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행하리라.

날짜: 
2015/01/05
말씀: 
요14:13-14
말씀구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설교: 

불신자들이 종종 우리 믿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 믿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나약하고 왜 그렇게 남을 의지하냐?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너희들처럼 2000년 전에 죽은 이스라엘 사람인 예수를 의지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양 종교 교주를 믿을 바에야 차라리 단군을 믿겠다.”

어찌 보면 이 말은 한 편은 맞고 또 한편은 틀립니다. 맞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나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내 실력, 내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나는 나를 의지하지 않고 2000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을 의지하면 나약한 사람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복음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꼼꼼히 살펴보십시오. 역사상 이보다 큰일을 하신 분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능력이 많으신 분을 의지하는데 어찌 우리가 나약한 사람들입니까? 도리어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예수님을 나약한 종교 교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은 우람한 육체를 가지거나 혹은 격투기 선수처럼 강인한 모습을 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53:2에 보면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가끔 화가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고 건장한 육체를 가지신 분으로 그리는데 이는 성경에서 묘사한 예수님의 모습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물론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찌하든지 좋게 묘사하려는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그러다가 사실까지 곡해하면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예수님의 육체의 모습은 그리 잘나지 않았습니다. 그 분에게는 고운 모양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피부는 좋지 않았습니다. 때깔도 좋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잘 상상이 안 가시는 분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를 해드릴까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살찌고 포동포동한 김정은이나 공산당 간부들을 생각하지 말고 못 먹고 못사는 저 불쌍한 이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 먹어서 삐쩍 말랐습니다. 누가 봐도 때깔이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육체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렛이란 시골 촌동네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서 “아- 내가 목마르다!” 하고 비명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연약하고 실망스런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연약한 모습을 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더욱 가련하고 불쌍해 보입니다.

더구나 한국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인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2000년 전에 죽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참으로 연약한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상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예수’라는 연약한 인성도 있지만, 한편으로 예수님에게는 ‘전지전능’이라는 신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육체의 모습을 하고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셨지만, 한편으로는 전지전능한 신성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란 단지 죽은 사람이 잠시 살아난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시는 썩지 않는 몸, 병들지 않는 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몸, 추위와 더위와 죄와 사망까지 이길 수 있는 신비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즉 저와 여러분들도 순서에 따라서 앞으로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을 입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혹시 이 부활이란 말에 그저 무덤덤한 생각이 드는 분이 있습니까? 차라리 엊그제 산 로또 복권이 6등으로 당첨되어 100불정도 타는 것보다 덜 흥분이 되지는 않습니까? 부활이고 뭐고 간에 이 땅의 먹고 사는 문제나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봅시다. 인간이 태어나서 70-80세, 많으면 100세정도 살다가 모두 죽습니다. 인생 100년이 긴 것 같지만 순식간에 날아가고 맙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라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이 확실히 있고, 부활도 확실히 있고, 영원히 사는 것도 확실히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신경 끝에 우리는 늘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사실 크리스천으로서 부활과 천국의 소망을 놓치고 살면 그때가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고로 이민생활, 유학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 교회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부활과 천국의 소망을 붙잡고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힘으로 잘 안됩니다. 내 힘으로는 빛의 자녀로 살아갈 힘도 없고, 남에게 빛을 비추는 사명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고로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달을 보십시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합니다. 태양 빛을 받아서 반사시키므로 비로소 빛을 비추게 됩니다. 우리도 빛 되신 예수님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인생 살면서 빛의 자녀로 살 수 있고, 남에게 빛을 비출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 없으면 불 꺼진 항구입니다.

여러분! 추운 겨울철 불 꺼진 항구를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스산하고 춥고 처량합니까? 예수님 없으면 누구나 인생이 불쌍하고 처량해집니다. 물론 지금 당장 잘 나가는 사람은 예수님 없어도 “인생은 즐거운 것이에요. 아- 행복한 밤이에요.” 하고 말할지 몰라도 잠시 후 인생은 순식간에 다하고 정전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도 난데없이 정전사태가 발생합니다. 문제가 발생합니다. 역경이 다가옵니다.

이때 빛이 되시는 예수님이 없으면 캄캄함 속에 끝장이 나고 맙니다. 고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로서, 우리의 구원자로서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오늘의 본문에도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몇 주 전에 제가 오늘의 본문인 요한복음 14장 말씀을 가지고 주일설교를 했습니다. 그때 본문을 읽으면서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확- 열어지고, 마음이 쿵- 하고 감동이 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시행하리라.”

