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내의 역할

날짜: 
2006/09/10
설교: 

창2:18 남편과 아내의 역할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는 남성과 여성, 수컷과 암컷의 구별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우리의 눈에는 잘 구별되지 않는 식물에도 역시 수컷과 암컷이 있고, 곤충에도 역시 수컷과 암컷의 구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최초로 사람을 지으실 때에는 남성인 아담만 먼저 있었고 아담의 짝이요 여성인 하와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오늘의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
하나님은 이렇게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를 지으시고 이들을 함께 축복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남편인 아담만 따로 축복한 것이 아니라 아내인 하와만 따로 축복한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 함께 축복을 하셨고 함께 세상을 잘 다스리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더구나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거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로 가득 채워서 이들의 삶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남편인 아담 군과 아내인 하와 양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같이 누리며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같이 감당해야할 공동운명체가 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서 축복도 같이 받고, 반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릴 때에는 저주도 같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와는 아담의 돕는 자로서의 역할을 주셨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a helper suitable for him' 즉 하와는 남편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며 세상을 잘 다스리도록 아담을 가장 가까이서 돕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하와가 돕는 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아담이 하나님의 뜻을 잘 좇아가면 하와는 하나님께 같이 축복과 칭찬과 상급을 받을 것이요, 반대로 돕는 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남편인 아담과 같이 저주와 고통도 같이 받아야 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아담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인 아담은 가정의 리더로서 아내를 잘 리드하여 같이 하나님의 뜻을 잘 좇으면 아내와 더불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과 축복을 같이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편이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아내인 하와와 더불어 같이 저주와 고통을 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좇아가면 같이 복을 받고, 혹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아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좇아가지 못하면 같이 저주를 받아야 하는 공동운명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같이 저주를 받고 같이 고통을 당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남이 짝지어준 배필이요 하나님이 만들어준 가정인데 도대체 왜 이들이 이런 고통과 저주에 빠지게 되고 말았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살펴보고 같이 교훈을 받기를 원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아, 에덴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마음대로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게 된단다.” 이 명령은 아담의 운명과 행복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명령을 받은 아담은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공동운명체인 하와에게도 이 하나님의 명령을 이야기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하나님께 계속 축복을 받고 지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고 절대로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돼. 알았지?”
그러나 사단은 간교한 뱀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하와를 찾아왔습니다. “하와야, 우리 이야기 좀 하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와가 대답합니다. “아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산 나무의 실과는 다 먹어도 되지만 한 가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만약 먹으면 우리는 죽게 된데.”
그러나 뱀은 계속하여 끈질기게 하와에게 속삭입니다. “아니야, 너희가 선악과를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아.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단다. 하나님은 너희들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말을 한거야. 에이, 하나님은 참 속이 좁은 분이시다. 그렇지?” 이 말을 들은 하와는 참으로 혼동이 됩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은 거야? 남편은 이렇게 말하고, 뱀은 저렇게 말하고... 에이, 다시 한번 아담에게 물어 보아야겠다.” 하고 하와가 아담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았으면 좋았는데 하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와는 그 선악과 앞에서 뚫어지라고 선악과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선악과를 보면 볼수록 참으로 먹음직스럽고 아름답고 탐스러웠습니다. 드디어 하와는 그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선악과를 주어서 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더 큰 축복과 행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들에게는 사망과 저주와 고통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과 함께 애 낳는 고통도 더하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보면 여성들이 애를 잉태할 때 입덧이 심하여 고통을 당하거나 애를 낳을 때 고통에 겨워서 구로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하, 그때 하와 할머니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더라면 여성들이 오늘날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을 텐데!”
그리고 아담 역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중신토록 수고하여야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만물의 주인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므로 그들에게 속해 있던 땅도 저주를 받아 더 이상 효력을 발생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므로 아담은 밭을 갈다가 이리저리 찔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간판 있는 쪽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그 가시에 찔려서 고통을 당할 때에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에이, 그때 아담 할아버지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가시에 찔리지 않을 텐데! 아이고, 아파라!”
