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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지수’라는 말을 혹시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하게 되는데 어떤 사람은 실패와 실수를 할 확률이 아주 높고 어떤 사람은 실패와 실수를 할 확률이 아주 낮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수로 나타낸 것이 ‘실패지수’입니다. 이 실패지수를 산정하는 데에는 이런 항목들이 쓰입니다. 무지, 부주의, 차례 미준수, 오판, 조사 검토 부족, 기획 불량, 조직 운영 불량, 제약 조건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이와 또 다른 종류의 실패지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실패할 때 좌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를 제로(0), 혹심하게 좌절감을 느끼는 상태를 마이너스 10, 오히려 실패를 발전적 계기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플러스 10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실패지수를 가지고 미국 사람들을 조사해보았더니 유태인계 미국인이 +5(실패해도 좌절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발전적 계기로 받아들임), 영국이나 독일 등 게르만계 미국인이 +3, 라틴계 미국인이 -2(실패하면 쉽게 좌절하고 낙심함)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인은(나는) 실패지수가 어떻게 될까요?
보통 사람들은 실패가 오면 그것은 저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로 쉽게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실패가 반드시 저주는 아닙니다. 우리의 건강을 생각해 보십시오. 통증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통증은 아픔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축복입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지막까지 진행될 때까지 통증이 없다는 것입니다. 초기에 통증이 있으면 암으로 죽을 사람 많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라는 통증을 느낄 때 그것은 하나님이 더 좋은 인생을 주시기 위한 축복의 문을 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실패의 현장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하여 더 성숙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신앙과 인격의 성숙은 실패와 실수 속에서 이루어지지 결코 성공과 형통만 가지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고로 실수와 실패를 경험할 때 이를 유익의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세의 경우를 봅시다. 그는 애급의 왕자에 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기 백성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실패였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를 저질러 도망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2년도 아닌 자그마치 40년간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전락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그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실패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실수를 통하여 광야로 나가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결국 떨기나무 불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만나고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를 비롯해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물고기나 잡아먹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밤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헛수고만 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지새운 밤은 실패의 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기 잡는 일이라면 일가견이 있고 경험 역시 풍부한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만선의 기쁨을 누려 보려고 했던 생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실패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닥쳐옵니다. 사업가에게도, 정치가에게도, 운동선수에게도,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심지어는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도 실패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갈릴리 호수의 제자들은 지금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 호수가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호숫가에 서서 계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여보게, 친구들, 물고기 좀 잡았나? Friends, haven't you any fish?)“ 그들은 대답합니다. "없나이다.(No. 웬걸요,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허탕이에요.)"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큰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153마리의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주님이시다." 그러자 베드로가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는 실수로 말미암아 주님을 뵐 면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실수와 실패한 베드로와 제자들 앞에 따뜻한 숯불을 피워놓고 조반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조반을 드시면서 그들을 격려합니다. 특히 실패감과 상처를 가장 많이 느낀 베드로를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대할 때에도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으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는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패의 순간에 주님은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성공의 순간에 주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좀 자랑도 하고, 감사도 하고 싶고, 보답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성공의 순간보다 힘들고 어려운 실패의 순간에 나타시기를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이시요, 우리를 위로할 위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가 낙심할 때, 주님은 나타나셔서 용기를 불어넣어주기를 원하십니다. 고로 실패의 순간은 주님이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전진을 위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도 있습니다.
영국의 작은 마을인 하노버(Hanover)에는 하노버 교회(Hanover Chapel)가 있는데, 이 교회 벽에 다음의 성경구절이 기록되어 있는 기념비가 있다고 합니다.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욥17:11)." 이 기념비는 1866년 평양의 대동강 변에서 칼을 들고 달려드는 조선병사에게 성경을 내어주며 순교를 당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인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목사의 순교 기념비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1840년 9월 7일 영국 하노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59년 런던대를 졸업하고 1863년 6월 4일 목사안수를 받자마자 다음 달인 7월 21일 폴메이즈호라는 배를 타고 부인과 함께 중국 선교사의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중국 상해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인 캐롤린 고드프리(Carolin Godfery)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 비극적인 소식을 첫 번째 선교보고로 받은 영국의 선교본부에서는 아내를 잃은 토마스 선교사 못지않게 당황하면서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토마스 선교사는 상해에 나와 있는 영국의 선교본부 총무와 사소한 일로 인해 불화의 골은 깊어지고, 결국 다음 해인 1864년 12월 8일 선교사를 사임한 후 사표가 수리도 되기 전에 해상세관 통역관으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선교사가 사표를 내고 세속 직업에 취직했다는 보고를 받은 영국 선교본부는 펄쩍 뛰면서 이제 선교는 실패했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토마스 선교사는 북경에 들러 조선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난 후 그곳으로 가는 배를 수소문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중국을 떠나 이 새로운 땅에서 선교의 열정을 쏟을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마침 프랑스의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성서공회의 파견원 자격으로 이 배를 타게 되는데, 그해 1866년 7월 25일자로 영국 선교본부에 보낸 토마스 선교사의 마지막 편지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는 상당한 분량의 책들과 성경을 가지고 떠납니다. 조선 사람들로부터 받을 환영을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희망에 부풉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하기 위해 미지의 나라로 떠나는 나의 노력을 언젠가는 반드시 인정해 주시리라 믿으며 나는 갑니다."
그러나 그는 대동강에서 조선 병사에게 성경책을 내밀며 한 마디의 말도 못하고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순교 기념비에 적힌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욥17:11)."라는 성구처럼 어떻게 보면 토마스 선교사의 일생은 완전한 실패의 인생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그를 선교사로 보낸 영국의 선교본부에서는 선교에 실패했다고 하고, 또 그를 선교사로 보낸 것을 후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바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가 복음의 씨가 되어 1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에는 저와 여러분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실패 중의 실패입니다. 아니 구세주라는 사람이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려서 “아 목마르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피를 흘리고 죽어갔으니 그는 인간적으로 아주 큰 실패자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생각하지 않고 믿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너무도 큰 실패를 했기에 구세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 같으나 엄청난 성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부활을 이루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대속하시므로 우리가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병이 나음을 받았고, 그가 가난에 처하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성공은 오히려 가장 큰 실패라고 하는 그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고로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큰 성공으로 이끄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은 나와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특히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실수의 소지가 많은 외국 땅에서 주님은 나와 아주 가깝게 있습니다. 더구나 내가 외국 땅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당황할 때에 주님은 이미 그 실수를 만회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두려워 마십시오. 쓸데없이 번민하고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십시오. 당신은 이미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도 당신을 실수가운데에서도 지켜주시고 더욱 나은 행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고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고, 불행이 행복으로 변화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