와- 이것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얼마나 애타게 찾고 찾았던 응답입니까?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시행하리라.” 할렐루야! 저는 이 말씀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습니다. 사실 목사로서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혹시 저만 그렇게 바라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의 부흥을 전혀 바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부흥되서 사람이 많아지면 목사님 사모님이 자기들을 챙겨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자기는 찬밥신세가 될 것이라고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은 적당히 작은 교회를 선호합니다. 새신자가 들어와도 별로 반갑지 않습니다. 혹시 교회가 부흥이 되어서 커지면 다시 작은 교회로 옮기려고 합니다. 작은 교회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에서 자기가 또 섬김과 사랑을 받으려고 옮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소아기적 상태의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들입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저와 같이 교회가 부흥되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 부흥이라고 대답하십시오. 주님이 나에게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고 하면 “주여, 저의 소원은 통일, 아니 부흥입니다.”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부흥을 위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살리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애를 씁시다. 물론 그렇게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한다고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월급 주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반주자들, 주일 학교 교사들, 각 부서를 맡아 수고하시는 분들 굉장히 열심히 수고하시는데 죄송하지만 월급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시행하리라. 내가 복을 주리라.” 혹시 인생을 살면서 내 힘으로 도저히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까? 예수님께 문제를 풀어달라고 사정을 해보십시오. 어떤 분은 제게 묻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이 이 문제도 풀어줍니까? 목사님! 저 장가가고 싶은데 예수님이 저를 장가보낼 수 있을까요? 아-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수님도 장가 못가셨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33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셨으니 너도 장가, 시집 못 보낼 것 같니? 아이고- 너는 어떻게 그렇게 성경을 해석하냐? 너는 이런 말씀도 모르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8:9) 즉 그가 장가를 못 가신 것은 너를 장가보내기 위해서(?) 너를 살리기 위해서 이리저리 바쁘게 뛰시다보니 장가가실 틈이 없으셨던 거다. 알았니?

제가 지금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을 하지만, 글쎄요. 나중에 예수님께 한번 물어보고 싶은 질문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장가를 못 가신 거예요? 안 가신 거예요? 성경에 보니 예수님의 육체의 모습이 별로였다고 하던데... 혹시 그래서 못 가신 건 아니에요? 아니면 마음에 드는 자매님이 없었나요? 아니면 예수님은 신성이 강하게 작용하셔서 장가갈 마음이 아예 없으셨나요? 우리 목사님이 그러시는데 나 때문에 장가를 못 가셨다고 그러시던데...”

오늘의 본문에 예수님은 약속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나에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여러분! 외국 땅에 살면서 가장 급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비자 문제일 것입니다. 비자가 없으면 의료보험이 안 됩니다. 자녀들 학교도 못갑니다. 신분이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물론 영주권이 나온 분들은 얼마나 다행입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그 영주권 쉽게 나온 분들도 있지만 어렵게 나온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주님이 영주권을 내주셨다고 간증하실 수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자는 캐나다 이민국 직원이 내주지만 그 직원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고로 비자 문제도 예수님께 구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시행하리라. 내가 이루리라.”

인생 살면서 못 말리는 분이 있습니까?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분이 있습니까? 물론 그런 분에게는 고상하게 ‘분’이라고 하는 것보다 ‘놈’이란 단어를 쓰고 싶겠지요. “못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런 분들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그 놈 죽여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 분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그 분을 용서하게 해주십시오. 그 분을 좋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솔직히 마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기도하는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그래, 내가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내가 시행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세상 살다 보면 내가 못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제 머리 제가 못 깎습니다. 그래서 저는 월마트 옆에 있는 이발소에 갑니다. 어포인트먼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머리를 깎는 분들도 있기는 있습니다.

얼마 전 여기 캘거리 목사님들이 모였을 때 그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스스로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고는 모두가 웃었습니다. 삐딱삐딱, 삐뚤삐뚤, 울퉁불퉁, 밸런스가 맞지 않습니다. 쥐가 파먹은 것 같았습니다. 옆에서 다른 목사님이 농담으로 말합니다. “목사님! 요즘 이발할 돈 없어요?”

물론 외국에서 살다 보니 하도 인건비가 비싸서 웬만하면 스스로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내 힘으로 못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며칠 전에 치과에 갔습니다. 한 번 가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기가 겁나지만 할 수 없어서 갔습니다.

40년 전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이빨을 하나 봉을 씌운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빨이 40년 만에 낡아서 빠졌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잘 버텨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치과 의사가 말합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못합니다. 스페셜리스트(전문의)에게 가든지, 아니면 이 이빨을 한 한국 의사가 참으로 대단하신데 그 분께 가십시오.”

아- 여기 의료보험이 다 무료인데 왜 치과만은 예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일은 내가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인간에게는 못하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의사라도 다 같은 의사가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의사가 있고, 실력이 달려서 못하는 의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입니다. 나의 소원을 성취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너희는 내게로 와서 나에게 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더니 어- 불가능한 것이 되는 겁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 예수님이 있기는 있는 거구나!”

그러다가 이것이 일상생활이 되다 보면 즉 나는 구하고 예수님은 실행하고, 그렇게 늘 인생을 살다보면 예수님을 향해 고백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오- 나의 주님!” 아무쪼록 오늘도 각자는 기도하고 주님은 실행하시므로 하나님께는 영광이고, 우리에게는 기쁨이 되는 복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