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1-7 너 왜 마음이 안 좋으냐?
사람은 누구나 기분 좋게 해피(happy)하게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뻐하며 살기 위하여 우리들은 인상짓고 살기보다는 웃으면서 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마음이 다운되고, 어깨가 처지며 기분이 안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는 기분이 안 좋은 경우에 해당되는 설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기분이 상당히 좋지 못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름하여 '가인'입니다. 한국의 연예인 '가인'이 아닙니다.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입니다. 그의 동생의 이름은 '아벨'입니다. 한번쯤은 이들의 이름을 들어보셨겠지요. '가인과 아벨'. 오늘 가인이 왜 기분이 안 좋으냐? 한 마디의 영어로 말하면 'discrimination'입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인간 차별'입니다.
가인은 아벨보다 형입니다. 그래도 형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편을 드는 겁니다. 동생 앞에서 자기를 크게 창피를 준 겁니다. 왜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편을 들었냐고요? 가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 차별해서 기분 나쁘게 해놓고 미안하다는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더 열 받았습니다.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눈 꼬리가 올라갔습니다. 화가 나서 손이 부르르 떨립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합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뇨?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여러분! 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말을 하는 하나님이 얼마나 얄미웠겠어요? 생각해보세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누가 나의 자존심을 깔아뭉갰습니다. 나는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여러 사람 앞에서 창피를 준 사람이 또 얼마 있다가 나에게 말하는 겁니다. "어머! 너 안색이 참 안 좋다. 애- 무슨 일이 있었니?" 하면서 나를 굉장히 생각해주는 것처럼 말하는 겁니다. 아- 이런 얄미운 사람! 꼬집어 주고 싶겠지요? 가인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란 분이 자기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겁니다. 적어도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상처 주지 말았어야지요.
생각해 보세요. 가인은 하나님께 참 좋은 일을 했습니다. 가인은 농사꾼이라서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의 예물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겁니다. 가인이 얼마나 무안하겠어요. 얼마나 당황스럽고, 얼마나 슬펐겠어요? 그런데 잠시 후 동생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는 가축을 치는 사람이라 양을 잡아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럽쇼! 이게 웬 일입니까? 하나님이 동생의 제물은 후딱 받으시는 겁니다. 아니, 이거 왜 이런 거예요? 하나님이 채소보다 고기를 더 좋아해서 그런 거예요? 하나님이 고기가 드시고 싶어서 환장을 하셨나요? 가인이 드린 제물에는 뭐 똥이 묻었나요? 방사능이 묻었나요? 아니면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몹시 시장해서 그랬나요?
여러분! 하나님이 가인에게 "애야, 나는 채소보다 고기가 더 좋다. 그러니 제물을 가지고 올 때 고기를 가지고 오너라."고 미리 말씀하셨다면 가인도 한우갈비나 앨버타 비프를 수입해서라도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눈치를 보니까 그게 아닌 겁니다. 만약 반대로 동생 아벨이 채소로 제사를 드리고, 자기가 고기로 제사들 드릴지라도 하나님은 동생의 제물을 받았을 겁니다. 눈치가 뻔해요. 즉 이건 제물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곳 캐나다 땅에 살면서 인종차별 당해보셨나요? 그때 기분이 어때요? 예를 들어봅시다. 쇼핑을 하고 계산대에서 값을 지불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참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캐셔(cashier)가 내 순서가 오니까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This lane is closed." "뭬야?"
아- 이런 경우 참 황당합니다. "혹시 애가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 어떡해요. 결국 딴 lane으로 갈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딴 lane으로 가서 또 줄서고 있는데 아까 그 cashier가 잠시 누구와 이야기하더니 다시 그 lane으로 돌아와서 'closed' 막대기를 치우고 다시 손님을 받는 겁니다. 그 손님을 보니까 백인 여자예요.
아- 이것 뭡니까?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을 당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이렇게 인종차별 당하면 마음이 참 안 좋겠지요. 그런데 가인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께 인간 차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도 "용용 죽겠지!" 식으로 하나님이 "너 왜 그렇게 안색이 안 좋니?" 하면서 묻는 겁니다. 약주고 병주는 식이 아닙니까?
가인은 열을 받았습니다. 화풀이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때릴 수는 없고, 하나님과 일대일로 붙어 봤자 질 것은 뻔하고, 만만한 동생 아벨을 들로 소풍가자고 꾀면서 돌로 쳐 죽입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습니까? 오늘날의 상황으로 설명하면 이런 겁니다.
두 형제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형의 헌금은 안 받고 내동댕이칩니다. 그리고 동생의 헌금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축복기도를 해주는 겁니다. 형은 매우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목사가 미웠습니다. 목사의 멱살을 잡고 "너도 목사냐?" 하고 한 대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를 보니 얼굴이 우락부락하고 덩치가 거인입니다. 옛날에 깡패 두목이었습니다. 도저히 자기는 게임이 안 됩니다.
할 수 없어 형은 교회 문을 나서면서 화풀이로 동생을 팼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급소를 맞았습니다. 그냥 꼬꾸라져서 즉사를 했습니다. 다음 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났습니다. "Tragedy in the Church!(교회에서 일어난 비극!)" 오늘 본문의 비극은 다름 아닌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 즉 믿음의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헌금을 드린 것이 발단이 된 겁니다.
