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거운 돌을 옮기는가?

날짜: 
2005/07/17
설교: 

갈6:2 누가 무거운 돌을 옮기는가?
옛날 어느 임금님이 민정사찰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신하 한 사람을 시켜서,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큰 길 한복판에 큰 돌덩어리 하나를 갖다 놓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낮이 되어서 임금님은 큰 나무 뒤에 숨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 앞에 돌이 있건만 요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지나쳐 갔습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다가 그만 그 돌에 발이 부딪혀 넘어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멩이를 치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욕지거리를 하면서 불평하기 일쑤였습니다. "도대체, 어느 못된 녀석이 길 한 복판에다가 이렇게 큰 돌을 갖다 놓았단 말이냐?"
한참 뒤 어떤 노인 한 분이 지게를 지고 가다가 그 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게를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안간힘을 다 써서 그 돌을 길옆으로 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다시금 돌아와서 지게를 메려고 하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돌 밑에는 듬직한 엽전 꾸러미가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편지 한 장이 놓여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돌을 옮긴 사람에게 이 엽전 꾸러미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기회주의자처럼 그저 요리피하고, 저리피하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 저 사람 원망이나 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이 임금님이라면 어떤 백성을 원하겠고 어떤 백성에게 상을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부모님이라면 이런 경우 당신의 자녀에게 어떤 자세를 가르치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선생님이라면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경우 어떻게 하라고 지도하시겠습니까?
물론 당장 인간적인 생각을 하면 "도대체, 어느 못된 녀석이 길 한 복판에다가 이렇게 큰 돌을 갖다 놓았단 말이냐?" 하고 화를 낼만 합니다. 비판을 할 만 합니다. 더구나 그 돌에 결려 넘어져 자기의 코가 깨어졌다면 그렇게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어찌 보면 길거리에 돌을 갖다놓은 사람에 대하여 화를 내는 사람은 상당히 정의에 불타 있는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감추어진 엽전꾸러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임금님의 칭찬을 듣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에이,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귀찮은 일로 괜히 시간낭비하지 말자.” 하고 자기 일에만 바쁘고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현대인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백성들도 임금님이 보시기에는 칭찬을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임금님을 한숨짓게 하고 안타깝게 만듭니다.
그러나 비록 힘없는 노인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등에 이미 지게라는 짐이 있을지라도, 비록 그 돌에 걸려 넘어졌다 할지라도, 남을 비판하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쳐 가지 아니하고, 말없이 그 돌멩이를 치우려고 끙끙대는 사람을 본다면, 그리고 당신이 그 현장의 임금님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임금님은 크게 감동이 되겠지요. 제가 만약 그 임금님이라면 저는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 나가 그 노인 분의 손을 꼭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참으로 훌륭한 백성이오. 당신 때문에 임금은 행복하다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임금님이시요. 우리는 그 분의 백성들입니다. 때때로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곳의 민정시찰을 하시기 원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민정시찰을 나오신다면, 그리고 숨어서 “누가 무거운 돌을 옮기는가?” 하고 지켜보신다면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① “어떤 녀석이 이런 큰 돌을 여기다가 갖다 놓았어?” 하고 화내는 사람 ② “에이,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괜히 귀찮은 일로 시간낭비하지 말자.”라고 말하며 그냥 지나치는 사람 ③ 비록 내 짐이 무거워도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무거운 돌을 옮겨놓는 사람 : 모든 분들이 ③이라고 자신 있게 손을 들고 대답하셨습니다. 아- 훌륭하십니다. 과연 순복음 중앙 교회성도님들이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주님이 얼마나 우리들을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다같이 영광의 박수를!!!
만약 이 이야기를 어린이 교실에서 선생님이 했다면, 그리고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여러분들은 어떤 어린이들이 되기를 원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그 어린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③이요!“라고 힘차게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어린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누가 버렸는지 이리저리 쓰레기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먹다가 버린 슬러피 깡통과 음료수 깡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그 이야기를 듣고 “③이요!“라고 힘차게 대답을 했던 어린이들이 그 운동장을 거쳐 집으로 뛰어가면서 떨어진 휴지조각을 줍지를 않습니다. 어떤 어린이들은 깡통을 발길로 차며 지나갑니다. 이러한 장면을 교실 창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생님은 ”휴-!!!“ 하고 한숨을 짓습니다.
