이다지도 끈질기게 사랑해주시는 겁니까? 주님, 나는 주님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주님, 나 같은 더러운 사람, 쓰레기보다 못한 사람, 냄새나지 않습니까? 주님, 나를 떠나세요. 나는 더러운 죄인입니다.“라는 고백도 하게 됩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허탈해하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다가와 복음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라고 고백을 합니다. 즉 기적의 축복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바르게 깨달은 것입니다.
내 실력으로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므로 불쌍한 인생, 슬픈 인생, 가련하고 비참한 인생, 저주의 인생을 살아야 되는데 순식간에 축복의 인생, 행복의 인생, 기쁨의 인생으로 바꾸어 준 예수님의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주여, 나는 이렇게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을 만한 착한 사람이 못됩니다. 나는 냄새나는 더러운 죄인이에요. 주여, 나 같은 죄인을 가까이 하시다니요. 너무나 황송합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바르게 감사하는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며 그를 제자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기 같이 못난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주님의 은혜에 또다시 감사하며 주님을 좇아가는 제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에게도 그 큰 구원을 베풀어 주셨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주님, 나 같은 의인, 나 같이 잘난 사람, 나 같이 배운 사람, 나 같이 똑똑한 사람을 구원해 주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주님,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은 당신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당신도 아시지요. 나는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 복을 받고 칭찬을 들을 만한 의인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발견하고 제자로 부른 것을 크게 기뻐해야 될 것입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글쎄요 이런 사람은 주님이 제자로 쓰시기에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즉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며 자기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감격해하는 사람을 주님은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주님을 위해 아무리 큰일을 했어도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나 같은 죄인, 나 같이 못난 사람을 사용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고백을 한다면 당신은 참다운 제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올 수가 있다면 당신은 하늘나라의 귀중한 일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여, 내가 이만큼 봉사를 하고, 내가 이만큼 헌금을 냈는데 나를 권사, 안수집사, 장로로 세워주지 않으니 주님, 되게 섭섭합니다. 앞으로 나를 한번만 더 섭섭하게 하면 그때는 주님도 각오를 하세요. 나 성질 더러운 것 주님도 잘 아시지요. 그때는 진짜 관계 끊어지는 겁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그대의 이름은 아직도 ‘철부지’입니다.
혹 10년 이상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이런 태도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면 당신의 앞길은 너무나도 아슬아슬하고 캄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못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이용해 마귀는 하늘나라를 파괴하는 강력한 무기로 삼을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른 것은 당신이 남들보다 의인이라서 부른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죄인이기에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남들보다 더 많이 축복해 주신 것은 당신이 남들보다 똑똑하고 잘났기보다는 누구보다도 못났고 약하기 때문에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고로 당신이 아무리 축복을 받아도 “주여, 나 같은 죄인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보다 겸손해져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값비싼 향유를 부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유독 이 여자가 이렇게 눈물로 헌신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와 같은 죄인을 예수님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것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옆에서 따라다녔던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기는 알았지만 이 여자만큼 깊이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즉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 것을 깨닫는 만큼 바르고 겸손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위대한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깊이 깨닫고 이와 같이 고백을 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겸손하게 그리고 끝까지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나중에는 자기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못난 사람, 못난 죄인을 또다시 예수님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그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하며 주님을 위해 순교의 길을 갈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잘난 사람, 배운 사람, 가진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고마워’ 하며 늘 겸손하게 헌신하는 사람을 사용하시고 그 사람과 더불어 행복을 나누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무쪼록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놀라워’ 라는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평생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 : 주님,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고 하셨는데 우리는 오늘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