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평소에 술을 너무나 좋아하고, 도박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한 남자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죽으면서도 한편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지옥에 갈 텐데...” 그런데 깨어보니 한 천사가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서 그에게 묻습니다. “천국 갈래? 지옥 갈래?”
그가 대답했습니다. “일단 결정하기 전에 천국과 지옥을 한번 둘러볼 수 있을까요?” “그러게나.” 천사는 그를 안내해 일단 천국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흰옷을 입은 성도들이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평화롭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기를 좋아하는 그가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까 너무나도 지루하고 따분하여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에 지옥에도 둘러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카지노도 있고, 술집도 있고, 예쁜 아가씨들도 많고, 왁자지껄한 게 맘에 쏙 들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게 지옥이라면 여기가 훨씬 좋겠다.” 그래서 그는 대답했습니다. “천사님, 저는 아무래도 지옥체질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를 지옥으로 보내주십시오.“ “정말입니까?” “예- 정말입니다.” “후회 안하시지요?” “안합니다.”
그래서 그는 지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웬걸? 지난번에 왔던 데와 달리 술집도 없고, 카지노도 없고, 예쁜 아가씨들도 없고, 뜨거운 불속에서 일만 죽도록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내하는 천사에게 따졌습니다. “이건 좀 다르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왔던 데는 여기가 아닌데요. 여긴 술집도 없고, 카지노도 없고...” 그러자 안내하던 천사가 말했습니다. “그때에는 네가 관광비자로 왔고, 이번에는 영주권자로 온 거다. 이놈아!”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요즘 유튜브에 보면 세계의 여러 나라 관광지를 여행하면서 체험담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많습니다. 아- 그때에는 자기가 원하는 곳을 여기저기 다니며,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도 마음껏 먹고, 웃고 떠들고 진짜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그곳에 나중에 결혼하고 처자식들과 함께 영주권을 내고 살아보니 어떻습니까? 일만 죽도록 해야 하고... “아- 이게 아니구나? 여기가 지옥이구나.” 하고 깨달은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해보지만 이곳을 빠져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한국이 지옥입니까? 캐나다가 더 지옥입니까? 제 질문이 잘못되었나요? 이렇게 질문해야 맞지 않나요. 한국이 천국입니까? 캐나다가 더 천국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좀 다르겠지요. 어디 한번 물어봅시다. 한국이 더 지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솔직히 손들어 보세요. 캐나다가 더 지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손을 안 드시는 분은 뭔가요? 한국도 캐나다도 이 정도면 다 천국입니까? 혹은 이런 대답을 하고 싶으신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돈이 많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고, 돈이 없으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아- 이 말이 뭔 뜻인지 이해도 되고, 동감도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즉 돈만 있으면 뭐합니까? 건강을 잃고 아파서 신음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곳이 지옥일 겁니다.
그러니까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은 한 가지 조건만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을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한국에 보면 ‘헬 조선’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지옥이란 영어 단어 ‘hell'과 조선을 합성해서 만든 단어입니다. 즉 한국에서 사는 것이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겁니다.
옛날 한국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비하면 분명히 지금은 경제적으로 훨씬 잘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다른 면을 보면 살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통계중의 하나가 한국의 자살률입니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자살률 1위입니다.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한국으로 탈북한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말합니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여러분, 한번 물어봅시다. 대한민국이 헬 조선입니까? 북한이 헬 조선입니까? 해방 전에는 북한이 남한 보다 두 배 정도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30배나 더 잘 살고 있습니다. 2021년 통계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순위에 1위 남수단, 2위 소말리라, 3위 남아프리카 공화국, 4위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즉 북한입니다.
더구나 북한은 종교의 자유를 비롯해 각종 자유와 인권이 처참히 짓밟힌 곳이니 지구상에서 가장 지옥과 같은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더 좋다고 하고, 심지어 북한을 가리켜 지상낙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도대체 뭡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 가끔 목사님이란 분도 있던데... 아- 이건 또 뭡니까?
조용기 목사님이 1958년 서울 불광동의 가난한 동네에서 교회를 개척할 당시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조용기 목사님이 그곳 주민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야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합니다. “아- 우리는 지옥이 무섭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 것이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지옥인들 여기보다 더 하겠습니까?”
즉 경제적으로 너무나 쪼들리고 가난하다 보니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힘들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시 조용기 전도사님의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며 비웃습니다. “쯧쯧쯧, 당신이나 우리나 처지가 비슷한데 그런 헛소리 하지 마시오.” 즉 단지 ‘예수 천국, 불신 지옥’만 외치고 전도하는 것이 안 먹히더라는 겁니다.
그 후 조용기 목사님이 성경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니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축복하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후8:9)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조용기 목사님은 지옥과 같은 가난에 찌들어 사는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잘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이렇게 해서 순복음의 오중복음 중의 하나인 ‘축복의 복음’이 탄생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그런 축복의 복음을 ‘번영신학’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분들에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니들이 가난의 고통을 진짜 알아?”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난을 겪어보셨나요? 저의 집안 이야기입니다. 저의 아버님이 종종 참외를 많이 사와서 제 앞에 펼쳐 보이면서 “아들아- 참외 사왔다. 많이 먹어라.” 하고 우시는 겁니다.