여러분,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이렇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가 “③이요!“라고 힘차게 대답을 하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③이 아닌 ①과 ②의 태도를 취합니다. 더구나 교회를 다니는 우리들은 너무나도 많이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많이 듣고도 행치 않는 것보다 한 번을 듣고 바르게 실천하며 행동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 이야기 속에서 백성들이 하나같이 돌을 치우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가기만 하고, 혹은 대로상에 돌을 갖다 놓은 사람을 원망만 한다면 어찌 그 나라의 장래가 있겠습니까? 그 나라를 통치하는 임금님이 어찌 행복하겠으며, 그 나라에 사는 백성들이 어찌 기쁘겠습니까? 그러나 서로 내가 먼저 그 무거운 돌을 치우려고 한다면 그 나라는 장래가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의 백성들은 화목하고, 임금님은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적극적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무거운 돌을 치우십시다. 바쁘다고 빼지 마시고, 누가 이런 무거운 돌을 갖다 놓았느냐고 비판을 하지 마시고, 힘이 들더라도, 시간이 들더라도 무거운 돌을 옮기는 자리에 내가 먼저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잠잠히 지켜보시는 우리의 임금님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늘나라를 아름답게 가꾸시는 귀중한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혼자서 들기에 무거운 짐은 서로 협력하여 지십시다. 남선교회 식구들이 합력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여선교회 식구들도 합력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청년 유학생들이나 중고등부 학생들도 합력하여 무거운 짐을 서로 지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십시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짐을 지지 않고 말만 하면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짐은 지지 않고 비판만 하면 그리스도의 법이 파괴되고 맙니다. 그러나 무거운 짐을 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최고의 법인 사랑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거운 돌을 옮겨 놓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나라가 사랑으로 가꾸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신 새로운 계명입니다.(요13:34) 그리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말로만이 아닌 서로 짐을 지어야 합니다. 가정의 짐을 남편과 아내와 자녀가 서로 지어야 그 가정에 사랑의 법이 성취됩니다. 교회에서도 짐을 서로 지어야 사랑이 있는 교회가 됩니다. 짐을 지지 않고 사랑만 외친다면 그는 위선자입니다. 짐을 지지 않고 비판만 한다면 그는 올바른 신앙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판 대신에, 무관심 대신에 짐을 져주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거운 돌을 옮겨놓겠다고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이 말씀은 바울 시대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유포된 격언이었습니다. 즉 그 시대의 언어였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잘 쓰는 용어로 말하면 '고통분담'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고통을 서로 분담해야 사랑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고통을 분담해야 사랑이 성취되고, 목사와 성도가 서로 고통을 분담해야 사랑이 성취되고, 성도와 성도 간에도 고통을 분담해야 사랑이 성취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져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을 실천하신 구체적인 방법은 남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당시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말만 하고 짐을 져주지 않았다면 예수님도 그들처럼 위선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진정한 구세주가 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이 진정한 남편이 되기를 원합니까? 진정한 아내가 되기를 원합니까? 진정한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까? 진정한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까? 무거운 돌을 옮겨놓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인 사랑을 실천하고 성취하는 길입니다. 십자가가 무겁다고, 돌멩이가 무겁다고, 짐이 무겁다고 내팽개쳐 버리면 사랑이 사라지고 냉랭해지고 맙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지기 싫어합니다. 이기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의 사이에도 상대가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되면 단호히 끊어버리려고 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친구 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성도들조차 하나님이 맡겨준 짐은 지기를 싫어합니다. 고로 서로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진정한 하늘나라 백성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 무거운 돌을 옮기기 싫어서 이리저리 회피해도 오늘도 묵묵히 그 무거운 돌을 옮기는 보석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의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그 무거운 돌을 나르는 그 모습을 우리 주님이 살피시고 있고, 그 모습을 주님이 보시고 기뻐한다면 나는 감사할 뿐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오늘의 질문을 다시 한번 드림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누가 무거운 돌을 옮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