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단의 특징 중 하나는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것보다 교회에 잘 다니고 있는 기존의 신자들을 전도하려고 합니다. 아니 이건 ‘전도’라는 표현보다는 ‘포섭’이나 ‘미혹’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립니다. 특히 한국에 보면 신천지 이단이 계속 기성 교회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성 교회들이 문 앞에 ‘신천지 추수꾼 절대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 앞에 아무리 경고문을 붙여놓아도 그들 신천지 추수꾼들이 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교회에 침투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교회에 들어와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여 그 교회를 통째로 뺏으려고 하든지, 그러지 못하면 신자들을 포섭하여 빼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열한 행동에 대해 제가 아는 어느 연세가 많이 드신 남성 집사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집사님의 아내분도 몇 년 전부터 이런 신천지 이단에 미혹이 되어 완전 신천지 골수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부부관계도 거의 깨지다시피 한 상태고 가정형편도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남편 집사님은 신천지 추수꾼들을 보면 매우 화가 나서 그들에게 말합니다. “야- 이 도둑놈들아! 왜 남의 밭에 와서 추수를 하려고 하니? 니네 밭에 가서 니네 것이나 추수해라.” 그렇습니다. 농부가 내 땅에다 내가 수고하여 씨를 뿌리고 가꾼 것을 추수하면 그건 합법입니다. 그러나 남의 땅에 남이 심어놓고 가꾼 것을 추수하려고 하면 그건 불법입니다. 도둑놈입니다. 사기꾼입니다. 강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도둑놈 사기꾼 강도 심보를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성도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믿어도 이런 나쁜 심보를 계속 가지고 있으면 이건 마치 맛을 잃은 소금처럼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밖에 버리어 세상 사람들에게조차 욕을 얻어먹고 밟힐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직하신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들을 보십시오. 그들도 정직합니다. 땅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땅에 팥을 심으면 팥이 나고, 땅에 아무 것도 심지 않으면 땅이 아무 것도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안 심고 나서, 혹은 제대로 심지도 않고 나서 많은 것을 거두려고 하는 이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스스로를 속이는 양심불량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양심이 불량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 한국의 TV 프로그램 중에 ‘미수다(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미녀들이 나와서 한국말로 수다를 떠는 겁니다. 물론 그들만의 독특한 한국어 억양으로 수다를 떠는데 이게 당시에 꽤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 아주 유명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이 한 동안 떠들썩했습니다. 그 때의 주제는 “미래의 남편감을 고를 때 당신은 무엇을 보느냐?”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미녀들은 배우자의 학벌, 재산, 직업, 인물 등 자신보다 조건이 잘 갖춰진 남자를 신랑감의 필수조건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한 독일 미녀가 그런 한국 여자를 향해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런 조건은 니가 스스로 만들면 되지, 그걸 왜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찾고 그러니?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잖아?”
그러자 한국 미녀가 잠시 어버버- 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물론 요즘은 여자들도 자기 직업도 많이 갖고 주체적인 삶을 많이 살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도 일단 조건은 저보다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그 독일 미녀가 한국 미녀에게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으세요.”
여러분, 이거 아주 유명한 짤 인데 한번 보실까요? 조금 전에 제가 말한 것하고 원본하고는 조금은 대사가 다른데 이게 원본을 캡처한 겁니다. 먼저 독일 미녀가 한국 미녀에게 말합니다. “아니 당신은 제 아무리 멋진 남자라도 원룸에 라면 먹고 사는 남자하고는 결혼을 못하겠다고 하는데, 그럴 경우 즉 남자가 원룸에 라면 먹는다면 제가 자신 있어서 제가 그 조건을 만들면 되잖아요. 제가 그 정도 돈 벌고, 좋은 아파트 들어가면 되는데, 그걸 왜 남자들에게 따져야 하나요? 내가 자신 있고 먹여 살리면 되지.”
아- 이 독일 여자의 말에 한국의 많은 남성분들이 그때 크게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너무나도 통쾌함을 느꼈고, 속이 뻥- 뚫리는 것과 같은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이 원본 짤에 보면 한국 미녀의 얼굴은 동그라미로 가리고, 독일 미녀의 얼굴은 가리지 않고 그냥 나둔 이유가 뭘까요?