여러분! 한국 속담에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가 살면서 딴 남자, 딴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는 안 되는 것을 누구나 이성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을 때 종종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이런 식으로 아내에게 말합니다. "시집도 못가서 노처녀로 죽을 것을 구제해주었더니 이제 와서 은혜를 모르고 뭐가 잘났다고 그래. 얼른 밥이나 차려!"
이 말에 아내는 화가 났습니다. "뭐라고! 내가 너 없으면 시집을 못 간다고? 야- 두고 보자. 나도 따르는 남자 많다." 그리고 속담처럼 홧김에 서방질하는 겁니다. 여러분! 기분이 안 좋을 때, 특히 화가 날 때에 나타나는 행동은 파괴적이 되고 맙니다. 고로 화가 난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 다음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화가 날 때 운전대를 잡지 마십시오. 사고 날 위험이 높습니다. 우울 하다고 혼자 홀짝 홀짝 술 먹지 마십시오.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렇게 화가 난 가인에게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즉 너가 화가 난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가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인종차별로 인해 가인은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인종차별을 했나요?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나요?
이에 대한 해답이 히브리서 11:4에 나와 있습니다. 같이 볼까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즉 가인의 제사는 불신의 제사이고, 아벨의 제사는 믿음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것은 제물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종차별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차이입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천국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갑부가 예수님은 믿지 않고 천국 앞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내려놓고 "이 정도면 천국의 가장 좋은 자리가 내 것이지!" 하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때 문을 지키고 있는 천사가 말합니다.
"애야, 너는 이런 노래도 못 들어 봤니?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 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은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인종차별을 한 것도 아니고, 헌금 차별을 한 것도 아니고, 인물 차별한 것도 아니고, 오직 믿음의 법칙을 따라서 역사한 것입니다.
가끔 보면 불신자들이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비난합니다. "야, 너 같은 것이 예수 믿는다고 천당 가면, 나는 믿지 않고도 만당 간다." 물론 우리 믿는 사람들이 불신자들에게 이런 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때 가서 천국 문 앞에서 "나 돈 많이 가져왔는데 왜 천국에 안 들여보내주는 거야?" 하고 떼를 쓰면 안 됩니다. 왜 인종차별을 하느냐고 분노해서도 안 됩니다.
천국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칙인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벨은 이 하나님의 믿음의 법칙을 따라서 제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분 좋게 okay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믿음이 없이 제물만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nokay 했습니다. 안 받았습니다. 가인은 인종차별을 당한다고 오해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자신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언제든지 하나님은 가인에게도 okay 하십니다.
여러분! 기분이 안 좋은 분이 있습니까? 왜 기분이 안 좋은 겁니까?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혹시 내 잘못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즉 "오늘 기분이안 좋은 것은 내 죄 때문이다."라는 깨달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하나님, 오늘 제가 기분이 참 안 좋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다 제 잘못인 것 같습니다. 제가 더 좋은 모습으로 서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저의 제물도, 저의 기도도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기뻐하셔서 저도 하나님께 칭찬 받게 해주세요." 아멘!
제가 오늘의 이 설교를 준비하기 전에 저는 마음이 조금 안 좋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안 좋아 멍하게 있는 중에 하나님이 저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너 왜 마음이 안 좋으냐?" 저는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이래 저래서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속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생각했습니다. "아- 섭섭하다! 하나님이 나를 좀 기분 좋게 해주시지! 나의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해주시지!"
여러분! 마음이 안 좋을 때, 마음이 다운될 때, 마음에 답답함과 분노가 생길 때, 자칫 죄를 짓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를 컨트롤하지 못하면 더 큰 죄를 짓고 맙니다. 고로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합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여기서 '죄가 문에 엎드리다.'는 뜻은 마치 사나운 개가 문 앞에서 내가 나오면 물으려고 웅크리고 기다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를 지은 사람은 기분도 나빠지고, 더 큰 죄의 유혹을 받아 형편이 더욱 나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죄에게 지지 말고, 죄와 싸워서 죄를 이기고,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죄의 유혹이 있습니다. 종종 마음으로부터 죄의 소원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죄의 소원이 일어난다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면 안 됩니다. 즉 화가 나도 서방질하지 말고, 그 화를 다스리고 빨리 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화가 나는 것을 그냥 방치하면 자칫 화병이 생기고, 그 화는 원한으로 악화되어 남편을 죽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처럼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은 여러분에게도 다가와 조용히 물으십니다. "너 왜 마음이 안 좋으냐? 여러분! 이에 대한 대답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 이래 저래서 제 마음이 안 좋아요. 그래서 화가 나려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 화가 나면 또 죄를 짓잖아요. 그러니 저의 마음을 다스려주세요."
만약 가인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고 죄를 다스렸더라면 그는 동생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마음이 안 좋을 때, 그 좋지 않은 마음이 왜 왔는지, 나에게는 잘못이 없는지 생각도 해보시고, 죄를 다스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너 왜 마음이 안 좋으냐?
날짜:
201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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