남편인 아담과 아내인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뜻을 저버리자 그들은 같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그들의 자녀들도 같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오늘날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들도 같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의 여러 가지 수많은 고통을 보면서 우리는 종종 그때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하, 그때 우리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잘 좇아갔었더라면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따르지 않았을 텐데!”
과거에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하여 인류에게 다가온 고통을 보면서 우리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때 남편인 아담이 아내인 하와가 준 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도리어 선악과를 따먹은 아내 하와에게 ‘여보, 당신 어찌하여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었소. 같이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이렇게 남편 아담이 아내인 하와를 잘 지도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즉 인류의 비극은 아내로서의 역할,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어집니다. 아내인 하와는 남편인 아담을 도와서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남편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유도를 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남편이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려는데 아내가 남편을 돕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편을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도록 유도하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남편인 아담도 아무리 자기 아내일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먹자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여보, 그것은 아니야. 하나님의 뜻은 이래!” 하면서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담은 어찌된 영문인지 아내의 말에 순종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남편으로서 이해가 됩니다. 집안에서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면 별로 좋은 것이 없습니다. 밥을 안차려주니 혼자 냉장고에 찬밥 있나 없나 뒤져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대게 엄마 편인 자녀에게도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고로 “처량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남편이로다!”
한마디로 아내의 명령을 저버리면 남편은 재미가 없어집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아내들의 힘이 세어진 가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였어도 아내가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면 남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선악과를 먹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남편은 가정의 리더이지만, 그 리더인 남편을 움직이는 데에는 참모인 아내의 역할이 굉장히 좌우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남편인 아담마저 타락하여 선악과를 먹으면 그때에는 고통을 같이 당하게 됩니다. 죽음도 저주도 고통도 남편과 아내와 자녀가 다 같이 당해야 합니다. 고로 가정에서 돕는 자로서의 아내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또한 리더로서의 남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남편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도 아내요, 남편의 믿음을 파괴하는 것도 아내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와 열매는 모든 식구들이 다같이 참예하게 됩니다. 고로 성경 잠언서 14:1에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중세 시대 신성로마제국이란 이름으로 유럽을 호령했던 독일. 그곳에 지혜로운 아내들의 이야기 하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2차 십자군 전쟁을 지휘한 인물로 유명한 콘라트 3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등극한 직후 골치를 썩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제후 가운데 하나인 바바리아 그가 황제에 오른 것을 심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게르프 성의 바바리아를 굴복시키기 위해 즉시 군대를 이끌고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쉽게 생각했던 싸움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치열한 전투와 지리한 대치 상황이 반복해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게르프 성은 황제군에 의하여 성이 완전히 포위당해 외부와 철저히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성에 마실 물과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자 바바리아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콘라트 3세는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힌 바바리아를 쉽게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항복에 성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성 안의 모든 남자는 이제부터 우리의 포로다. 다만 여자들에게는 자유를 돌려줄 터이니 각자 자신이 들 수 있을 만큼의 짐만 들고 성을 나가도 좋다.”
황제의 명령이 전해지고 굳게 닫혔던 성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의 모습은 얼마동안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뒤 여자들이 우르르 성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콘라트 3세는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여자들 모두 유난히 더디게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콘라트 황제는 궁금함을 참지 못해 직접 말을 타고 성문 근처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습니다.
성문 밖으로 힘겹게 걸어 나오는 여자들의 등엔 모두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업혀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여자들이 커다란 남자를 업고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은 우습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농부의 아낙뿐만 아니라 제후인 바바리아 부인까지 남편 바바리아를 업고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띄자 콘라트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들의 지혜로운 사랑에 크게 감동을 받은 콘라트 3세 황제는 결국 성안의 모든 남자를 풀어 주도록 명령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남편을 구출하고, 가정을 살리는 여성도 있고, 반면 하와처럼 에덴동산이라는 행복속에서도 남편에게 선악과를 먹여 남편을 죽이고 불행을 자초하는 여인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가정에서 아내들의 힘이 세어진 경우에는 여성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물론 리더로서의 남편의 역할도 너무도 중요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남편과 아내 각자에게 주시는 역할을 잘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