다름 아닌 제 삼자인 누가 들어도 독일 미녀의 생각과 말이 한국 미녀의 생각과 말보다 더욱 옳고 더욱 떳떳 당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 미녀의 말은 독일 미녀의 말에 비해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한국 미녀의 얼굴에는 동그라미로 감춰준 겁니다.
자-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 이 구절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목회 철학과 마음의 중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한다.“는 뜻은 남이 이뤄놓은 것을 슬며시 도적질하거나 사기질하거나 끼어들어서 나의 유익을 취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아주 정상적이고 올바른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에 반대말인 “남의 터 위에 건축한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남이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 즉 남이 열심히 쌓아 놓은 노력을 슬며시 가로챈다는 겁니다. 아주 얄미운 짓입니다.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에서 ‘힘썼노니’라는 말을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명예로 삼았습니다.’ 즉 목회를 해도 남의 것을 빼앗아서 하는 그런 비겁하고 못된 방식으로 하지 않고, 떳떳하고 명예롭게 목회를 했다는 겁니다.
한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의 것으로 생색낸다.” 영어로 하면 “Show off something that belongs to someone else"(×2) 아- 이런 사람들 여러분 주위에도 좀 있지 않습니까? 그거요, 보기 안 좋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마인드입니다. 아니- 왜 남의 것 가지고 자기가 인심 쓰고 생색을 냅니까?
자기 것 가지고 하면 되잖아요? 남의 것은 안 아깝고, 자기 것은 아까워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이것도 일종의 도둑놈 심보요, 사기꾼 심보입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는 백날 기도해도 하나님이 잘 안 들어 줍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소유자는 하나님과 진실한 휄로우십(fellowship), 교제를 가질 수 없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저희 어머니인 박상례 권사님의 간증입니다. 보통 성인 교구 연합 예배를 한 달에 한 번씩 가정에서 드립니다. 이때 아무래도 집 평수가 어느 정도 커야 하고, 또 예배 후에는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떡이라도 드려야하고, 담당 목사님과 권사님들과 조장님들의 식사가 있기에 꽤 돈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달에는 선뜻 교구 연합 예배를 드리겠다고 나서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저희 어머님이 나서려고 하는데 아- 우리 집에는 당시 노처녀가 되어서 종종 히스테리 발작을 하는 누님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 발작이 센지 한번은 우리 집에서 교구 연합 예배를 드렸었는데 이층에서 선풍기도 집어 던지고, 준비한 음식도 집어 던지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구 목사님이 예배 후에 집에서 차린 음식으로 다 같이 식사를 해야 하는데, 그만 누님이 난리를 치는 통에 집에서 식사도 못하시고 황급히 도망을 가서 밖에서 식사를 드셔야만 했습니다. 아-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저희 누님이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아주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어머님이 마음으로는 교구 연합 예배를 가정에서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 교구에 집이 제법 큰 다른 권사님에게 돈을 건네주면서 “아- 이번에 그 집에서 교구 연합예배를 좀 드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권사님 댁에서 교구 연합 예배를 마친 후에 모든 분들이 그 권사님에게 말합니다. “아- 권사님! 수고하셨어요. 애 많이 쓰셨어요.” “아유, 뭘요?”
교구 사람들은 모두가 그 권사님이 자기 돈을 써서 떡을 주고, 밥을 차려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권사님이 저희 어머님에게 이런 간증을 합니다. “아- 어제 꿈에 주님이 나타나서 ‘상급은 다 박상례 권사 것이다.’라고 했어요.”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돈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실을 밝혀야 합니다. “아- 그건 제 돈으로 한 것이 아니고요. 아무개가 돈을 줘서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남의 수고한 것으로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아니했다.”(고후10:15) 그러나 사람들 중에 보면 남의 것으로 분량 밖의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들 중에도 보면 자기의 실력은 부족해서 스스로는 뭔가를 이루지는 못하고, 남의 것을 탐하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정치 목사, 삯꾼, 이리, 늑대 같은 양반들이 있습니다. 아니- 이건 양반이 아니고 쌍놈이지요? 말은 바르게 해야지요. 자신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니 하나님이 안 도와주고, 미리 심어 놓은 것도 별로 없어서 열매도 없는데, 욕심은 되게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주의자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남의 자리, 남이 수고한 열매를 탐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영적 제비족이요 꽃뱀입니다. 남의 행복을 가로채서 자기의 행복을 취하려고 하는 매우 질이 안좋은 모습입니다. 소시오패스적인 마인드입니다. 요즘 이런 사람이 꽤 많습니다.
