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나를) 보면 하나님이 보인다.

날짜: 
2021/11/21
말씀: 
롬1:20
말씀구절: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특히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 하나님의 만드신 세계를 보다 자세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밖인 우주의 크기를 살펴봅시다.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돈다고 합니다. 즉 1초에 300,000km를 이동하는 겁니다. 이런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하는데, 대략 1광년은 10조 km입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태양계의 지름은 약 4광년인 40조 km입니다. 그리고 태양계가 속해있는 은하를 ‘우리 은하’ 또는 영어로 ‘밀키 웨이(Milky Way)‘라고 부르는데, 그 지름은 10만 광년입니다. 이 ’우리 은하(Milky Way)‘ 안에는 태양과 같이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만 2000억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우리 은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우리 은하’나 이보다 더 큰 은하가 관측된 것만 또 2000억 개가 있습니다. 이를 ‘은하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은하들이 모인 ‘은하군’이 또 수천 억 개가 있는데 이를 ‘은하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은하단이 또 수없이 많이 있는데 이를 장성(Great Wall)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장성들(Great Wall)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끝없는(Endless)’이란 단어가 있는데 진짜 우주는 끝이 없이 광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광대한 우주가 각각의 질서를 지키며 정확히 운행합니다. 이런 우주를 보면서 우리는 “도대체 이 우주를 누가 만든 거야?”라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한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라는 간단한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일반 계시’ 혹은 ‘자연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자연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계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반 계시’ 외에 ‘특별 계시’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꿈, 환상, 혹은 영적 체험과 같은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는 겁니다. 이 특별 계시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간증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질문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창조자 신을 가까이서 만나고 대화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런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친밀한 아빠, 아버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어서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영이 살고, 하나님의 영(예수님의 영, 성령)이 내게 오시면 이런 사실과 진리를 하나하나 깨닫게 하고 가르쳐줍니다. 하루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빌립이란 사람이 예수님께 이런 부탁을 합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족하겠나이다.”(요14:8)

이 질문은 많은 불신자들이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보여줘 봐. 그러면 나도 하나님을 믿을게.” 이 질문에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요14:9-10)

그러면서 예수님은 장차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시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고 하셨습니다.

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제가 만 25살에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숲과 나무를 보는데 그들이 나를 향해 ‘할렐루야!’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 이거 뭐지? 왜 이리 기분이 좋지?”

그 이유가 뭔지 성경을 살펴보니까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그런 큰 기쁨을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내 안에 오신 성령은 곧 예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이신 것을 깨닫게 되고, “아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신학적으로 정확히 설명하려고 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온 것을 깨닫는 분은 “아하- 예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시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오셨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라는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예수님, 하나님)은 나와 늘 동행하고, 나와 늘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로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과의 대화, 즉 기도가 자연스럽게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 분의 성품을 닮아가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옛 것이 변하여 새 것이 되는 거듭난(Born-again) 신자가 되는 겁니다.

제가 그렇게 거듭나서 삶이 변하니까 가장 먼저 가족들이 알게 됩니다.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 같이 세상적으로 열심히 놀았던 친구들이 저를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원효야, 너를 보면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겠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저의 간증이고 또 여러분들의 간증입니다. 즉 나를(너를) 보면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 날 성령이 120명의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그 성령 받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나라 말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묻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베드로가 설명해줍니다.

“아- 이것은 하나님이 말세에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성령을 받아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한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바로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증거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리고 또 며칠 후에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에게 베드로가 외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이 말을 듣고 앉은뱅이가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사도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심문합니다. “도대체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이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9-10)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행4:12)

이렇게 사도들이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아니- 저 사람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성경도 알지 못하는 무식쟁이들인데, 어찌 이렇게 성경을 깨닫고 말을 잘 할 수 있느냐?” 즉 옛날의 사도들의 모습과 현재의 사도들의 모습이 전혀 딴판이라는 겁니다. 뭔가가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 보내주시겠고 약속한 성령이 임하므로 그들이 변하고, 또 그 성령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결국 예수님이 메시아,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 사람이 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사람을 보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말합니다. “야- 재를 보니 하나님이 살아있는 것 같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우주를 보고, 혹은 여러 곤충이나 짐승들, 그리고 사람의 몸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창조자의 능력과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성령님(예수님,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셨으니, 그리고 그것을 가장 먼저 알고 있는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이 구원자 되신 것을 100% 확실히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자기 자신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실히 깨닫지 않습니까? 특히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분의 은혜를 생각하고, 나 같은 불완전한 사람을 주의 일꾼으로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과연 하나님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지 않습니까?

혹 어떤 분은 이렇게 대답할는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나를 보면 하나님이 보였는데, 요즘은 나를 보면 하나님이 잘 안 보입니다.” 혹은 또 이렇게 대답할는지 모릅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확실히 보였는데, 여기 외국 캐나다에 오니까 하나님이 잘 안 보입니다.”

아니, 왜 그러는 겁니까? 하나님이 죽었나요? 하나님이 어디 멀리 출장 갔나요? 혹시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셨나요? 물론 저도 캐나다 땅에 처음 왔을 때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시간만 제대로 기도해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응답이 왔었는데, 여기서는 두세 시간 혹은 서너 시간을 기도해야 그런 세세계가 옵니다.

그런데 사실 하루 두세 시간 혹은 서너 시간을 기도하는 것이 목사님도 힘든 일인데, 여러분들의 경우 이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을 평상시에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더구나 큰 문제가 생겼는데 기도는 약하고, 문제는 빨리 안 풀어지고, 또 마침 오랜 전염병 사태로 인해 믿음도 떨어지다 보니 하나님이 아예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는 것도 마지못해 가게 되고, 신앙생활 하는 것도 하는 둥 마는 둥, 간닥간닥, 아슬아슬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잃었던 믿음을 반드시 다시 찾아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느 날 각종 신분증과 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을 잃어버렸으면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왜 믿음 잃어버린 것은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믿음이 금보다 은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갑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영원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천국 열차를 놓치는 것입니다.

고로 캐나다 땅에 와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믿음 생활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나를 바라볼 때에도 “아, 저 사람을 보니까 하나님이 보인다.”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내가 나를 바라볼 때도 “하나님이 나와 여전히 함께 하시고 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부족하지만 여전히 나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의 간증이요, 하나님의 증거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그들은 나를 통해서, 너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아무쪼록 그들이 “너를 보면 하나님이 보인다.“라는 고백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