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금지

날짜: 
2005/06/19
설교: 

시42:5-6 낙심금지
한국이나 미국이나 캐나다나 어느 나라든지 뒷골목에 가면 ‘낙서금지’라는 경고문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낙서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는 곳일수록 더욱 낙서가 많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낙서금지’라는 글자조차도 낙서로 쓰여 있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낙서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은 곳일수록 더욱 낙서가 많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아주 종종 ‘낙심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희망의 하나님을 믿으면서 낙심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는 모독죄요 불경죄가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경을 알고 있고, 꽤 신앙이 있는 분들도 낙심을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외치는 분들이 뒤돌아서면 자신도 한숨을 짓고 낙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왜 낙심합니까? 육체적 문제입니까? 물질적 문제입니까? 혹은 정신적 문제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문제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이런 저런 복합적인 문제 때문입니까?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낙심은 탄식과 짜증을 일으키게 되고, 더 나아가 의욕상실을 함께 자신을 파괴하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와 교회를 파괴합니다. 고로 지금 당신이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다름 아닌 낙심입니다. 사단은 인간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낙심을 일으켜 가정과 교회를 파괴시키려고 하고, 하늘나라를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하루는 사단의 나라에서 ‘인간 낚시 대회’를 열었습니다. 사단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앞 다투어 인간 세상으로 낚시질을 떠났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낚시를 떠났던 귀신들이 낚시 바구니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귀신의 바구니에서는 꺼내어도 꺼내어도 인간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우두머리인 사단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슨 미끼를 썼기에 이렇게 많은 인간들을 낚아 왔느냐?" 그러자 대상 수상자인 그 귀신이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낙심’이라는 미끼를 썼습니다.“
여러분, 혹시 이 외국 땅에서 낙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낙심’이라는 사단의 미끼에 걸린 것입니다. 특히 외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될 때 이 ‘낙심’이라는 미끼는 사단에게 있어서 아주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하루는 사단이 가라지 세일을 했습니다. 거기에 나온 품목을 보니 평소 우리가 자주 보던 품목들이 있습니다. 걱정, 두려움, 욕망, 미움, 시기... 등 마귀가 자주 쓰던 품목들을 헐값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이것만은 절대 팔지 않음’이란 푯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고 가만히 살펴보니 그 물건은 다름 아닌 ‘낙심’이었습니다. 즉 사단도 이 ‘낙심’이란 물건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는 는 사람일지라도 일단 낙심만 들어오면 삶의 힘이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낙심하면 마귀의 사업은 번창합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마귀의 사업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사단은 옆에서 씩- 웃습니다. 더구나 가정의 지도자인 아버지가 낙심하면 가정은 무너지기 쉽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낙심하면 백성은 꿈을 잃고 방황하기 쉽습니다. 또한 교회의 지도자가 낙심하면 교회는 침체되고 하늘나라를 건설해가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고로 성경은 강력히 경고합니다. ‘낙심금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도대체 그들이 왜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구약 성경을 읽으신 분들은 이런 사건을 아시지 않습니까? 모세가 열두 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40일간 그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이렇게 보고를 합니다. “우리가 탐지한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 또 거기서 신장이 장대한 거인 족속들을 보았는데,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고로 우리는 그 땅을 취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낙심은 탄식과 울음으로 변하고, 탄식과 울음은 원망으로 변하고, 원망은 급기야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을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는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누가 우리를 이끌어 여기까지 오게 한거야? 차라리 애급으로 돌아가자” 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열두 정탐꾼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그것이 아니다.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그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말했지만 일단 낙심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낙심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가나안 땅으로 전진할 용기를 모두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저앉은 세월이 자그마치 40년이나 되었습니다. 즉 낙심에 사로잡힌 세대들이 다 죽고 만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다름 아닌 ‘낙심금지’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시42:5-6)
여러분, 스스로 한번 이렇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어찌하여 낙망하고 있는가? 나는 어찌하여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낙심시키며 무엇이 당신을 불안케 합니까? 이 외국 땅에서 가족들과 살만큼 돈이 없어서 낙심이 됩니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낙심이 됩니까? 혹은 환경이나 사람을 보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당신을 낙심시키고 있습니까?
이럴 때 오늘의 성경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의 도우심을 생각하고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하나가 바로 낙심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니 낙심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어떻고, 집사가 어떻고, 성도가 어떻고....” 그래서 상처 받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확실한 신앙의 대상을 정해야 합니다. 즉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어야지, 사람을 바라보고 믿으면 낙심하게 되고 맙니다. 교회는 천사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의인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병원에 환자들이 가는 것처럼 교회에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마9:13).
여러분, 교회는 악마 같은 인생들이 천사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이는 곳입니다. 이미 거룩하게 성화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 성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인 중에는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도 있고, 구습을 버리지 못하여 술 마시는 사람도 있고, 각종 세상 정욕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천국의 환상을 가지고 나왔는데, 천국 같지 않은 지상 교회의 모습을 보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겉으로 보아서는 세상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이 보여도,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처럼, 죄악과 허물에 찬 인간들이 회개하고 점차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고로 사람의 나쁜 점만 보고 낙심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좋은 점을 보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환경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1642년 영국 동부지역 울스소프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겨우 말을 배우려고 할 때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사과나무 아래 혼자 앉아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 후 아이는 천신만고 끝에 열망하던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마쳤습니다. 그의 꿈은 박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가려고 할 때 흑사병이 창궐하여 그 지역의 모든 대학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그는 낙심한 채 고향에 내려가 사과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 자리는 꿈을 잃어버린 자리였습니다. 그때 사과 한 개가 ‘툭’ 떨어졌습니다. 그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그는 그 사과가 마치 자기 처지와도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욱 긴 한숨이 나왔고 더욱 낙심에 사로잡혀 속으로 말했습니다. “사과야, 너는 왜 떨어져야만 하느냐? 너는 도대체 무슨 낙심이 있기에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야 하느냐?”
여러분, 이 의문이 바로 인류 과학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아이작 뉴턴의 위대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기회가 된 것을 아시지요? ‘만유인력’이란 세기의 법칙은 바로 뉴턴이 모든 꿈을 잃어버렸다고 실망하고 탄식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즉 낙심의 현장이 도리어 진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고로 어려운 환경만 바라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당신도 지금 진리를 발견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애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고로 이곳 외국 땅의 삶이 비록 어려워도 당신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낙심에 사로잡혀 스스로 포기하면 안됩니다. 고로 성경은 강력히 경고합니다. ‘낙심금지’
특히 기도하는 여러분들이여, 기도하다가 응답이 너무 늦게 온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선을 행하는 여러분들이여,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어두운 인생의 밤을 통과하는 여러분들이여, 캄캄함 속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밝은 아침이 오게 마련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당신의 심은 것에 좋은 열매를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3:13)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