그렇게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제가 묻습니다. “아버지, 왜 울어요?” 그러자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줍니다. 제가 5살 정도 때에 아버지와 같이 동네 시장을 지나가다가 참외가 먹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참외를 하나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아버지는 너무나 가난해서 아들에게 참외 하나도 사줄 돈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어린 나는 시장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불며 참외를 사달라고 계속 아버지께 떼를 썼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화가 나서 아들을 한 대 때렸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더욱 소리를 내고 웁니다. 그렇게 어린 아들에게 참외 하나도 사주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때리고 울려야만 했던 가난한 애비의 고통이 트라우마로 남고 원한으로 맺혀서 참외를 사와서 아들 앞에 펼쳐놓고 그 앞에서 우시는 겁니다.
여러분, 좀 더 솔직해집시다. 돈 떨어지면 지옥입니다. 돈 떨어지면 슬며시 신경질이 납니다. 돈 떨어지면 마음의 여유도 없어집니다. 다행히 여기 캐나다는 의료보험이 잘되어 병원비가 공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 보면 이가 거의 다 썩고 빠졌는데도 이를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아파서 신음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래요? 아- 돈이 진짜 많이 들어가는 치과는 의료보험이 안 되는 겁니다. (뭐니 이거?) 즉 아무리 살기 좋은 캐나다일지라도 가난이 오고 돈이 없으면 제대로 이빨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여기 캐나다에서 65세 노인이 되면 이빨 치료하라고 5년에 5000불이 정부에서 나옵니다. 저도 이번에 65세가 되어서 5000불이 나와서 즉시 치과에 갔습니다. 크라운이나 임플란트 하려고요. 그런데 그거요.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진짜 필요하고 돈이 들어가는 크라운 하는 것과 임플란트에는 적용이 안 됩니다. “엥- 뭐야 이거? 좋다 말았잖아.”
그런데 노인인 나는 그래도 얼마 살지 않으니까 이빨 한두 개 없어도 잇몸으로 버티면 되니까 괜찮은데, 아직 나이가 창창한 사랑하는 자녀가 이가 아파서 신음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걸 치료해주지 못하면, 그거 부모로서 얼마나 지옥이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으로 빠져나간다.”
즉 아름다웠던 사랑, 고귀했던 사랑,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부부의 사랑도 찢어지는 극한 가난 속에서 금이 가고 깨질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돈이 천국과 지옥을 모두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우리들도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습니다.(합3:17-18)
그러나 믿음이 좋은 나는 아무 것이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고 괜찮지만, 어린 내 자녀가 배고파서 밥을 달라고 우는데 “야 이놈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입니다. 그렇게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리고 삐쩍 말라서 죽어가는 자녀를 보면 부모로서 죽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이런 가난한 자의 심정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배고픈 자들을 배부르게 먹여서 보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셨느니라.”(눅4:18) 아멘! 저는 여러분이 이 외국 땅에서 돈 떨어지지 않고 기왕이면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며 넉넉하게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부자로 잘 먹고 잘 살아도 인간은 결국 100세를 넘기지 못하고 병들어 죽게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요? 그냥 죽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고 그것으로 모든 고통도 사라지고 끝나는 겁니까? 아니지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
즉 누구나 죄를 짓고 살지만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결국 천국이고, 예수님을 믿지 못해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결국 지옥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옥이 과연 존재할까요?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지옥의 존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원어 성경에 보면 지옥이라고 묘사한 단어가 있는데 스올(31번) 하데스(12번) 게헨나(12번), 총 55번이나 지옥에 대해 언급합니다. ‘
그 중에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으로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옛날에 각종 쓰레기를 태우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쓰레기를 태우느라고 항상 불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냄새가 고약했습니다. 그래서 게헨나(지옥)를 다른 말로 불과 유황이 타는 곳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예수님은 지옥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막9:43-49)
불교에도 보면 지옥의 종류에 대해 8-10가지로 나뉘어 언급합니다. 그 중에 ‘아비지옥’이 있고 ‘규한지옥’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합쳐서 우리가 ‘아비규한’이라고 합니다. 즉 아비지옥이나 규한지옥처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죄에 대한 벌이 없고, 선에 대한 상이 없다면 타락한 인간들이 사는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질서가 깨지고 완전히 난장판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아시고 인간의 일생이 마치면 각자의 행위에 따라 우리에게 상도 주고 벌도 준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공의가 서는 겁니다.
그리고 천국에서의 상도 차등이 있고, 지옥에서의 벌도 차등이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항상 선을 행하여 그날에 칭찬과 상급을 받기를 원하며, 지옥의 심판에 빠지지 않도록 늘 자신을 점검하고 내 행위를 조심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결론을 맺습니다. 때로는 지금 사는 이곳이, 나의 처한 환경이 지옥같이 느껴질 고통의 순간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아시고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신음하는 우리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고로 예수님을 믿으면 고통의 지옥도 행복의 천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진짜 지옥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지옥 같은 모습은 영원한 지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그 고통의 장소에 그 누구도 들어가면 안 됩니다. 특히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못해 지옥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아무쪼록 지옥이 아닌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함께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에 서있던 저희들을 천국의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못해 지옥 길로 걸어가는 그들을 천국의 길이신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잠시 후 우리들의 인생이 마칠 때 아름다운 천국에서 다 같이 행복하게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