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누가 사나?

날짜: 
2006/11/12
설교: 

갈2:20 내 인생 누가 사나?
어느 양가집 처녀가 직업도 없고 장래가 불투명한 남자와 결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처녀의 집 부모는 야단이 났습니다. 부모, 형제들이 강력히 말리는데도 이 처녀가 하는 말은 한결같았습니다. “부모님이 내 인생을 살아 주시겠어요?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왜들 이래요? 내가 잘살거나 못살거나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니 더 이상 시비하지 마세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과연 내 인생은 누가 살아 주는가?”
1. 내 인생 하나님 없이 내가 산다.
여러분, 이 주장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마귀가 아담을 꾀일 때에도 똑같은 말을 사용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살 필요가 없다. 네 인생 네가 살아라.” 이게 마귀가 아담을 향해서 한 말인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했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마귀는 하와에게 와서 속삭입니다. “왜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듣느냐? 너도 하나님처럼 독립해서 살아라. 네가 하나님이 되라. 네 인생 네가 살지 왜 남에게 속박을 받고 사느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4절로 5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와 같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아담과 하와가 자기 인생 자기가 살겠다고 하나님을 배반하자 그들에게는 환경과 저주, 수고와 질병과 죽음이 뒤따르게 된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똑같은 말로 시험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느냐? 네 마음대로 네 인생 네 뜻대로 살아라!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하게 하라. 배가 고프니 당장 네 마음대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네 마음대로 높은 데서 뛰어 내려서 너 자신을 과시하면서 살아라. 그리고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너한테 줄 테니 그 모든 부귀, 영화, 공명을 가지고 네 마음대로 떳떳하게 살아라.”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4:7)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 즉 “나는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산다.” 하며 예수님은 끝까지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마귀가 시키는 대로 내 인생 내가 살면 내가 모든 삶의 책임을 짊어져야 됩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내가 책임져야 되고, 내 인생의 일과 내 인생의 짐을 내가 모두 짊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 인생 내가 살면 내가 마귀를 이길 수 있느냐? 절대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내 인생 내가 살겠다고 나오자마자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좌절과 절망 가운데 살게 됩니다. 아무리 자신이 지혜 있고 총명 있고 능력이 많다고 하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자기 힘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수고와 고통이 늘 따라 오기 마련입니다.
북한의 정치와 경제정책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주체사상’입니다. 주체사상은 외부의 관섭이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립하며 떳떳하게 사는 사상입니다. 얼핏 들으면 상당히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완전한 인간인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살면서 완전하신 하나님마저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서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인간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될 때에 가난과 저주, 질병과 고통과 같은 비극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내 인생 내가 산다는 것은 마귀의 논리입니다. 마귀는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속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하여 “네 인생 네가 살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옛 아담처럼 속아서 에덴동산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2. 내 인생 하나님을 거역하며 산다.
예수님 믿는 사람 중에 아직 성장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산다.”고 하면서 실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주체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사울왕이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자살로 자기의 목숨을 끊은 비극의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러나 그도 한때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사울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초대 왕으로 선택해서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자기가 하나님에게 보조를 맞추려고 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조를 맞추라고 요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실지는 하나님이 주체가 아니라 자기가 주체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주인이요, 하나님은 종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자기의 뜻이 맞으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꽤 잘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자신의 뜻이 맞지 않으면 항상 하나님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를 따라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사울은 왕이 된지 2년에 하나님의 뜻도 묻지 않고 군사 3천을 모아 블레셋을 치려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오히려 병거 3만과 마병 6천과 셀 수 없는 수많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나오니 이스라엘 군사들은 혼비백산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는 제사장 사무엘에게 제사를 드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을 기다리기가 피곤하니까 “에라~ 까짓것 사무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내 생각대로 내가 내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자.” 하면서 자신은 제사장도 아닌 데에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편의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진노하여 말합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 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삼상13:14)
여기에서 사무엘이 지적한 것은 사울의 제멋대로 신앙입니다. “내가 편한 대로 하나님을 믿으면 됐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해서 믿을 것이 뭐냐. 하나님이 내게 보조를 맞춰야지.”하는 잘못된 신앙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왕은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하라고 하면 자기 생각대로 저렇게 하면서 자기 생각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고집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보면 예수님 믿고 난 다음 자기 중심에 서서 내게 좋으면 하나님을 믿고, 안 좋으면 하나님 안 믿는다. 하나님을 믿어도 내 생각대로 믿는다. 내가 편하면 하나님 따라가고, 편하지 않으면 하나님 안 따라간다. 내가 편하면 주일날 교회가고, 편하지 않는 날은 안 간다. 이렇게 자기중심주의, 자기 편의주의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결국 사울왕이 파산한 것처럼 신앙이 파산하고 맙니다.