물론 남이 잘 닦아놓은 터 위에다 내 집을 건축하면 쉽게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고생하는 시간을 줄이며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는 성공, 그렇게 얻는 명예와 부는 진짜 성공이 아니고, 진짜 명예가 아니고, 진짜 부요가 아닙니다. 그건 양심불량입니다. 도덕적 타락입니다. 사기 전과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겁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해도 양심적으로 해야 하고, 하나님을 믿어도 양심적으로 믿어야 하고, 목회를 해도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목회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떳떳이 말합니다.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23:1) 그리고 우리들에도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1:19)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성자’라고 하는 한경직 목사님의 ‘목회자 십계명‘이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보고 감동이 되어 그 열 개 중에 앞에 세 개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 잃은 양을 찾을 것이나 남의 양을 도적질 하지 말 것이요. 둘째, 새 교회 설립에 힘을 쓸 것이나 기성 교회로부터 분열케 말 것이요. 셋째, 새 예배당 건축은 좋으나 이웃 교회 처마 밑에 세우지 말 것이요.”
아- 이 분! 양심이 바른 목회자입니다. 저는 이런 분을 좋아하고, 이런 분을 존경합니다. 제가 여기 캘거리 땅에 처음 교회를 개척하러 왔을 때 어느 집사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 목사님은 여기 캘거리에 교회를 개척하실 때 순수하게 개척을 하셨으니 그게 참 마음에 듭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 말뜻을 잘 몰랐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교회를 개척하는데 ‘순수 개척’은 뭐야? 그럼 그 반대말인 ‘불순 개척’도 있나?” 아- 그렇습니다. 남의 교회 성도를 빼가지고, 남의 터 위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불순 개척‘이라고 하고요, 아무리 고생이 되더라도 무에서 시작하여 마치 맨 땅에 헤딩하듯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는 것을 ’순수 개척‘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의 말 중에 이런 표현을 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고전9:15) 즉 죽어도 그 짓은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저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남의 성도를 빼내서 불순하게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목회를 하지 말지.”
물론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출발하여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더구나 외국 땅에서 그리 많지 않는 교민들을 상대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희생이 많이 따르고 실패할 확률도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무리 고생이 되도 남의 것을 도적질해서, 남의 터 위에 불순하게 교회를 만들면 그게 어디 하나님의 집이고, 그게 어디 주님의 교회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제법 큰 교회를 만들었다고 한들 그게 뭐가 떳떳하고, 그게 뭐가 성공입니까? 사람은 속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면 죽을 때 큰 후회만 하나 더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을 때 떳떳하지 못하게 되고, 더욱 하나님께 죄송해지고 맙니다.
2001년 MBC 인기 드라마 중에 ‘상도’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당시 상인 즉 장사꾼들은 사람들에게 별로 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했습니다. 상인들은 그 시대의 천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민일지라도 상인으로 지켜야 할 도리와 윤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목이 ‘상도’입니다.
오늘날로 표현하면 ‘상도덕’ 즉 기업 윤리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당장 내 이익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다급할지라도,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양심상 거리끼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기도 : 하나님, 우리에게는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 깨끗한 양심이 있습니다. 고로 남의 터 위에 건축하려고 하는 비겁하고 비열한 짓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우리는 끝까지 선하고 바르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외국 땅에서도 그렇게 바르게 살려고 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아버지께서 계속 도와주시옵소서. 계속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계속 하나님과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교통함에서 오는 시원함과 상쾌함을 얻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