3. 내 인생 하나님이 사신다.
이 고백은 오늘의 본문에 나온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예수님을 믿어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인생 하나님이 대신 살아주면서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에 대하여 마태복음 6장
31-33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또한 로마서 8장 31절로 32절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즉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우리가 난관에 부딪힐 때도 늘 하나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주인에게 부탁하면 주인이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소년시절에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양을 치다가 곰이 와서 양 새끼를 잡아가면 뛰어가서 곰과 싸워서 양을 다시 빼앗고, 곰이 달려들면 쳐서 죽였습니다. 심지어는 사자가 와서 양 새끼를 물고 가면 사자에게 달려가서 양 새끼를 빼앗고 사자까지 죽였습니다. 삼손도 사자를 죽였지만 다윗은 삼손보다 어린나이에 사자까지 죽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째아들로 제일 멸시받고 천대받는 아들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자기 생명을 받치고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인생을 하나님이 대신 살아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린 소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곰하고도 싸우고 사자하고도 싸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곰을 죽이고 사자를 죽인 것입니다. 즉 곰과 사자와 싸운 분은 하나님이시고, 곰과 사자를 죽인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10대 소년이 어찌 골리앗을 이길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모든 군사가 골리앗의 도전을 받고 혼비백산하여 나라가 위태할 때에 바로 이 소년 다윗이 사울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서 싸우겠다.”하니까 사울왕이 말합니다. “아니 너는 17살 먹은 어린 소년이고 저 골리앗은 대장군인데 네가 어찌 골리앗과 싸울 수 있느냐?”
그때 다윗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여러분, 이스라엘 장군들도 골리앗과 싸우기를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어린 소년 다윗이 어떻게 감히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했습니까? 그 이유는 다윗은 자기는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인생을 살아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싸움이 자기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라고 알았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을 살아 주시고, 자기를 통해서 싸워 주시니까 골리앗이 아무리 대장군이라도 하나님과 싸워서 어찌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골리앗은 키가 2미터 80센티입니다.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골리앗을 대항해서 나가면서 그가 한말을 들어 보십시오. 아주 가슴이 찌릿한 말을 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윗이 이렇게 용감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인생 자기가 살지 않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이 살도록 했기 때문에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서 이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내 인생은 하나님이 살아주신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바람아 불어라. 눈보라야 처라. 험산준령아 막혀라. 내 인생 내가 살지 않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지 않고 내 인생 하나님이 살아 주시니 하나님께서 넉넉히 이기신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주권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고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대신 살아 주십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곰도 사자도 물리칠 수 있고, 골리앗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 내가 살거나, 내 인생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면 어찌 이 외국 땅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마귀는 끊임없이“네 인생 네가 살아라. 하나님이고 뭐고 없다. 혹시 하나님을 끼고 살려면 하나님을 이용하며 살던지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아라.”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여러분,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삽니다. 이 외국 땅에서 나를 붙잡아 주실 이도 하나님이시요,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나에게 열매 맺게 해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온통 충만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